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월드] 퓰리처 수상작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매해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고 실험적인 보도를 한 기자들에게 주어지는 퓰리처상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인들의 주목 대상이다. 공공서비스, 탐사보도, 지역보도 등 14개 부문에서 선정되는 수상작은 내용과 형식 등 여러 면에서 저널리즘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비뉴스>는 역대 퓰리처상 수상작 중 우리나라 독자에게도 각별한 의미를 가질 만한 보도를 골라 격주로 소개한다. (편집자)

여성살해(femicide)는 최근 한국에서 갑작스럽게 주목받기 시작한 단어다. 작년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일면식 없는 남성에게 살해당하면서부터다. 여성주의자 다이애나 E. H. 러셀은 여성살해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당시 가해자 남성은 남녀 공용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먼저 들어온 남성들은 그냥 보내고 나중에 들어온 여성을 상대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기자 수 80명, 소규모 지역 언론의 대형사고

지난 2015년 퓰리처상의 공공서비스부문 수상작은 여성살해를 정면으로 파헤친 <포스트앤드큐리어(The Post and Courier)>지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Till Death Do Us Part)'였다. 공공서비스는 퓰리처상의 14개 언론보도 부문 중 ‘대상’에 해당하는 쟁쟁한 영역이다. <포스트앤드큐리어>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지역신문이다. 기자 80명에 발행 부수도 8만5000부에 불과한 소규모 언론사가 ‘대형사고’를 친 것이다. 

▲ <포스트앤드큐리어>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시리즈의 메인 화면. ⓒ 포스트앤드큐리어 홈페이지 갈무리

<포스트앤드큐리어>의 취재팀은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2013년 가을부터 약 1년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가정폭력 문제를 파고들었다. 미국탐사보도센터에서 데이터 저널리즘 교육과 자금 지원을 받아 자료를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들의 치밀하고 성실한 보도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주 의회 의원들은 가정폭력 문제를 최우선순위로 다루겠다고 선언했다. <포스트앤드큐리어>는 이후에도 40여 건의 후속 보도를 쏟아내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막기 위한 의회 입법 활동을 감시했다.

▲ <포스트앤드큐리어>의 기자들. ⓒ Mount Pleasant Magazine

100명이 넘는 피해자와 전문가를 만나다 

수상작의 제목인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미국인들의 결혼식에서 으레 등장하는 사랑의 맹세다. 한국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할 것을 다짐하는 것과 같이 평생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하는 말이다. 이 기사에서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애인에게 학대당하는 여성들의 상황을 꼬집는 표현으로 사용됐다. 

▲ 기사의 도입부에는 가정폭력 생존자의 인터뷰가 큼직하게 배치되어있다. ⓒ 포스트앤드큐리어 온라인 기사 갈무리

영상과 사진 등이 다채롭게 어우러진 ‘인터렉티브’ 형식의 기사는 일곱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는 100명이 넘는 피해자, 상담사, 사법 관계자를 인터뷰한 결과가 녹아있다. 1장을 클릭하면 피해자들의 영상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여성살해율은 다른 주의 2배에 이른다”는 문장이 크게 뜬다. “지난 10년간 300명의 여성들이 총에 맞고, 칼에 찔리고, 주먹질을 당했다. 주에서 손을 놓고 있는 동안 12일마다 1명씩 죽어 나간 셈이다.” A4지 25장에 달하는 긴 기사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런 희생자 숫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이 지역 군인의 수보다 세배나 많은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전쟁터도 아닌 집에서 여자들이 이렇게나 많이 죽었다는 사실이 독자들을 경악하게 한다. 

▲ 의회가 여성살해에 무관심했기에 상황이 더 나빠졌음을 보여주는 타임라인 배치.기사 왼쪽에는 여성들이 살해당한 날짜가, 오른쪽에는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무산된 과정이 나란히 정리되어 있다. ⓒ <포스트앤드큐리어> 온라인 기사 갈무리

기자들은 주 의회에 펜 끝을 겨눈다. 웹페이지에서 스크롤을 내리면, 오른편으로는 의회의 활동 타임라인을, 왼편으로는 같은 시각 죽어나간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볼 수 있다. 이 타임라인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주 의회에 제출되고 하원 법사위에 넘겨지는 동안에도 10명이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었다. 주 의회는 여성들에게 '왜 남성을 떠나지 않았느냐'며 책임을 돌리기 급급했다. 가정폭력범들에게서 총기를 빼앗는 조항은 법안에서 삭제됐다. 총기소유권을 옹호하는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인 탓이다. 초범 가정폭력범의 투옥 기간도 단축됐다. 이후 데이트 폭력으로 재판을 받고 풀려난 남성이 연인에게 또다시 주먹을 휘둘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범인 놓아주는 법, 폭력 방조하는 문화

기사는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문화적 문제점도 짚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바이블 벨트’라 불릴 만큼 기독교 색채가 강한 주다. 가부장제와 기독교가 융합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특유의 문화가 가정폭력을 용인하는 토양이 된 것 아니냐는 게 기자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목사들은 가정폭력을 문제 삼기보다는, 재결합을 위한 화해를 종용한다. 해결책은 결국 공동체의 변화다. "이건 법 집행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라는 한 취재원의 말을 기사는 힘주어 강조했다. 

4장에서는 가정폭력범 배우자를 떠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심리상황을 조명한다. 그들은 두려움 때문에 못 떠난다. 기사는 여성이 폭력적인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5장에서는 사법 절차의 문제점을 고발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통일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주요 증거나 위험 신호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해자가 있는 법정에서 증언하길 꺼린다. 증거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소되더라도 피의자가 낮은 형량을 받을 것이란 사실이 피해자들의 두려움을 더 키운다.

6장과 7장에서는 가정폭력이 결국 사회적 문제임을 강조한다. 제도를 손보면 불필요한 희생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사람들은 가정폭력이 개인의 분노조절 장애에 따른 것이라 착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들이 폭력을 쓰는 이유는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더 이상은 안 돼(Enough is Enough)’다. 인터렉티브 기사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폭력 피해자들의 증언, 그들의 퉁퉁 부은 얼굴과 멍든 몸, 적나라하고 끔찍한 상황 묘사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다짐을 독자의 마음에 새긴다. 

여성살해·가정폭력 심각한 한국, 심층 보도는 안 보여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 2013년 한국일보는 가정폭력 실태를 담은 '안방의 비명' 기획을 내놓았다. 가정폭력 범죄를 ‘집안일’로 치부하고 외면하는 사회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좋은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아동폭력까지 가정폭력에 넣어 포괄적 논의를 하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성 언론은 아니지만, 세계비정부기구(INGO)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가 2015년 <오마이뉴스>에 '여성살해를 중단하라'는 연재기사를 여섯 차례 기고한 일도 있다. 시민단체에서 직접 피해 여성들을 상담한 내용이 담겨 있다. 여성살해 현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현행 법 제도의 한계를 짚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사였다.

최근 들어 데이트 폭력과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기성 언론도 늦게나마 여성살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여혐사회’ 속에 산다] 기획기사를 세 차례에 걸쳐 내놓았다. 시민들의 경험담과 전문가 진단을 통해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문화를 돌아보는 기획이었다. <경향>은 강남역 살인사건 희생자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포스트잇 메시지’를 기록해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 포스트잇>이란 제목의 책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시민의 목소리를 잘 담아낸 기획이었지만, 데이트 폭력이나 여성살해의 현실을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하는 탐사보도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가 2014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애인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최소 114명에 이르렀다. 거의 3일에 한 명꼴로 살해된 셈이다. 살인 미수를 경험한 여성도 95명이나 됐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거나, 경찰서에 접수조차 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여성살해 현상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비해 대안은 마땅치 않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있지만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3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 절반 이상(58.3%)은 경찰 신고 뒤 법적 조치를 받지 못했다. 검찰로 넘어가더라도 10건 중 6건은 재판 청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포스트앤드큐리어>의 집요한 보도는 지역사회를 바꿨다. 2016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여성이 남성에게 가장 많이 살해당하는 주’라는 오명을 벗었다. 지금은 5번째로 등수가 내려갔다. 언론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우리는 언제쯤 한국판 탐사보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볼 수 있을까.


편집 : 민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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