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7차 촛불집회 DJ DOC 무대

DJ DOC의 ‘수취인분명’이란 노래는 온라인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유튜브 조회수가 150만을 넘었다. 하지만, 이 곡은 11월 26일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 무대에 오르기 전날 전격 취소됐다. ‘여혐 가사’ 때문이다. 주최 측인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미스 박’과 ‘세뇨리땅’, ‘하도 찔러 대서 얼굴이 빵빵’ 등의 가사를 문제 삼았다. ‘수취인 분명’을 빼고 부르겠다는 수정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광장 무대 선 DJ DOC

탄핵안이 가결되고 12월 10일. 장소를 바꾼 서울 광장 무대에 DJ DOC가 나타났다. 오후 4시 15분쯤 행사 마지막 무대에 올랐다. 멤버들이 등장하자 무대 쪽으로 청중이 몰렸다.

“자! 박근혜를 하야시킬 준비 됐나요. 자 다 같이 시작할까요.”

첫 곡은 1997년 인기를 끈 ‘DOC와 춤을’이었다. 후렴구를 ‘하야야하야하야야’라고 바꿔 불러 객석의 호응을 얻었다. 두 번째 곡 ‘삐걱삐걱’을 부르기 전 “저희가 18년 전에 만든 노래인데, 그때랑 지금이랑 바뀐 게 하나도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은 힘없는 사람을 돌봐주지 않아’라는 가사에 청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 DJ DOC가 서울광장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고 있다. ⓒ 서창완

‘여혐’ 지적에 ‘미스 박’ 빼고 '수취인 분명' 열창

“이번 노래를 내면서 무대를 2주 만에 올라왔어요. 저희가 무대 올라오기 전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고, 저희가 무대 올라가기 전에 하야하라고 했거든요. 안 하고 있잖아요, 지금. 눈치가 없는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 저희가 올라왔으니 들려드려야죠. 수취인 분명.”

▲ DJ DOC 멤버 이하늘이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 서창완

‘여혐 논란’에 휩싸였던 '수취인 분명'이 울려 퍼졌다. 문제가 됐던 가사 ‘미스 박’은 빠졌다. ‘세뇨리땅’은 새뇨리당‘으로 ’하도 찔러 대서 얼굴이 빵빵‘은 ’하도 찔러 대서 됐어 빵빵‘으로 바뀌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힘을 얻은 DJ DOC는 ’수취인 분명‘에 이어 요즘 시국을 보며 만들었다는 '알쏭달쏭'을 불렀다. 시민들은 팻말을 좌우로 흔들거나 흥겹게 뛰며 무대를 즐겼다.

서울광장의 DJ DOC 무대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행사 주최가 달랐다. 서울광장 무대 주최 측인 ‘민주주의국민행동’의 박준의 활동가는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저희가 섭외를 했고, 가사 부분이 문제 되지 않도록 처리하겠다고 약속받았다”고 들려준다.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지 지정해 준다거나 사전에 검열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신뢰를 하고 맡겼다”고 덧붙인다.

▲ DJ DOC 무대에 모여 있는 시민들. ⓒ 서창완

예술과 창작은 소통과 자유에 대한 신뢰에서 발전

무대 막이 내리고 행진을 시작하기 전 시민들을 만나 의견을 들어봤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김동은(34), 김슬기(32) 부부는 “가사가 속 시원하고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어 좋았다”며 ‘여혐’으로 문제가 됐던 부분에 대한 질문에는 “가사가 바뀌기 전에도 별로 느끼지 못했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1학년인 임가윤(17) 양과 이지인(17) 양은 “유명한 사람인데 나와서 할 말 하는 게 멋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여혐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인데, 너무 생활 속에 스며있어 사람들이 문제인 걸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쉽다”는 따끔한 지적도 곁들였다. 가사를 바꾸지 않더라도 “DJ DOC의 선택이니 존중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구에서 올라온 김민정(26) 씨는 무대가 취소된 것에 대해 “지금 화난 상태라 여혐이라고 깊게는 생각 안 했다”며 “강력하게 표출한 게 오히려 속 시원했고, 공연이 취소된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너무 까다롭게 반응하면 (창작자가)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말을 곁들였다.

▲ 스크린 풍자 메시지와 무대를 즐기는 시민들. ⓒ 서창완

하헌기 바른음원 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여성단체의 문제제기는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 이유로 촛불집회는 “DJ DOC의 개인 콘서트장이나 상업 행사장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국민들의 정치적 요구의 장”이란 점을 들었다. 그러나 ‘수취인 분명’ 노래를 빼거나 가사를 바꿔도 무대에 오르면 안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태도를 교정하고 갱신하면 그것을 인정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문제제기를 수용해 가사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무대에 서는 게 더 큰 성과"라고 덧붙였다.

‘표현의 자유’와 ‘규제’, ‘소통’에 대해

'수취인분명' 논란은 민주주의의 오랜 과제인 '표현의 자유'와 '소통', '규제'와 '선택'의 문제에 맞닿는다. 민주사회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자주 충돌한다. 이를 규제할 권한을 가진 주체는 누구인가. 자유로운 시민의 개별 의사판단은 어디까지 가능한지도 문제다.

갑자기 몰아친 찬바람이 매섭던 날. '여성 혐오'라는 지적을 수용해 가사를 고치고 광장에 나타난 DJ DOC. 그의 무대에 대한 판단도 개별 시민의 몫으로 남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퇴진을 넘어, 우리 사회가 앞으로 그려갈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DJ DOC의 무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중대한 질문을 광장에 던졌다.


편집 :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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