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황금빛 기자

▲ 황금빛 기자

사회관계망(SNS)을 통한 ‘해시태그(#)’ 운동이 한창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그런데 최순실은?’ ‘#문단_내_성폭력’ 등이 유행이었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가 굳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실제 광장에 나가지 않더라도 온라인에서 광장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앤더슨이 말한 ‘상상의 공동체’다. 물리적 공간에 함께 있지 않아도 우리는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기에 온라인 광장에 동참해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이제 우리에게 실제 광장은 필요 없어진 걸까? 그러나 ‘연대’의 가치를 강조한 철학자 로티는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려면 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는 다른 인간에게 굴욕당하는 일이 없는 사회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타자의 고통과 굴욕에 민감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라는 의식을 통한 연대가 가능하고 사회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할 수 있다.

▲ 타자의 고통과 굴욕에 민감한 감수성을 기르는 일은 실제 광장에 나와 얼굴을 마주할 때 가능하다. ⓒ Flickr

로티가 말한 타자의 고통과 굴욕에 민감한 감수성을 기르는 일은 실제 광장에 나와 얼굴을 마주할 때 가능하다. 온라인은 사회적 약자가 실제 광장에 나오는 것보다 더 쉽게 용기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연대가 같은 경험을 한 약자들끼리에 그친다는 점이 한계다. 특히 온라인은 확증편향을 강화해 끼리끼리 연대하게 만든다. 우리라는 의식을 통해 더 많은 사회 구성원들과 연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에 우리에게 실제 광장은 여전히 필요하다.

같은 처지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감수성까지 이끌어 내 더 큰 우리를 만들어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성폭력과 같은 사회문제는 사회 구조의 문제다. 우리 모두 관심을 모으기 위해 마주해야 한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관련 해시태그 운동을 통한 온라인 연대가 실제 광장으로 나온 것은 희망적이다. 이는 사회 구조의 문제지만 상대적 소수만 직접 관계되는 성폭력 같은 사회문제와는 다르다. 명백하게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에 실제광장으로 좀 더 쉽게 나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경험이 다른 사회 문제 해결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고통에 민감한 감수성을 키우기에 온라인은 서로간 실제 거리가 너무 멀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인간의 죽음이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을 비판했다. 미디어를 통해 중계되는 전쟁, 인간의 죽음 등을 보면서 우리는 무덤덤하게 관음증적 응시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응시의 대상이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을 통한 해시태그 운동이 관음증적 응시에 끝나지 않고 실제 광장으로 연대를 확장하는 징검다리가 됐으면 한다. 시국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인데 광화문집회에 나오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다. 보수반동의 빌미를 주지는 않아야 할 텐데… 19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편집 : 박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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