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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언론이 유럽에서 ‘주류’가 된 비결

기사승인 2017.01.26  0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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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기념회] 이봉수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의 미디어비평집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 출판기념회가 23일 오후 7시 서울 홍익대 입구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렸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밤이었는데도, 한홍구 조효제 홍기빈 박상훈을 비롯한 한국의 논객들, 장해랑 이상요 홍경수 박인규를 비롯한 PD 출신 교수들, 조선희 이백만 정석구 오연호 김문환 정광섭 김현대 유강문 김의겸을 비롯한 전∙현직 기자들, 김영로 세명대재단 사무국장,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사장 등 60여 명이 기념회에 참석해 한국 진보언론의 활로를 놓고 질의응답을 벌였다.

   
▲ 출판기념회 시작 전 참석자들을 소개하는 이봉수 원장. Ⓒ 손준수

출판기념회에 등장한 ‘휴먼다큐 봉발대발’

질의응답을 하기 전, 일정에도 없던 ‘휴먼다큐 봉발대발’이 전격 상영됐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평소 휴대폰 등으로 이봉수 원장을 찍어온 영상들을 편집한 17분짜리 다큐멘터리였는데, 이 원장도 “처음 보는 영상”이라며 당혹해 했다. ‘봉발대발’은 학생들의 학업 태도가 나쁘면 노발대발하는 이 원장에게 학생들이 붙인 별명이다.

“여러분, 왜 글이 안 나와? 교양이 없어서 안 나오는 거야, 무식해서. 스스로한테 엄격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비판의식이 나오고 역사의식이 생기나?”

수업에 늦은 제자들을 꾸짖는 장면이 영상 첫머리에 나오자,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제는 기자가 된 한 제자는 “출판기념회 와서도 야단맞네”라며 웃었다. 서울 한겨레신문사에서 신문편집실습이 심야에 끝나면 학생들이 ‘봉카’라 부르는 차를 손수 운전해 새벽에 제천 기숙사까지 태워다 주는 자상한 ‘봉샘’이지만 실력 있는 언론인을 길러내는 데는 양보가 없다. (영상)

   
▲ '휴먼다큐 봉발대발'을 보며 즐거워하는 참석자들. Ⓒ 손준수

그는 왜 시민편집인에서 해임됐나

그의 호된 비판은 진보언론을 향해서도 가해졌다.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는 책 제목부터 정체성이 흔들리는 진보언론을 겨냥한다. 진보언론이 진보적 가치를 소홀히 한 채 중도 쪽으로 끌려가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그는 ‘사랑받지 못하는 시민편집인의 ‘글투정’’이라는 머리말을 통해 <한겨레> 시민편집인에서 왜 해임됐는지를 밝히면서 미디어비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향신문>에서 또 해임된 이유는 심증이 있었지만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 <경향>이 좌파 성향으로 분류돼 정부 산하 재단이 재정지원을 끊은 사실이 김기춘의 국정농단 사례로 폭로됐다.

   
▲ 출판기념회장을 메운 언론계·학계 등 인사들이 이봉수 원장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손준수

이 원장은 책을 내기 위해 한국의 진보언론을 비판하고 활로를 모색한 ‘<한겨레>는 왜 <가디언>이 못 되나’, 최근 시국 상황을 진단한 ‘서러운 지난날들은 왜 반복되는가’ 등 긴 글들을 새로 썼다. 그리고 <한겨레> <경향신문> 시민편집인으로서 쓴 글들을 새로 편집해 붙였다.

그는 광장의 열망이 현실정치에서 실망으로 바뀌는 이유를 흔히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탓으로 돌리지 않고 진보언론 자체에 책임을 묻는다.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스페인 <엘파이스>는 모두 진보 또는 중도좌파 신문이면서 세계 최고 영향력을 자랑하는데 그 비결이 뭘까? 그들의 발행부수는 <한겨레> <경향>과 비슷한 수준인데 어떻게 주류도 탐독하는 매체가 되어 자국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떠받치는 기둥이 됐을까?

그는 수구·보수가 열에 아홉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 신문시장을 고려할 때 진보언론이 갖춰야 할 것은 확실한 정체성이라고 주장한다.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중립에 기어를 넣고 한국사회가 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운 때일수록 전선을 분명히 하고, ‘자칭 보수’가 ‘가짜 보수’라는 걸 폭로하는 게 진보언론이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진보언론이 ‘균형강박증’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겨레>가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꾸리는 사설 비교 지면을 예로 들었다. 보수 매체인 <중앙>에 지면을 내어주며 ‘객관적인 시각을 기르기 위한’ 시도라 설명하는 <한겨레>에게 그는 묻는다. “그럼 <한겨레>만 봐온 독자들은 ‘편파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건가?”

‘괴물’ 안 되려면 미디어 자체·상호비평 활발해야

그는 논설위원과 경제부장으로 외환위기를 겪은 뒤 언론이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자각에서 마흔일곱 나이로 유학길에 올랐다. 저널리즘과 문화 연구로 유명한 런던대 골드스미스에서 6년간 공부하며 ‘미디어와 경제위기’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다. 그의 미디어비평에 유럽언론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유럽 일류언론이 우리 언론과 크게 다른 점은 언론인 충원·교육과정이 판이하고 미디어 자체비평과 상호비평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수만 명 ‘언론고시낭인’이 대기하고 있는 우리 언론사 공채는 한국 말고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저널리즘의 보편적 표준이 아니라 각 사의 규범, 선배들의 가치관과 문장 스타일까지 주입되는 도제식 언론인 교육은 시대착오적이고 한국 민주주의에도 많은 해독을 끼친다.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할 정도로 미디어 상호비평을 거의 하지 않는 풍토 또한 언론이 바로 선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언론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괴물’이 된 이유다.

<가디언>이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 된 요인으로는 베를리너판으로 디자인과 콘텐츠를 혁신한 점이 꼽히지만, 그중에서도 미디어면을 통해 보수언론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전술이 주효했다. 기사량도 많지만 최강으로 구성된 미디어팀은 보수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의 <더타임스> <더선> <뉴스오브더월드>와 싸우며 보수언론의 허구성을 가차 없이 파헤쳤다. <가디언>은 <뉴스오브더월드>의 전화 해킹 사실을 끈질기게 추적 보도해 2011년 폐간시키기도 했다.

   
▲ 출판기념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 원장. Ⓒ 손준수

그는 또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편집·편성지침이 겉치레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구성원의 일탈을 막는 수단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2만 명 직원이 있는 BBC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흔들림 없는 논조를 유지하는 것은 편성지침(Editorial Guidelines) 준수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침의 부제는 ‘가치들과 표준들’(Values & Standards)이다. BBC가 추구하는 가치를 열거해놓고 세세히 규정된 저널리즘의 표준을 지키기 때문에 일탈자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독립언론 콘퍼런스’를 주최하라

그는 진보언론이 취할 구체적 대안의 하나로 세계적 연대를 제안했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엄청난 비밀들을 제보할 언론사로 <가디언> <르몽드> <엘파이스> <슈피겔> <뉴욕타임스> 5개를 선정했는데, 모두 진보 또는 독립언론이다. <한겨레>도 끼어들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세계독립언론 콘퍼런스’ 같은 대회를 여는 방안도 제시했다. 한국에는 <한겨레> 말고도 <오마이뉴스> <뉴스타파> 등 세계에 내놓을 만한 독립언론의 대표주자들이 많다. 콘퍼런스 개최 뒤에도 기사 제휴 등으로 지속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면 한국 관련 기사는 이들 매체의 기사를 받게 되고 한국을 대표하는 위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독립적 위상을 유지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스스로 영역을 넓히려는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번은 추운 겨울날 과천 대공원 호수에서 물새들이 아직 얼지 않은 한쪽에 몰려있는데 새들이 계속 헤엄치며 날갯짓을 하는 걸 봤어요. 잘은 모르지만 저들도 좁아지는 자기네들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저런 노력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진보언론도 어려운 때일수록 더 간절히 발버둥 쳐야 합니다.”


편집 : 강민혜 기자

김평화 신혜연 기자 hot_forever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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