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월드] 청년 허브 컨퍼런스

대학생 네이선 로(23).

그가 입법의원이 된 계기는 2014년 일어난 홍콩의 민주화 시위다. ‘우산혁명’으로 불리는 2년 전 홍콩 민주화 시위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4년 8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내놓은 홍콩 행정장관 선거 기준이 불에 기름을 부었다. 친중국계로 구성된 후보 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 2∼3명으로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제한한 것이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 앞두고 ‘우산혁명’

이 법안에 반발하는 대학생들이 행동에 나섰다. 학생들은 2014년 9월 홍콩 중문대에서 집회를 하고 일주일간의 동맹휴업을 들어갔다. 중고등학교 학생단체도 하루 동맹 휴교로 힘을 보탰다. 수능이 끝나고 촛불집회로 간 우리네 고등학생을 연상시킨다. 경찰이 농성 중인 학생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자, 시민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가 가담하면서 대규모 시민 민주화 운동으로 옮겨 붙었다.

10만 명 이상이 참여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때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낸 시위대의 행동을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이라고 서방언론이 이름 붙였다. 하지만, ‘우산혁명’은 홍콩 경제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빛을 잃어 2014년 12월 수그러들었다. 현장에 남아있던 학생들은 연행되고 말았다.

미완의 ‘우산혁명’ 뒤에 반성이 일었다. 시민단체와 중, 고교생, 대학생으로 나눠진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위 때문에 다수의 시민이 불편을 겪어 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자성론도 고개를 들었다.

‘우산혁명’주역 학생들 정당 결성, 입법회의원으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는가. 이런 성찰을 거울삼아 혁명 주역들은 새로운 도전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들에게 좌잘과 포기는 없었다. 본격적인 정치 운동으로 새로운 방향을 잡았다. 데모시스트(香港衆志)당과 청년 신정(靑年新政)당 같은 정당으로 진화다. 홍콩의 국회격 인 입법회 의원에 선거에도 나섰다.

‘우산혁명’ 지도자였던 조슈와 왕은 만19세라는 나이제한에 걸려 입법회 의원에 출마할 수 없었다. 대신 그의 동료 네이선 로(23)가 출마해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 스카이프로 띄운 스크린 속에서 컨퍼런스 연사와 참석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네이선 로의 모습. 앉아있는 사람은 왼쪽부터 스와하라 다케시, 페이 위, 김형근. ⓒ 청년허브

이들은 ‘정치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너희들이 내거는 자치권(홍콩 민의 손으로 독립여부를 결정하자)은 충분히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판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네이선 로는 “사회현상을 깊이 볼 수 있게 되었고” “너무 쉽게 타협하는 기성정치에 대한 피로감에 청년 대표성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밝힌다.

데모시스트당 SNS 적극활용 대중과 소통, 지지 확보
 
데모시스트당이 젊은이들을 참여시키는 통로는 SNS였다. 홍콩은 소통에 필요한 디지털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홍콩에서 페이스북은 가장 인기 있는 플랫폼이다. 네이선 로는 페이스북에 “캠페인 비디오도 만들고 생중계도 했다. 이것이 전통 매체 역할을 많이 대체했다”고 뒤돌아본다. “주류 언론에 취재당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 손으로 직접 찍고 전파했다. 이런 홍보 영상을 통해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교류 가능성을 높였다”고 들려준다.

네이선 로는 ‘베이’라는 번화가에 부스를 설치하고 대종 속으로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어려웠다.”고 털어 놓는다. ‘우산혁명’이 실패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 소통의 중요성을 간파한 것이다.

네이선 로는 선거운동 과정에 소송을 당해 사회봉사 판결을 받는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소통 덕분에 트러블 메이커라는 오명을 벗고 입법회 의원의 자질이 있음을 보여줬다. 그 소중한 소통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했다. 지난해 9월 선거 결과 네이선 로는 60%의 표를 얻어 무난히 당선됐다.

홍콩에서 아시아로 공유의 폭 넓혀 나가

네이선 로의 당선은 홍콩 시민이 자치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 네이선 로는 “홍콩 정부가 선거를 무효화시키려고 해 정치투쟁이 지역단위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그러나 비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 상황을 우산혁명의 모멘텀을 재결합을 할 기회로 바꿔 나가려 한다”는 결기를 보인다.

그는 “젊은 정치인들의 참여가 홍콩의 미래”라고 희망에 차 있다. 홍콩의 미래만이 아니다. ‘우산혁명’을 이끈 청년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홍콩을 넘어 비슷한 환경의 아시아 각국 청년들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민주아시아 청년네트워크는 그 결과물이다. 조슈아 왕은 정부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방법을 강의하러 다닌다. 지난 해 서울에도 왔었다.

홍콩의 경험이 한국의 경험이요, 한국의 경험이 홍콩의 경험이다. 네이선 로는 말한다. “홍콩 사람들도 서울에서처럼 매주 집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러면서 덧붙인다. “서울의 정치과정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홍콩에도 관심을 가져달라” 2016년 늦가을 한국의 촛불 시민혁명은 정녕 한국을 넘어 아시아 민주주의의 미래에 전환점이었다. 촛불 정신의 지속적인 실천과 공유가 우리 청년은 물론 아시아 젊은이들의 기꺼운 의무이자 권리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던 지난 9일 오후 3시 30분. 직선거리 7km 떨어진 시청광장에서는 폭죽이 터졌다. 14km 거리의 서울혁신파크 다목적 홀에서는 중국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가 통역기로 오가는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일본과 대만, 홍콩에서 날아온 청년 정치인들이 주인공이다. 서울시가 주최한 <청년허브 컨퍼런스>. 주제는 [정당정치의 새 지형: 변화의 정치]다. 아시아 각국의 청년 운동가들은 왜 기성세대 정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는지. 열정적으로 쏟아내는 그들의 현장 경험은 우리가 촛불민심으로 일궈낸 대통령 탄핵안 가결의 시민 혁명과 같은 선상에 놓였다. 탈정치시대를 참여 정치시대로 바꾸는 아시아 청년들의 도전기를 일본, 대만, 홍콩 순으로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편집 :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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