[역사인문산책] 법치

▲ 곽호룡 기자

시종의 작은 실수에도 참지 못하고 목을 날리는 페르시아 대왕 크세르크세스. 그의 명대사 "나는 관대하다." 영화 <300>은 페르시아를 악으로 규정하고 왜곡시킨 판타지에 가깝다. 그럼에도 폭력과 관용을 오가는 그의 태도에는 역사적 사실이 녹아있다. 꼽추 에피알테스는 외모와 장애 때문에 스파르타에서 버림받지만 페르시아에서 환대받는다. 이는 크세르크세스의 아버지 다리우스 대왕의 이야기에서 따왔다. 페르시아에게 멸망한 바빌론은 반란을 일으킨다. 페르시아의 귀족 조피로스는 귀와 코를 자르고 몸에 상처를 내어 바빌론에 거짓으로 항복한다. 고육지책은 성공하고 바빌론은 점령된다. 다리우스는 승리를 치하하는 동시에 그를 꾸짖는다. "조피로스가 다치지 않는 것이 바빌론 20개를 얻는 것보다 낫다"며...

다리우스는 광대한 영토를 얻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곧바로 정복전쟁을 위해 떠났다. 그는 백성들이 자신의 지배를 받아야 행복해진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이것이 그를  끊임없이 전장으로 떠미는 힘이었다. 물론 왕의 생각을 백성이 그대로 따른다는 법은 없다. 심지어 페르시아 군인 대부분은 피정복민들이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 군대를 '불멸자'라 불렀는데, 죽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들이 죽으면 다른 지역의 백성들로 끊임없이 채워져 군대 전체의 숫자가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 평생 전장을 떠돌지도 모르는 삶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 페르시아가 광활한 영토와 수 많은 민족을 아우르는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사진은 다리우스가 세운 도시 페르세폴리스의 터. ⓒ Getty Images

"사회를 지탱해주는 규범은 공동의 신화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사회질서는 강압적인 힘이나 물질적 보상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이 신화를 믿을 때 가능하다. 페르시아 왕의 꿈을 백성도 꾸었기 때문에 제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래서 하라리는 '상상 속의 질서'라고 부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리우스같은 전제군주를 꿈꾼 것인가? 모든 것을 다 국민을 위해 했다는 변명말이다. 그 과정에서 저지른 불법이 뭐 대수냐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상상 속의 질서'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이다. 우리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믿는다. 인류는 '법치'에 의한 질서를 상상하기 위해 수 많은 피를 흘렸고 쟁취했다. 헌법정신과 어긋나는 현실에 시민은 촛불을 들었고, 시민의 대표인 국회가 탄핵소추를 발의했으며,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였다. 대통령은 권좌에서 내려와 구속됐다.

다리우스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을 정벌하기 위해 나섰을 때다. 호전적인 스키타이만 항전을 주장했을 뿐, 그 외 다른 부족은 시큰둥했다. 상황은 다리우스가 유목민들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페르시아를 주인으로 받들라고 권유하면서 달라진다. 유목민은 격분해서 항복을 주장하던 부족까지 결집해 죽음을 각오한 전면전에 나선다. "우리에게 지켜야 할 도시도 농경지도 없으니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당신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자유가 ‘상상 속의 질서’인 유목민에게 다리우스의 권유는 모욕이었다. 그들은 ‘자유’라는 ‘상상 속의 질서’가 다른 힘에 의해 부정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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