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거짓말

   
▲ 기민도 기자

거짓이 그를 움직였다. 2012년 3월 국가정보국 국장 제임스 클래퍼는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에 참석해 “미국 정부는 미국인 수백만 명에 관한 데이터를 고의로 수집하지 않는다”고 위증한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내부 고발을 결심한 순간이다. 그는 시민에게 거짓말을 하고도 벌을 받지 않는 클래퍼를 보며 민주주의가 짓밟혔다고 여긴다.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피통치자의 동의는 동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도 비슷하다. 청문회에 참석한 김기춘이 “블랙리스트를 모른다”고 위증을 하자 사실을 바로잡겠다며 나선다.

공화당을 지지해 온 스노든은 민주당 오바마에 기대를 건다. 오바마는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약속한다. “미국 시민을 불법으로 도청하는 일, 귀찮다고 해서 법을 무시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오바마는 2008년 7월 9일 해외정보감시법 수정안(미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일어나는 통신도청을 합법화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진다. 당선 이후에는 전임 대통령의 감시정책을 이어간다. 스노든이 오바마에게 환멸을 느낀 이유다. 유진룡도 ‘자신에게 반대한 문화예술계 사람들을 안고 가고 싶다’는 박근혜 대통령을 믿는다. 하지만 김기춘 비서실장 취임, 세월호 이후에 군사정부 시절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진다.

▲ 스노든의 폭로에 시민들은 기억으로 화답한다. 스노든은 홍콩에서 가디언 기자들을 만나 미국의 감시정책을 폭로하는데, 로라 포이트라스는 이 장면을 담은 <시티즌포>로 2015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는다. 올해 2월에는 한국에서도 올리버스톤의 <스노든>이 개봉된다. © 스노든의 인터뷰 장면 유튜브 갈무리

“우리는 우리가 기다려온 바로 그 사람이다” 인디언 호피족의 옛 속담이다. 위인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자유로운 선택을 하라는 의미다. 스노든도 오바마에 대한 기대를 접고 비슷한 말로 국민과 직접 소통에 나선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행동하기를 그저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지도자를 찾아 헤맸지만 리더십은 행동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합법적인 내부고발 대신 폭로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NSA 간부인 토마스 드레이크의 선례 때문이다. 드레이크는 공식적인 내부고발제도를 통해 NSA의 비밀 정보 수집 작전이 수정헌법 4조를 위반한다는 우려를 표명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집으로 쳐들어온 FBI와 35년형을 선고하겠다는 협박이었다.

대한민국 촛불 시민은 올 겨울 행동하는 첫 번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정치인을 기다리지 않았고, 검찰 수사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았다. 대신 광장에 모여 진실과 탄핵을 외쳤다. 그리고 내부 고발의 기회를 열어줬다. 비록 늦었지만 유진룡의 고발은 존중받을 만하다. 김기춘과 갈등을 빚던 유진룡은 사임하기 직전 박근혜를 찾아가 “특히 블랙리스트와 같은 것은 하면 안 된다”고 충고한다. 그의 이런 저항 덕분에 블랙리스트를 모른다는 박근혜의 주장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옳은 일을 해왔지만 부당하게 좌천, 해고된 공무원들이 명예를 되찾았다. 돈줄을 쥐고 예술을 협박한 추한 권력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스노든의 폭로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시티즌포>는 미국의 드론 공격과 120만 명의 감시리스트를 폭로하는 새로운 내부고발을 소개하며 끝난다. 스노든의 내부고발에 자극받은 사람의 행위다. 실제로 스노든의 폭로 이후 미국의 감시정책을 비판하는 여론은 높아진다. 미국 애국법은 개정되고,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대대적인 토론이 이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오바마는 백악관을 떠나기 전 첼시 매닝을 사면했다. 첼시 매닝은 이라크에서 미군이 헬기로 민간인을 공격하는 영상과 외교문서를 위키리크스에 폭로한 인물이다. 국가기밀을 폭로한 죄로 35년 형을 선고 받은 후 복역 중이던 첼시 매닝은 7년으로 감형돼 2017년 5월 석방될 예정이다. 우리 대통령은 ‘셀프 사면’을 위해 추악하게 몸부림친다. 자신이 지은 업보의 고난을 감당할 능력조차 안되는 나약한 리더쉽에 국민은 몸서리친다. 이제 거짓이 그녀를 움직일 차례다. 감옥으로.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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