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강민혜 기자

   
▲ 강민혜 기자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4세기 로마의 군사전략가인 베게티우스의 말이다. 그는 강한 무력이 평화의 전제조건이라고 믿었다. 로마제국 성장의 가장 큰 요인으로도 혹독한 군사훈련을 꼽았다.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를 꿈꾸던 그가 상비군체제와 군비증강 등을 추진하며 전쟁 준비에 힘쓴 이유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끝은 평화와 거리가 멀다. ‘팍스 로마나’를 위해 준비한 전쟁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한 전쟁준비를 역설했던 제국은 과도한 전쟁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전쟁비용 조달로 재정적자가 커진 게 로마 몰락의 요인이라는 것은 역사학자들의 정설이다. 로마는 평화를 지키려고 벼른 칼 때문에 국가의 위상과 평화를 모두 잃었다. 무력으로 지켜지는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베게티우스의 말은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많이 회자된다. 남북 간 평화를 지키려면 북핵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최신 무기 도입에 돈을 아끼지 말고, 물 샐 틈 없는 한미동맹을 유지하자는 주장으로 대표된다. 그 결과 한국은 2014년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이라는 달갑지 않은 이름을 얻었다.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한국은 78억 달러(약 9조1299억원) 무기 구매계약을 맺었다. 그중 90%는 미국산 무기다. 기술 이전 없이 만들어놓은 무기만 사 온 정부는 기술종속이 심해진다는 우려도 본체만체한다. 그러니 북핵과 전쟁을 하기는커녕 방산비리와 전쟁을 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니 남북관계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은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자위적인 핵 무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미국과 한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결정했다. 중국도 대응전력을 늘렸을 뿐 아니라 올해에는 러시아와 함께 한국의 사드 배치에 공동대응하며 미사일 방어 합동훈련을 할 계획이란다. 사드 배치가 동북아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군비경쟁을 가속화한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이쯤 되면 작년 9월에 있었던 북한의 5차 핵실험과 사드 배치 결정이 무관하다는 정부의 발표도 영 미덥지 못하다. 황교안 총리는 신년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잠재적 위협이 아니라 명백하고 실존하는 위협”이라며 “사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 황교안 총리는 신년기자회견에서 조속한 사드 배치를 주장한 반면, 소녀상 문제는 민간에서 하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 KBS <뉴스라인> 화면 갈무리

사드 레이더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나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 효용성 등 여러 논란을 제쳐놓고라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사드 배치는 로마 몰락의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 한반도는 아직 정전 중이다. 한쪽 안보가 나아지면 다른 쪽 안보가 위협받는 건 당연하다. 남한의 군사력이 강해지면 북한도 군비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사드가 북핵 위협에 대한 방어용이라 주장하더라도 북한은 사드를 뚫을 무기 개발에 매달릴 것이다.

한때 베게티우스의 말에 따라 ‘평화'를 위한 핵무기를 개발했던 아인슈타인은 히로시마 원폭을 겪은 뒤 깊이 후회했다. 소련보다 미국이 먼저 핵을 가져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더니, 결국 핵을 사용한 것은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평화는 무력으로 유지될 수 없고 오직 이해를 통해 유지될 수 있다." 훗날 그가 남긴 말이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북핵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베게티우스 식 논리로는 힘들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며 강성함을 자랑하던 로마가 영토 대부분을 잃고 동로마제국으로 축소된 역사를 우리는 잘 안다.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베게티우스가 아닌 아인슈타인의 말을 되새겨볼 때다.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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