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이제 '라라랜드'보다 '문라이트'에 주목할 시간

올해 2월 26일 열렸던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두 주인공은 <문라이트>와 <라라랜드>였다. <라라랜드>는 19개의 경쟁부문에서 감독상·여우주연상을 비롯해 6관왕을 차지했다. <라라랜드> 잔치로 끝날 것 같았던 시상식의 끝 무렵, 수상작이 번복되는 해프닝 끝에 결국 <문라이트>가 <라라랜드>를 제치고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문라이트>는 각색상·남우조연상까지 거머쥐며 3관왕에 올랐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라랜드>와 <문라이트>가 접전을 펼쳤던 분위기와 달리, 한국 영화팬에게 <문라이트>는 <라라랜드>만큼 반응을 얻지 못했다. <문라이트>를 극장에서 본 한국 관객은 고작 17만명. <라라랜드>의 누적 관객 수는 350만명에 달한다. <라라랜드>는 SNS와 입소문을 타고 ‘라라랜드 열풍’이 불 정도로 한국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두 영화 모두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수와 주목도 면에서 극명한 차이가 난 건 어떤 이유일까.

익숙한 환상의 세계와 낯선 현실의 세계

<라라랜드>의 배경은 할리우드이며, 주인공들은 백인이다. 현실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없지만, 동경하고 욕망하는 화려한 예술계의 이면을 그렸다. 우리는 외형적으로는 반짝반짝 빛나 보이기만 했던 그들의 인생에 드리워진 고민에 공감하며, 우리의 감정을 이입한다. <라라랜드>에는 뮤지컬 로맨스 장르의 고전(Classic)이라 일컬어지는 <사랑은 비를 타고>(1952)의 유명한 빗속 가로등 장면을 재현한 신이 등장한다. 단순한 차용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만든 영화의 원류(原流)를 오마주(Hommage)한 감독의 의도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이후 할리우드의 뮤지컬 로맨스 영화는 <물랑루즈>, <그리스>, <맘마미아>, <페임> 등의 계보로 이어진다. 언급한 영화의 배경과 소재들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실제로 발견하기 어렵다. 비현실적 설정 속에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백인이다. 잘 만들기 어려워서 그렇지, 사실 <라라랜드>가 구현한 환상의 세계는 할리우드에서 영원히 사랑받는 클리셰다.

▲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상단)와 <라라랜드>(하단)의 장면. ⓒ 영화 갈무리

<문라이트>는 흑인 소년 샤이론이 성장하면서 겪는 가난과 폭력의 세계를 그렸다. 성 정체성의 혼란 같은 묵직한 얘기도 던진다. <문라이트>의 비중 있는 배역들은 모두 흑인이다. 흑인의 현실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2시간 남짓 흑인만 나오는 영화에 우리의 눈은 익숙지 않다. 다루는 내용은 유쾌한가? 인간이 겪는 고통의 내면적 성찰이 아무리 큰 의미가 있을지언정 관객이 편안하게 앉아 감상하기에는 쉽지 않다. 무거운 현실적 주제에 흑인이 주인공. 외면받기에 적절한 요소를 다 갖추었다. 그럼에도 젠킨스 감독은 <문라이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이 겪었던 고난을 영화로 승화시켜 현실에 맞닿은 위로를 관객에게 건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을까. 달빛 아래 소년들은 하얗거나, 까맣게 보이지 않고 '모두 똑같은 푸른빛으로' 보인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인간의 뿌리깊은 편견을 전복시키며 깊은 감동을 준다. <문라이트>는 감독 자신의 성장기이자, 모든 사람의 인생 앞에 가슴 시린 찬란함을 선사하는 이야기다.

<라라랜드>가 익숙한 환상의 세계라면, <문라이트>는 낯선 현실의 세계다. 인간의 본성은 보기에 좋고 익숙하며, 잠시나마 마음에 위안을 주는 편안함에 끌리게 마련이다. 한국 관객들은 진짜 현실을 예술로 노래한 <문라이트>보다는 현실에 있을 법하지만 결코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환상 <라라랜드>에 손을 들어줬다.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문라이트>의 괄목할 성적은 미국사회에서도 극히 드문 경우다. 불과 작년만 해도 “Oscars So White”라는 조롱 섞인 해시태그가 아카데미 시상식을 겨냥해 유행처럼 번졌을 정도로 흑인, 나아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외면은 할리우드에서 일상적인 일이다. 철저한 백인 중심의 시상에 전 세계 영화팬들이 반기를 든 이 사건으로나마 할리우드의 불합리한 민낯이 잠깐 드러났을 뿐. 그런 상황에서 한화 약 17억 원으로 제작된 무거운 흑인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계의 최고 왕좌에 오른 것은 차라리 기적이라고 여기는 편이 그 어떤 설명보다 설득력 있을 것이다.

▲ 2016년에 아카데미상 후보들의 인종 편향을 비판하는 #OscarsSoWhite 해시태그 운동이 유행했다. ⓒ Andrew MacLean Twitter

청춘남녀의 가슴 저릿한 로맨스와 미완의 꿈을 담은 <라라랜드>는 팔릴 요소를 두루 갖춘 영화다. <위플래시>로 인정받은 신예,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첫 시나리오로 개봉 전부터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시나리오도 사랑과 이별, 꿈과 현실에 대한 감독의 성찰이 담겨 탄탄했다. 고전(Classical)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감각적인 시퀀스 속에서 아름다운 백인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관객의 눈도, 귀도, 마음도 행복해진다.

반면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 감독은 데뷔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젠킨스는 극작가 터랠 맥크레이니의 자전적 희곡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를 각색한 <문라이트> 시나리오를 오랜 시간 가슴에만 품고 지내야 했다. 첫 영화가 성과를 내지도 못했고, 흑인 소년을 다룬 문제적인 시나리오가 투자를 받기에 좋은 조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며, 영화판 주위를 배회했다. <문라이트>에 따르면, 인생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과정이다. 젠킨스 역시 어둠 속에 빛을 찾아 헤매는 한 명의 샤이론이었다.

한국의 브래드 피트에 거는 기대

운명일까. 젠킨스는 사회 진행을 맡은 <노예 12년> 행사장에서 제작자 브래드 피트를 만나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게 된다. 할리우드 유명인사, 제니퍼 애니스톤 혹은 안젤리나 졸리의 전 남편으로 대중에게 인식되는 잘생긴 배우, 그가 맞다. 피트는 영화배우로서 영역을 넓혀나가다가, 마침내 2002년 영화 제작 사업에 뛰어들었다. 제작자로서 그의 새로운 도전은 할리우드 영화계 발전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예술영화 제작사 ‘플랜B’를 세우고 자신이 발굴한 비주류 작품에 투자해 이들을 잇달아 주류 영화판의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대부분 대형 제작사에 외면당한 작품들이었다. <문라이트>의 성공은 피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때로는 ‘설명할 수 있는 기적’도 있다.

▲ 영화 <문라이트>는 흑인 소년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을 ‘리틀-샤이론-블랙’ 3부로 구성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 <문라이트> 포스터

제작자로서 피트의 탁월한 안목은 이전부터 빛을 발했다. 피트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흑인 영화 <노예 12년>은 제86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빅 쇼트>는 각색상을 받았고, <트리 오브 라이프>와 <머니볼>은 작품상 후보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대됐다. 피트는 한 인터뷰에서 “더 작고, 복합적이고, 심오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지원하겠다"는 원칙에 따라 작품을 선택한다고 밝힌 바 있다. 흥행성·수익성 기준에 걸려 대형 제작사가 외면한 좋은 작품에 직접 투자해 스크린에 올리겠다는 결심은, 톱스타이기 이전 영화인으로서의 확고한 자의식 없이는 나올 수 없다.

한국도 유명 배우들의 영화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다. 소지섭은 <영화는 영화다>와 <회사원>을, 손예진은 <덕혜옹주>를, 정우성은 <변호인>에 직접 투자하거나, 공동 제작에 참여했다. 피트처럼 직접 제작사를 차린 하정우도 있다. 손예진은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한국판 <델마와 루이스>를 제작하고 싶다고 밝혔다. 동료배우 공효진과 함께 자신이 직접 연기하고 싶다고도 했다. <델마와 루이스>는 여성 정체성 영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페미니즘 영화다. 손예진이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건, 여성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극히 제한돼 있는 폐쇄적인 한국 영화계에 염증을 느낀 여배우로서의 자의식이 투영됐기 때문이 아닌가.

손예진 표 <델마와 루이스>가 제대로 만들어져 평가 받고, 여성 인권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 일어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피트가 제작한 영화’로 홍보를 시작했던 흑인 영화 <문라이트>가 백인 우월주의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비난 수상 소감으로 수놓아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란 듯이 최고상을 거머쥔 것처럼 말이다.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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