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촛불

▲ 박상연 기자.

불을 훔치다. ‘앞을 내다보는 자’ 프로메테우스가 최고 신 제우스에게서 훔친 천상의 불. 도둑질의 대가는 시렸다. 코카서스 산맥에 사슬로 묶여 매일 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혔다. 구원자 헤라클레스가 오기 전까지 불을 훔친 죗값을 치러야 했다. 앞을 내다볼 만큼 지혜로웠던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치며 코카서스의 사슬을 생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는 왜 불을 훔쳤던 것일까.

불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도구다. 인간이 날것으로부터 해로운 세균을 섭취하지 않도록 음식을 익힌다. 어둠을 밝히고 추위나 맹수에 맞서게 한다. 인간은 불로써 자신을 먹이고 지키며 문명의 기틀을 닦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알고 있었다. 본디 불은 지상의 것이었음을. 인간의 손이 닿지 못하게 숨겨 뒀던 천상의 불이 사실은 제우스가 지상 인류의 불을 훔친 것이었음을. 생명의 뿌리인 불을 인간에게서 떼어 놓고 신이 독점한다는 사실을 참기 어려웠다. 그는 시퍼런 오한이 들고 날아드는 까마귀 떼에 귀가 먹먹해져도 불을 훔쳐야만 했다.

2016년 한국, 800만 불길이 넘실댔다.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 집회의 촛불이 3만에서 100만 개로 불어나는 데 고작 3주였다. 대통령 박근혜와 최순실 일가는 국정을 농단하고, 재벌은 권력에 용춤 추며 콩고물 받아 챙겼다. 이들은 불을 훔쳐 어둠의 장막을 드리우고 시민을 눈 멀고 귀 먹게 했다. 민주주의를 뒤엎었다. 프로메테우스처럼 시민에게 다시 불을 돌려주어야 할 한국 언론은 시늉하기에 급급했다. 2014년 ‘정윤회 문건’이 터졌을 때라도, 최순실의 딸 정유라 ‘공주 승마’ 논란으로 불거진 승마협회 회장들의 기자회견 때라도 본분에 충실했다면. 한국의 프로메테우스는 죽었다. 언론은 스스로 족쇄를 차고 ‘쩐’ 냄새 나는 까마귀 떼에 제 몸 뜯기게 맡겼다. 

▲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 서울 광화문 광장을 뒤덮은 시민들의 촛불. ⓒ 박기완

분노한 시민이 직접 부싯돌을 찾아 불을 댕겼다. 미국 탱크에 짓밟힌 어린 생명에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도, 광우병 쇠고기에도, 대운하와 공기업 민영화 등 불통 정책 추진에도 대한민국 시민은 먼저 부싯돌을 들고 불을 붙였다. 각양각색의 촛불은 매캐한 연기 뒤로 시민의 불을 훔치려는 자는 반드시 그 불로 심판받는다는 절대명령을 남겼다. 불꽃이 제 몸 태워가며 스러져 가는 것은 오직 새로운 것을 비추기 위함이다. 함께 맞댄 불이 거리를 밝힌다. 시민이 불을 든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황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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