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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 후,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기사승인 2017.04.15  17: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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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3주기] 아쉬운 대목들

애끓는 3년의 시간, 바다에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2014년 4월 16일 참사 이후 시민들은 세월호를 가슴에, 광장에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 곁에 머물게 하며 잊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달랐다. 세월호 관련 시국선언과 예술 작품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으며 세월호 지우기에 바빴다. 뒤늦은 세월호 인양에 분노의 감정이 일렁였던 것도 잊지 않으려는 자와 지우려는 자의 갈등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참사 이후 “왜 그때 그랬을까” 아쉬웠던 대목을 짚어본다.

특조위 발목 잡은 정부와 집권 여당

세월호 특별법 5조 3항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업무로 “4·16 세월호참사 관련 구조⋅구난 작업과 정부대응의 적정성 조사”에 초점을 맞춘다. 4월 16일 참사 당일 ‘청와대 등의 대응 관련 업무 적정성’ 조사는 당연히 우선 1순위다. 그런데 2015년 11월 23일 특조위 전원위원회에서 여당 추천위원 4명이 세월호 참사에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진상 규명과 관계가 없다는 항의 속에 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진상규명보다 박근혜가 먼저였다. 이런 조직적인 방해 행위는 전원위원회 며칠 전 언론에 공개된 해수부 작성 추정 문건 내용 그대로다. 특조위가 청와대 조사를 추진하면 여당 추천위원이 이를 막으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정부는 특조위 활동 전부터 독립성에 반하는 시행령으로 발목을 잡았다. 해수부는 특조위 주요보직인 기획조정실장과 진상규명국 조사 1과장에 일반 공무원을 임명하고 직제를 원안보다 축소해 특조위의 독립성을 흔들었다. 특조위원장의 공무원 임명권을 명시한 특별법에 반하는 조치였다. 특조위원과 유가족들이 시행령에 항의하여 거리에서 농성을 벌였다. 주요 직 공무원 발령도 내주지 않았다. 특조위 핵심 부서인 진상규명위원회 진상규명국장 자리는 정부가 공무원 발령에 응하지 않아, 해체되는 시점까지 공석으로 남았다.

   
▲ 세월호는 2017년 3월 31일, 참사 1080일 만에 귀환했다(좌). 2015년 1월 16일 새누리당 원내대책 회의 때 김재원 의원은 특조위 조직이 비대하다고 평가하며 ‘세금도둑’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낳았다(우 하단). © JTBC 뉴스,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자료 제공 거부 등 진상조사 방해로 특조위의 시간과 자원을 소진시켰다. 한겨레 신문에 따르면 2016년 4월 특조위가 화물적재량을 조사를 위해 해수부에 배보상 내역, 화물운송장, 선적의뢰서 등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대신 특조위는 화주를 전수조사해 화물량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철근 278t의 인수자가 제주 해군기지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등 세월호에 실린 철근량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의 주요인으로 과적에 의한 복원력 약화가 꼽힌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에 실린 화물량 중 철근 무게가 286t이라 밝혔지만, 특조위의 조사 결과는 410t로 124t이나 많았다.

해양수산부는 2016년 6월 30일까지를 특조위 공식 활동 기한으로 봤다.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된 2015년 1월 1일을 특조위 구성 시점으로 본 탓이다. 하지만 특조위 별정직 공무원의 첫 근무는 7월 27일, 예산은 8월 4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특조위는 8월 4일을 구성 요건이 갖춰진 시기로 보고 2017년 2월 3일까지가 활동 기한이라는 의견을 밝혔지만, 정부는 받아드리지 않았다. 정부는 9월 30일 특조위를 해산시켰다.

비용 문제에 진실규명은 뒷짐 진 박근혜 정부

2017년 3월 23일 세월호 인양이 시작된 이튿날 해수부가 발표한 세월호 인양 예산은  1020억원이다. 인양업체 상하이샐비지와 초기 계약액 851억원, 추가 계약액 65억원으로 총 916억원이 지급되고 선체 보관비, 관리비, 보험료 등이 103억원이다. 인양예산이 공개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인터넷 주요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세월호 인양비용’이 올랐다. 이에 더해 탄핵 무효 집회에선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바닷물에 쓸려갔을지 모르는 몇 명을 위해서 수천억 원을 써야겠냐”며 비용문제를 걸고 나왔다.

세월호 인양에 1073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원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용’ 핑계를 댄 박근혜 정부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선체 인양 논란을 상당히 불편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이 “비용이 너무 드니 세월호를 인양하지 말고 바닷속에 그냥 두자”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발언 등 친박 정치인들의 인양 반대 목소리에 강하게 담겼다. 그 결과 세월호 인양은 참사 발생 1년이 지난 2015년 4월 22일이 되어서야 결정됐다.

   
▲ 3년 만에 떠오른 세월호가 반잠수식 선박에 실려있는 모습. ⓒ YTN NEWS 화면 갈무리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결정한 이후에도 인양업체를 선정하기까지 3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마저도 기술력이 가장 뛰어난 업체를 골라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기술 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은 상하이샐비지가 인양업체로 선정된 단 하나의 이유 역시 ‘적은 비용’이다. 상하이샐비지는 사전조사 부족으로 해저면 굴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2016년 11월 완료 예정이었던 ‘리프팅빔’(와이어를 고정할 수 있도록 설계된 철제 구조물) 설치를 연말에야 끝냈다. 이에 1년 이상 작업하던 ‘플로팅독’(해상에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고안된 바지선 형태의 대형 구조물) 방식을 포기하고 ‘탠덤리프팅’(배를 통째로 들어 올리는 인양 방식) 방식으로 바꿨다. 가장 적은 비용을 선택했지만 결국 애초에 다른 업체들이 제시한 만큼의 비용이 들어간 것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인양만 늦춘 꼴이다.

해경해체에도 여전한 해상 재난 대응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의 핵심은 사고를 제때 수습하지 못한 해양경찰청 해체가 핵심이다. 쇄신안으로 안전행정부에 속해 있던 안전 관련 부서와 해수부 산하 해양교통 관제 센터 등을 따로 빼 ‘국민안전처’에 통합시켰다. 재난 구조에 빠른 대응을 위해 ‘특수구조기동대’도 닻을 올렸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해상 재난 대응은 제자리걸음이었다. 2015년 9월 5일 ‘제주 추자도’ 인근 바다에서 ‘돌고래호’가 전복했지만, 해경은 전복 다음 날까지 승선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구조를 위해 해경뿐 아니라 해군과 특수기동대 등이 수색을 벌였으나, 정작 구조는 인근을 지나던 어선이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결국,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박근혜 정부 대응책이 실효성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세월호 참사에 대한 쇄신안으로 해경 해체를 선언했으나, 해상 재난 대응은 제자리걸음이었다. ⓒ YTN NEWS 화면 갈무리

해상 재난 대응이 개선되지 않고 피해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 이후 신설된 국민안전처의 예산에 답이 있다. 2015년 국민안전처 산하 해경안전본부의 예산은 1조 2,454억으로 2014년 대비 953억이 늘었다. 이 가운데  'V-pass 시스템 구축'에 약 159억원을 편성했다. 전년 대비 약 107억원 증가한 수치다. 이는 항공기·선박 정비 등을 제외한 항목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해양사고 발생 시 신속한 구조 활동을 위해 'V-pass 시스템’ 확립에 예산을 쏟은 것이다.

이러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돌고래호‘ 참사 시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돌고래호 참사 이후 해경안전본부는 2016년 ’수색 구조역량 강화‘ 항목에 전년 대비 약 80억원이 증가된 약 117억을 편성했다. 재난 발생 시 드러난 문제점에만 땜질식으로 대응하는 모양새를 지울 수 없다. 2017년 해경안전본부의 예산은 전년 대비 866억원이 감소된 1조 2,082억원으로 줄어든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말로만 열심히 추모하는 정부

정부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나서야 2015년 1월 「4.16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법대로 보상을 신청하면, 구체적 내용과 지급 시기를 결정한 ‘결정서 정본’을 받는다. 참사 피해자나 유족들이 정본에 동의한 때에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다. 즉, 지원금을 받으면 ‘화해’ 효력이 생기기 때문에 손해배상 절차에 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 해양수산부에서 제시한 문서 '배상금 등 동의 및 청구서'에는 ‘4·16세월호 참사에 관련해 어떠한 방식으로도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서약합니다’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 '이의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는 세 번째 항목. ⓒ 해양수산부 홈페이지

해양수산부는 사고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손해배상과 관계없다는 입장이다. 진상조사는 「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별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배상금 관련 소송 제기와는 별개라는 논리다. 하지만, 진상조사 후 국가의 불법행위가 추가로 드러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없다. 인양은커녕 사건의 원인과 책임마저 제대로 규명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보상부터 했던 셈이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지만, 미수습자 유가족들은 더욱 애끓는다. 배상금 지급 신청기한 만료가 올 6~9월로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단원고 미수습자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는 "3년 전 4월 16일에 시간이 멈춰 선 우리들에게, 보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토로한다. 다행히 세월호 참사 피해지원 특별법 개정안이 지난 3월 22일 국회를 통과해 배상금 신청 기한이 3년으로 늘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홈페이지 ‘세월호 배상 및 보상 안내’ 페이지에는 15년 9월 이후 배상과 관련한 어떠한 안내도 개시되지 않고 있다. 아직도 암흑의 바닷속에 가라앉은 정부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편집 : 박경배 기자

 

이민호 안형기 유선희 송승현 기자 gorhf01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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