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이주헌 미술평론가
주제 ① 컬렉션의 이해

이제 컬렉션은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국내에도 ‘키덜트족’이 등장해 캐릭터 의류, 액세서리, 장난감, 만화영화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문화와 시장을 형성할 정도로 컬렉션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키덜트’(kidult)는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뜻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지칭한다.

그러면 어른들의 오랜 취미인 컬렉션의 역사적 기원과 심리적 배경은 무엇일까? 수십 권의 책을 저술해 미술 감상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고서적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을 시작했다. 답은 빌 게이츠가 1994년 11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업 노트다. 빌 게이츠는 ‘레스터 사본(Codex Leicester)’ 중 한 권인 ‘코덱스 해머’를 개인 소장하기 위해 3100만 달러, 한화로 약 350억원을 냈다.

▲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컬렉션의 이해'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서지연

외로움이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년기에 엄마와 같은 보호자의 부재로 외로움이나 불안의 트라우마가 생기면 아이들은 주변에서 해소책을 찾습니다. 담요, 베개, 테디베어가 가장 손쉬운 대안이 되곤 하죠. 아기는 쉽게 취할 수 있는 이런 물건을 통해 분리의 상황을 부정할 수 있는 겁니다. 보호의 환영을 경험하게 하는 사물을 선호한 아이는 자라나면 장난감이나 특정한 사물에 최초의 소유 열정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컬렉션이 되는 거죠.”

이주헌 평론가는 컬렉팅의 가장 큰 요인으로 외로움, 불안, 우울과 관련한 인간의 심리를 꼽는다. 이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담요 등을 접촉하며 위로를 느낀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사물에 ‘마나’ 같은 힘이 있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마나’(mana)란 영국의 민속학자 코드링턴이 <멜라네시아인>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비인격적이고 초자연적인 힘 또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 어린 시절의 불안은 컬렉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ixabay

“이유기와 배설교육은 겹칠 때가 많은데 이때 불안을 느낀 아이는 자신의 배설물을 그러모으곤 합니다. 이렇게 수집된 배설물은 위협과 박탈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패와 같은 것이 됩니다. 이때의 경험에 따라 사람들은 돈을 쌓아놓거나, 신문지, 깡통, 쓰레기 등을 모으는 수집벽이 생기곤 하죠. 수집물은 일종의 방어벽 같은 것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컬렉팅의 관계를 보여주는 세 명의 사례를 들었다. 정신분석학자 뮌스터베르크가 만난 종 수집가는 카톨릭 선교 단체의 고아원에서 자라 어릴 적 교회 종소리가 유일한 위안이었고 종을 모으기 시작했다.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란 토마스 필립 경은 교회 등록 문서나 묘비명 등 지역 문서 수집에 일찍이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이것이 점차 역사적 자료, 나아가 모든 종류의 인쇄물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었다. 훗날 그는 “세계의 모든 책을 한 권씩 소장하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항상 최고가 될 것을 강요한 장교 아버지에게서 자란 닉은 하나의 컬렉션 물품 중 항상 최고의 것만 수집하는 컬렉터가 되었다고 한다.

성유물 컬렉션 전통이 뿌린 씨앗

컬렉션 문화는 단지 심리적 요인뿐 아니라 역사적 요인도 상당 부분 작용해왔다. 이주헌 평론가는 “서양이 상대적으로 컬렉션 문화가 활발한 배경에는 성유물을 모으는 역사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중세부터 유럽의 성당이나 수도원은 성유물을 수집하는 데 매우 열정적이었다. 이는 4세기경부터 성인과 순교자의 유해가 영험한 힘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신의 보호를 갈구하는 마음에서 유해를 소유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중세 유럽인들의 삶이 민족의 이동과 전쟁, 전염병, 기근 등으로 극심한 고통의 연속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처럼 물질적 매개를 통해 신의 보호를 향한 열망을 드러내는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전개죠.”

성유물은 예수의 십자가 조각이나 성인들의 유해, 그들이 쓰던 물건이나 손길이 닿았던 사물 등을 지칭한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유물을 크게 세 등급으로 나누는데 예수의 십자가 조각이나 아기 예수가 놓였던 구유 조각, 순교한 성인들의 뼈나 머리털 같은 유해가 가장 높은 등급이다. 두 번째 등급으로 성인이 입던 옷, 사용하던 기물, 순교할 때 사용된 형기구가 속하고, 세 번째 등급으로 첫 번째 등급의 성유물과 접촉이 있었던 사물이 포함된다.

“성유물이 갖는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가짜 성유물이 수없이 만들어져 왔어요. 베로니카의 천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쥐고 올라가실 때 로마 병정들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상황에서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예수의 땀을 닦아준 천이라고 합니다. 로마 병사들은 이를 보지 못하고 화가 나서 이 여인을 밀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베로니카 여인이 쥔 손수건에 예수의 얼굴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는 겁니다.”

성유물은 순교자의 무덤에 제단을 세우던 초기의 풍습이 사라진 뒤, 주검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여러 곳의 교회나 수집가에게 넘겨졌다. 이 성유물에는 브뤼헤(브리주) 교회에 있는 그리스도의 피, 러시아 트로이체 세르기예프 수도원에 있는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스테파노) 집사의 오른팔 뼈, 예수의 수의 등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과 테오도레, 헝가리 성녀 엘리사벳을 비롯한 성인들을 상징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바로 앞서 언급한 마나에 대한 무의식적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 브뤼헤(브뤼주) 교회에 있는 그리스도의 피. Ⓒ pixabay

“성녀 엘리사벳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집안의 빵이나 식량을 실어 날랐어요. 처음에는 시어머니와 남편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는데, 남편이 치마를 확인해 보니 장미가 있었다는 겁니다. 장미는 원래 성모마리아를 의미해요. 또 나병 환자를 자신의 침대에 뉘여 남편이 깜짝 놀랍니다. 이불을 열어보니 예수님이 있었답니다. 그 후 엘리사벳은 남편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고 난 뒤 사람들은 몸의 각 부분을 모두 베어서 가져갔어요. 왜 이런 훼손이 벌어졌겠어요? 성녀이기 때문에 가져가서 기도를 드리면 마나 같은 작용이 벌어질 것이라 믿은 거죠.”

쿤스트카머: ‘앎’과 ‘감상’이 혼재하는 경이로운 장소

수집한 예술품들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만이 아니었다. 이제 ‘수집’은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축약된 사건과 공간을 ‘알기’ 위한 방편이 된다. 독일의 ‘쿤스트카머’(Kunstkamer)는 현대 박물관의 시작점이다. 16, 17세기 유럽의 제후들(특히 독일지역의)은 이상하고 특별한 사물들, 원래의 형태보다 아주 크거나 작은 것, 이국적인 것, 생소한 것, 기괴한 것, 드문 것, 그리고 아름답거나 우수한 것을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그리고 이런 수집공간을 독일어로 ‘쿤스트카머’(Kunstkamer) 또는 ‘분더카머’(Wunderkamer)라 불렀다. 그곳은 갖가지 자연물과 인공물, 예술품이 뒤섞인 공간이었다. ‘알고자 하는’(분더) 욕망과 ‘보고 느끼려는’(쿤스트) 열망이 섞인 이 경이로운 진열실은 신에게 속박됐던 중세를 벗어나 직접 인식하고자 하는 ‘주체’로 거듭난 개인의 열망을 보여준다.

▲ 쿤스트카머 구실을 한 판 케설의 <대륙의 알레고리> 중 ‘아메리카’ 1966. Ⓒ pixabay

‘트로피‘로서 아트 컬렉션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새겨진 참으로 의미심장한 부조, 가령 바다와 땅, 땅에 산재한 도시, 별 박힌 하늘, 플레이아데스 성단, 히아데스 성단, 바다에 들 수 없는 곰자리, 그리고 오리온의 저 빛나는 칼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합니다.”

이주헌 평론가는 저 신화 속의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에서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용감한 장군 아이아스에게서 어떻게 빼앗았는지를 이야기했다. 오디세우스는 아이아스에게 예술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아로새겨진 낱낱의 의미들을 설명하며 자신이 방패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대 신화에서도 예술작품은 ‘전리품’으로서 의의가 있었다. 현대에서도 ‘성공한 사람들’, 곧 ‘자수성가한 기업가’ 또는 ‘스타’는 ‘트로피’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의미로 예술작품들을 수집한다.

일례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현대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화포와 그림을 일치시켜 서양문명의 이분법적 태도를 파괴하는 현대화가 스텔라의 전복적인 작품들과 바스키아의 자유로운 스케치 작품 등, 그의 컬렉션은 배우로서 그가 갖고 있는 분방함, 예술성과 상응한다. 거부 빌 게이츠가 앞서 언급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코덱스 레스티’를 사들인 것도 현시대의 천재가 앞선 르네상스 시대의 전인적 천재에게 보내는 오마주의 의미가 있다.

▲ 디카프리오가 소장한 Frank Stella의 <Double gray scramble>. Ⓒ scalarchaive

한편, 자신의 인생을 컬렉팅에 헌신한 사람도 있다. 이주헌 평론가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첫 큐레이터였던 도로시 밀러의 일생이 하나의 컬렉션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작고 허름한 원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그녀에게는 1천만 달러의 소장품이 있었다. 그녀는 평생을 바쳐 예술가들을 발굴했고, 그들의 재능이 가난에 스러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녀가 발굴한 수많은 예술가들은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거물이 됐다. 그녀의 안목은 최고였다. 자신이 믿는 예술가들을 돕기 위해 모아왔던 작품의 가치가 올라도 그녀는 이를 팔지 않고 간직했다, 그 작품들은 ‘도로시 밀러’의 ‘컬렉션’이기에.

한 나라의 트로피가 된 컬렉션도 있다. 이주헌 평론가는 모네, 고갱 등 인상파 작가들의 걸작이 유럽이 아니라 일본의 작은 도시 구라시키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경이로운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근대 일본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한 열망으로, 그들의 정신과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서구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구라시키에 살던 ‘오하라’라는 거부의 부탁으로 청년 ‘고지마’는 유럽에 건너가 열과 성의를 다해 엘 그레코, 고갱, 모네, 훈데르트 바서 등 서양 미술의 걸작들을 수집하는 데 성공한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서구 미술을 직접 접하며 서양에 대한 이해를 높이길 기원하며 일본 최초의 서양 미술관인 오하라 박물관을 만들었다.

▲ 일본 최초 서양미술관인 오하라박물관. Ⓒ pixabay

새로운 직업군으로서 아트 어드바이저

현재 뉴욕 미술 시장의 경우 갤러리 매출 가운데 대략 10~30%가 아트 어드바이저와 거래하면서이루어진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는 전시회를 미술관에서 하지 않고 아뜰리에서 생산된 작품을 경매장에서 바로 볼 수 있도록 에이전시와 협약했다고 한다. 현재 뉴욕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아트 어디바이저는 4백여 명이며, 조앤 워렌 그래디는 전 세계 200여개 호텔의 어드바이저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은 미술품을 구입함에 있어 작가가 누구인지, 얼마나 중요한 작품인지, 출처와 이력이 어떻게 되는지, 가격이 적당한지 등 철저한 구입 수칙을 가지고 미술품을 수집한다. 컬렉션이라는 문화가 아트 어드바이저라는 새로운 직업군을 새롭게 부상시키는 중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이창곤 심보선 홍세화 고찬수 이주헌 윤성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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