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대산농촌재단 장학생 연수 참가기

제주도의 농업도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 세계 농업환경의 변화 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수려한 자연경관이 갖는 친환경 농업 이미지와 풍부한 자연자원을 활용하면 세계 농업환경의 변화에도 제주도만은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대산농촌재단(이사장 오교철)이 지원하는 농업전문언론인양성 장학생 4명(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이 농업리더장학생 9명과 함께 우리 농업의 혁신현장인 제주를 찾았다. 2월 21일부터 2박 3일간 현장을 둘러보고, 추가 취재한 뒤 동계 연수 참가기를 썼다. (편집자)

가시리마을이 공동목장을 보존한 이유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는 510가구가 모여 사는 중산간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넓게 펼쳐진 목장에 한가로이 서 있는 풍력발전기가 환영 인사를 건넨다. 가시리마을은 제주도가 ‘2030 제주 탄소제로 섬(Carbon Free Island)’ 전략의 하나로 추진 중인 국산화풍력발전 실용화사업 추진 대상지역으로 선정됐다. 이 전략은 제주의 육상과 바다에서 생산된 풍력으로 2030년까지 제주전력 수요의 100%를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가시리는 마을 안쪽 주거지가 아닌 공동목장지역에 지난 2012년 15mW~750kW 규모 풍력발전기 13기를 설치한 데 이어 2015년 3000kW 풍력발전기 10기를 준공했다.

▲ 가시리마을은 풍력발전기 10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장학금 지급 등 주민복지에 쓰고 모든 가구에 월 2만원씩 전기요금을 보조한다. ⓒ 김미나

제주도는 마을 주민이 목장을 함께 경영하고, 그 이익을 나누는 전통을 갖고 있다. 1933년 한라산목야정리계획에 따라 리 단위로 목장조합 설립이 권고되면서 지금의 마을공동목장조합 틀을 갖췄다. 75곳으로 시작한 마을공동목장은 최대 123곳까지 늘었다.

이선희 가시리신문화공간조성사업추진위원회 사무국장(39)은 “목장조합이라는 공동체가 있었으나 4.3사건 때 많이 해체됐다“고 말했다. 마을공동목장은 4.3사건 이후 공동체 와해와 맞물려 정부의 상품작물재배 확대정책, 민간의 골프장 개발 등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현재 57곳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초등학교 6천여 개 면적에 이르는 6,327ha(2014년 기준)의 공동목장이 제주에 남아있다. 제주의 많은 공동목장이 골프장 등으로 바뀌고 있지만, 가시리는 공동목장을 보존하고 있다. 가시리는 1800년대부터 100년간 마장이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 최고등급인 ‘갑마’를 모아 길렀다. 임금에게 보내는 ‘어승마’도 이곳에서 길렀다.

주민들은 조랑말체험공원과 풍력발전시설에서 얻은 수익을 공유한다. 가시리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민간업체들은 토지사용료를 명목으로 마을에 매년 9~10억원을 낸다.

▲ 조랑말박물관을 찾은 대산농촌재단 장학생들에게 가시리의 목축문화를 설명하는 이선희 가시리신문화공간조성사업 사무국장. ⓒ 고하늘

4.3사건으로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풀다

“제주는 4.3사건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70여 년 전 4.3사건이 발생했을 때 제주도 전체에서 피해 안 본 마을이 없어요. 가시리는 제주도 마을 중 3번째로 피해를 많이 본 마을이에요. 1,000여 명 주민 중 500명 이상이 희생됐어요. 마을의 모든 집이 불타 없어졌어요. 살아남기 위해 산으로 도망가거나 해안가로 도망가면서 가족과 친척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경찰이 잡고자 하는 사람을 고발하기도 했어요. 제주에 숨은 빨갱이 잡는다는 이유로 무고한 주민이 희생됐어요. 내 이웃, 내 친척을 배신했어요. 어르신들은 혹시나 말실수 할까 봐 무서워서 4.3사건 이야기를 못해요. 그게 불과 몇 년 전이었어요.”

가시리마을은 지난 2009년 5년간 73억원이 투입되는 농림수산식품부의 ‘2009 농촌마을 종합개발마을’ 대상지로 선정됐고 3월 ‘신문화공간조성사업’ 대상지로도 선정돼 3년간 20억원을 지원받았다. 신문화공간조성사업은 농∙어업용 시설 등을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지역주민과 도시민 등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가시리는 한라산 중산간마을 특유의 목축문화를 복원하고 활용해 조랑말박물관과 조랑말체험공원 등을 조성했다.

▲ ‘걷다∙보다∙느끼다, 제주의 농農'을 주제로 한 대산농촌재단 동계연수단이 숙소인 가시리 유채꽃플라자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 대산농촌재단

사람이 먼저인 가시리의 남다른 ‘마을 만들기’

마을에 ‘큰돈’이 들어오는 권역사업은 자칫 경관을 해치는 토건 사업으로 이어지거나 주민 간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가시리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64억), 신문화공간조정사업(20억), 친환경공간조성사업(5억), 휴양체험마을사업(3억) 등을 통해 최근 6년간 정부에서 약 100억원을 지원받았다.

이 사무국장은 “주민들은 센터가 없으니 크게 지어달라는 요구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그는 “주민을 모아 회의를 많이 했는데, 돈 얘기가 나오니까 언성이 높아지더라”며 “마을 소득 사업부터 하면 싸움이 날 것 같아 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사업을 먼저 추진했다”고 밝혔다. 가시리신문화공간조성사업추진위원회는 회의를 통해 주민의 욕구를 조사하고 마을이 가진 자원 조사를 병행했다. 이 국장은 “마을에서 평생을 사신 어르신은 우리 마을이 왜 좋은지 모른다”며 “선진지 견학을 다녀와 다른 마을과 비교하면서 우리 마을에도 좋은 자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신문화공간조성사업을 통해 가시리에는 주민을 위한 ‘문화학교’가 세워졌다. 이 국장은 “문화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커 가시리밴드, 국궁동아리, 기공동아리, 댄스스포츠, 어린이댄스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동아리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결성된 동아리들은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혼디 모영 신명나게 놀아보세”를 구호로 내걸고 주민끼리 즐기는 마을축제를 열기도 한다.

▲ 2016년 11월 5일 “혼디 모영 신명나게 놀아보세”라는 주제로 가시리문화축제가 열렸다. ⓒ 고하늘

“문화축제는 돈을 벌기 위한 축제가 아니에요. 주민들끼리 즐기는 축제예요. 주민이 많이 모이는 날이라 사업보고회도 같이 해요. 이날은 할머니들이 밤 10시가 넘어도 집에 안 가세요. 한 할머니가 “죽기 전에 이런 걸 보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4.3사건을 겪은 뒤 살아남기 위해 평생 일만 하신 분들이에요. 모든 주민이 모여 즐거워하는 모습 보는 게 행복해서 끝까지 남아 계세요. 가시리가 정말 필요한 게 이런 자리였구나 하고 깨달았죠. 단절됐던 마음이 모든 세대가 어우러지며 하나 되는 자리. 공동체 회복이 먼저예요. 그 기반 위에서 센터운영도 하고 소득사업도 할 수 있죠.”

농민과 도시민의 접점, 대안유통 ‘무릉외갓집’

제주시 서귀포 대정읍 무릉2리에 있는 영농조합법인 무릉외갓집은 2009년 설립됐다. 무릉외갓집은 ‘시골 외갓집’ 개념으로 매달 제주의 제철 농산물을 꾸러미에 담아 배송하는 회원제 서비스다. 꾸러미사업을 처음 제안한 것은 벤타코리아였다. 이 회사는 제주올레에서 ‘1사 1올레 결연사업’을 진행하면서 무릉리 마을과 연결됐다. 일회성으로 그칠 수도 있지만, 주기적인 방문과 교류를 통해 무릉외갓집을 후원하고 있다. 홍창욱 무릉외갓집 실장(40)은 2011년에 부임하여 무릉리와 6년째 사업을 하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 아버지가 40년쯤 단감 농사를 지으셨어요. 산지에서 영농조합법인을 통해 유통도 해봤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농촌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웠어요. 결국에는 다시 농촌, 제주로 왔죠.”

▲ 홍창욱 무릉외갓집 실장이 꾸러미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 고하늘

제주는 보통 관광지로 많이 알려졌지만 다양한 농산물이 생산되는 농촌이기도 하다. 무릉외갓집은 주 단위나 월 단위가 아닌 연간으로 회원 신청을 받아 선지급으로 결제하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회원모집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 달에 보통 꾸러미를 400개 정도, 제일 많을 때는 560개까지 배송했다. 그러나 최근 경기가 나빠지면서 농산물, 꿀, 한과, 과일 매출이 반 토막 났고, 꾸러미사업도 정체되고 있다. 신선식품보다 가정간편식인 반조리식품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무릉외갓집은 차별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소비자 기호에 맞는 농산물을 발굴해 내기도 한다.

“청희 오렌지는 신맛이 없고 단맛이 강해 지역민에게는 홀대받지만, 육지 사람들 입맛에는 적합한 품종입니다. 한번 맛본 이는 선호도가 아주 높습니다.”

▲ 무릉외갓집 판매장에서는 조합원이 생산한 제철 농산물을 판매한다. ⓒ 김미나

직접 농산물을 사고파는 판매장은 농민과 도시민의 접촉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인을 위한 ‘주간 꾸러미 배송 서비스’도 하고 있다. 제주도 내 영어교육도시 안에는 외국인 교사가 많이 거주한다. 무릉외갓집 직원들이 직접 배송을 통해 고객과 만날 기회들을 만들어간다. 최근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무릉외갓집은 제주와 육지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지역민에게는 경제적 자립과 도시민에게는 일년 내내 제주를 맛볼 수 있게 해준다.

한 때 홍 실장은 일을 하며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 들어 힘들었다. ‘아버지 때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내 아이도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홍 실장은 이것을 극복하고 이젠 꾸러미사업를 통해 지속적으로 소비자에게 좋은 메시지를 주는 것이 그의 목표가 됐다.

▲ 대산농촌재단 연수생들이 무릉외갓집 판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찬찬히 구석구석 돌아보는 '선'의 여행, ‘제주올레’

둘째 날 내린 비로 연수단은 올레 7코스인 법환포구~외돌개 구간을 도는 대신 제주올레여행자쉼터를 찾았다. 이곳은 2007년 시작된 제주올레가 10년 만에 설립한 공간으로 이곳에서 그간의 발자취를 들을 수 있었다. 제주올레는 언론인이었던 서명숙 이사장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위로받을 수 있는 여행길을 구상하며 시작됐다. 제주올레가 세운 기본 철학이 흔들릴까 행정 지원도 받지 않았기에 마을 주민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며 하나하나 길을 늘려갔다. 그렇게 낸 길이 현재는 26개 코스, 425km로 이어졌다. '제주도' 하면 '올레길'이 가장 먼저 생각날 정도로 '제주올레'는 제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 올레길의 방향을 알리는 화살표. © 대산농촌재단

여러 부침에도 제주올레가 10년 넘게 이어올 수 있었던 건 '간세다리' 정신의 힘이 컸다. '간세다리'는 제주 말로 '게으름뱅이'라는 뜻이다. 바쁜 현대인들이 올레길에서는 '놀멍 쉬멍 머그멍(놀고 쉬고 먹으며)' 여행하라는 거였다. 자연에게도 편안한 길이 되도록 옛 제주 사람이 걸어 다녔지만 사라진 길을 복원하며 훼손하지 않고 길을 살렸다. 이러한 제주올레 정신은 제주 여행의 문화를 바꿨다. 자동차를 빌려 유명 관광지만 '점'으로 찍던 여행에서 수시로 찾아오고 오랜 기간 찬찬히 돌아보는 '선'의 여행으로 변한 것이다. 느리지만 깊은 여행, '간세다리' 정신은 천혜의 풍경만큼이나 따뜻한 인심도 만나게 해주면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 뷰포인트가 되는 제주 조랑말 모양의 간세 표식. 간세 머리가 가리키는 방향이 정방향인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제주올레 정신이 담겨 있다. © 대산농촌재단

“여행객들이 제주도가 아름다운 건 알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친절한지 몰랐다고 해요. 처음에는 풍광이 좋아서 와도 다시 찾게 하는 건 사람이에요. 숙소 주인장, 택시기사, 식당 아줌마 등 지역 분들과 유대를 맺는 게 제주올레의 매력이에요.”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47)은 여행객을 마을 주민들이 친절하게 대할 수 있도록 마을 경제나 문화와 연결하는 데도 힘썼다. 민박을 치는 '할망숙소'의 경쟁력을 살리고, 지역민이 길라잡이가 되어주는 '아카자봉함께걷기', 여행하며 쓰레기를 줍는 '클린올레' 등 상생의 길을 모색했다. '제주올레아카데미'를 기획해 교육과 비전 전수를 하고 '기업'과 '마을'을 잇는 '1사 1올레'로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이 제주올레의 가치와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제주올레의 원칙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면서 제주올레는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19개 코스의 '규슈올레', 5개 코스의 '양평 물소리길', 올 6월에는 ‘몽골올레’까지 선보이며 '올레길'은 하나의 생태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간세'(조랑말 표식)를 심고 제주올레 코스를 분양하는 '우정의 길',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는 '자매의 길' 프로젝트도 세계여행객에게 제주올레의 가치를 알리는 노력의 하나다. 안 사무국장은 10년의 제주올레 전환점에서 이제는 107개 제주도 마을을 올레길로 잇는 100년의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귀한농부’의 철학

셋째 날 아침 올레길 산책을 마친 연수단은 ‘귀한농부’를 방문했다. ‘귀한농부‘는 2008년 윤순자 대표(52)와 지역의 20여 고령농가가 함께 만든 친환경영농법인이다. 친환경인증을 받은 2만3천 평 농장에서 감귤, 한라봉, 천혜향 등을 생산한다. 2004년 서울에서 제주로 귀농한 윤순자 대표는 친환경농업에 대한 철학과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한 고민으로 지금의 ‘귀한농부’를 만들었다.

윤 대표는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체험을 해보자며 연수단을 태우고 굽이진 길을 올라가서 한 농장 앞에 차를 세웠다. 연수단 앞에는 감귤 묘목과 면장갑, 삽, 호미가 놓여 있었다. 장갑을 낀 연수단은 직접 땅을 파고 줄과 열을 맞춰 감귤 묘목을 심었다. 묘목심기 체험을 마친 주슬기(26∙경북대 식물자원학)씨는 “쉽게 생각했던 묘목심기도 막상 해보니 너무 힘들고 어려웠다”며 “우리가 쉽게 소비하는 농산물이 얼마나 많은 농부의 땀과 열정으로 만들어지는지 알았고 그 노고에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 연수단 허재성(25·고려대 사회학)씨가 ‘귀한농부’ 농장에서 묘목 심을 준비를 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나무 심어 보니까 어때요? 처음 생각이랑 매우 다르죠? 친환경농업은 사람이 편한 대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땅과 나무 그리고 열매가 원하는 걸 주면서 함께 호흡하는 거예요. 사람에게 먹거리가 중요하듯 나무도 건강한 퇴비가 필요해요.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양분을 주어야 우리도 자연으로부터 건강한 것을 받을 수 있어요.”

▲ ‘귀한농부’ 농장에서 윤순자 대표가 연수단에게 감귤 묘목 심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화학비료는 일절 쓰지 않고 쌀겨와 귤청 찌꺼기 등을 넣어 만든 발효효소를 땅과 나무에 뿌려 밭을 일구고 감귤을 생산한다. 농약도 치지 않고 광택을 내기 위한 왁스 코팅도 하지 않는 ‘귀한농부’의 감귤은 겉보기에는 못났지만, 시중 감귤보다 당도가 높아 맛이 좋다. 땅과 나무가 돌려준 정직한 결과다.

지금은 직거래 고객이 10만 명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했지만,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속상한 일도 많았다. 하지만 윤 대표는 자신이 기른 농산물을 먹게 될 소비자들을 떠올리며 하나라도 더 신경을 쓴다. 이제는 주소지만 봐도 알 수 있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며 윤 대표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귀하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우리가 직접 친환경농업을 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잖아요. 우리가 하는 농사와 농업의 귀중함을 우리부터 인식해야 소비자들도 우리를 그냥 농사꾼이라고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생산한 귀한 먹거리를 소비자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귀한 마음이 ‘귀한농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기예요”

농업과 문화가 어우러진 치유 공간, 물뫼힐링팜

이날 오후 연수단은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의 물뫼힐링팜을 방문했다. 자신을 농업과 문화를 누리는 ‘팜아티스트’라고 소개한 양희전 물뫼힐링팜 대표(47)는 2000년 고향인 제주로 귀농해 친환경농업을 시작했다. 지속가능한 친환경농업을 고민하던 양 대표는 2008년 친환경농업을 체험하고 쉬어 갈 수 있는 체험농장을 만들고 ‘물뫼힐링팜’이라 이름 붙였다.

“다른 농장하고 많이 다르죠? 농장은 안보이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고 신기하게 생긴 건물이 있고. 저희가 추구하는 것은 문화와 농업을 접목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거예요. 우선 친환경농업을 통해서 땅을 살리고 그 땅에서 나온 생산물로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 농장을 만들었어요.”

▲ 양희전 물뫼힐링팜 대표가 연수단에게 강의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물뫼힐링팜은 친환경농업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친환경농업체험부터 우프(WWOOF), 팜파티, 팜페스티벌, ‘제주 한 달 살기’ 등 특색 있는 체험거리가 풍성하다. 양 대표와 함께 밭에 가서 옥수수도 심고 바다에 가서 보말도 따고 제주에 자연을 탐험하러 갈 수도 있다. 우프를 통해 외국인들이 물뫼힐링팜을 찾아 농사일하며 한국문화를 체험하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은 이 모습이 신기했는지 방송국에 제보하여 홍보 효과도 톡톡히 봤다.

물뫼힐링팜을 찾는 사람들이 늘자, 감귤주스, 풋귤청, 귤말랭이 등의 가공품도 만들기 시작했다. 물뫼힐링팜에서만 만들고 팔 수 있는 즉석 가공 형태지만 2016년 농촌진흥청 6차산업 가공 경진분야에서 우수상을 탔다. 양 대표는 대규모 가공업체 사이에서 즉석가공품은 물뫼힐링팜이 유일했다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지금은 홍콩 LOHAS박람회에 참가하고 HALAL(무슬림 허용 식품) 인증도 받으며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 발돋움하고 있다.

▲ 물뫼힐링팜 감귤농장에서 대산연수단이 감귤따기 체험을 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 대산농촌재단

양 대표가 처음 친환경농업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집에서도 대학까지 보낸 아들이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뜯어말렸다. 처음 몇 년은 원하는 품질의 귤을 수확하지 못해 수확량의 70%는 버렸다. 주변의 만류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던 저력은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고민과 건강한 토양에서 건강한 농산물이 나온다는 친환경농업에 대한 철학이었다.

“제주에 딱 왔는데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우리가 이런 걸 먹고 있었구나. 이제 농장이나 시골에서 친환경농업을 통해 건강하게 자란 농산물을 먹으면서 적당한 노동과 산책 그리고 사람들과의 어울림으로 병을 고치는 치유농업이 대두할 거예요. 치유의 현장이 바뀌는 거죠. 이미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시행하고 있어요. 나도 행복하고 물뫼힐링팜을 거쳐 가는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꿈꿉니다.”


편집 : 박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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