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표결 앞둔 국희 의사당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한 8일 국회의사당, 차가운 날씨 속에 금방이라도 눈이 흩날릴 듯 짙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마치 ‘탄핵의 전운’이 감돌듯이... 시내 곳곳에는 ‘박근혜 퇴진’ 플래카드가 겨울 찬바람에 유난히 크게 펄럭인다. 탄핵 표결처리를 앞두고 대통령은 사과문 발표를 통해 국민을 만나는 대신 새누리당 지도부를 불렀다. 흔들림 없는 국정수행을 다짐했다. 퇴진은 없다는 대못을 박았다. 새누리 지도부는 머리 조아렸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자신들 권력에만 눈이 먼 자들을 청와대로 국회의사당으로 보낸 결과다. 4% 지지율로 버티는 자체가 국정을 뒤흔드는 것인데, 그걸 흔들림 없는 임무라고 우기는 궤변. 그 후안무치도 이제 하룻밤 지나면 운명을 가른다. 오롯이 300명 국회의원 손에 달렸다. 그러니, 시민들이 생업도 뒤로하고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미 가슴에는 탄핵을 불을 지피고 가결 처리한 지 오래됐지만, 내 손으로 뽑은 그 국회의원들을 믿지 못하겠으니까...

“탄핵 부결 신경 안 써. 퇴진할 때까지 국민이...”

오후 3시. 국회의사당 출입구. 모 정당이 설치한 시국 발언대가 시민들의 시선을 모은다. “박근혜는 이미 국민이 탄핵했습니다. 새누리당도 심판받아야 합니다...” 시민들 시국 발언이 이어진다. 구경하던 시민 한 분이 시국 발언 도중 고함을 친다. “박근혜, 이정현, 김기춘 모두 다 심판받아야 돼! 그래야 나라가 살아!”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시국 발언자가 할 말을 까먹었다고 머리를 긁적이자, 고함을 친 시민은 “미안해,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라고 오히려 멋쩍게 웃는다. 굳었던 시민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시국 발언대 옆 공터에 ‘박근혜 퇴진’ 피켓을 든 할아버지 세 분이 큰 소리로 이야기 나누신다. 국회 의사당 근처에 살고 있다는 김만곤(75) 할아버지. “이제 TV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보고 싶지 않아”. 이를 지켜보시던 85세 할아버지는 국회 의사당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탄핵이 통과되던, 부결이던 신경 안 써. 이미 국민은 박근혜를 탄핵했어. 부결되면 퇴진할 때까지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어?” 박근혜 대통령의 든든한 우군은 특정 지역과 특정 연령대가 아니었던가. 지지율이 4%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곤두박질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르신들마저 이미 마음속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지 오래다. 

“나라를 바꾸는 건 국회가 아니야 국민이야“

재치 있는 아이디어랄까? 주변의 웃음을 자아내는 생명체가 눈에 띈다. ‘근혜야! 내가 대통령 할 개. 내려와~’란 피켓을 목에 건 생명체의 정체는? ‘할 개’라는 다소 의아한 맞춤법이 예사롭지 않더니... 검은색 개였다. 국회 의사당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61살 김용득씨가 반려동물 ‘검둥이’와 함께 나왔다. “나는 선거도 안 하는 사람이야. 그만큼 정치에 관심이 없었어.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수사받는다고 했다가, 1주일 만에 안 받는다고 하잖아. 그게 너무 화가 나서 나왔지.” 

▲ 시민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탄핵 가결을 위한 목소리를 낸다. 그 중 유쾌한 피켓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 송승현

손바닥 뒤집듯 그때그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말을 바꾸는 사람을 저잣거리에서 마주칠 때 피하면 상책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지도자라면 달라진다. 일생 정치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노인을 시위현장으로 이끈다. 김용득 씨의 말이 오래도록 귓전에 남는다. “나라를 바꾸는 건 국회가 아니야. 국민들이 나올 거야. 국민들이 해야 해”

국회 의사당 정문에는 추위에 몸을 떨어가며 양어깨와 목에 피켓을 3개나 매단 시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피켓에 자신을 춘천의 장덕영이라고 적은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백번 잘못했다. 사실 하야를 해서 국정 마비만은 피하는 게 가장 좋은데, 대통령이 그러질 않는다.”고 아쉬움을 나타낸다. 

새누리당 당사 앞 격렬 시위, 내용은?

이번 탄핵안 가결의 열쇠를 쥔 새누리당. 당사 앞으로 발길을 옮겼다. 재치만발의 국회 의사당주변 풍경과 사뭇 다르다. 격렬한 구호가 난무하는 집회가 펼쳐진다. 누구를 비판하는 걸까? “비박계는 정계를 은퇴하라”는 고성과 함께 귀가 째져라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 탄핵 국면에 갈피를 못 잡던 비박계를 비난하는 시민들인가? “박근혜와 이정현 그리고 대한민국을 지켜내야 합니다. 여러분”. 손 태극기를 펄럭이는 집회의 주인공은 60여 명. ‘대사모(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다.

▲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에서 탄핵 부결 집회를 여는 대사모(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 ⓒ 송승현

그 중 한명이 기꺼이 인터뷰에 응한다. “대통령을 사랑해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이대로 물러나면 종북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가요.” 옆에 있던 다른 참가자에게 물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잘못이 없는 것 같으세요?”. 뜻밖의 답이 나온다. “어차피 말해도 내가 한 말과 다르게 쓸 거잖아. 언론은 다 못 믿어”. 여기까지 듣고 발길을 돌리는데 들려오는 확성기 속 외침이 섬뜩하다. “탄핵안이 가결되는 날, 그 날은 피바다가 될 것”.

“오늘 야당 국회의원들은 모두 사직서를 썼습니다”  

다시 국회 의사당. 저녁 6시. 어둠이 내리자 하나, 둘 촛불이 켜진다. 해학적인 문구의 피켓을 들었던 손에 어느새 촛불이 쥐어졌다. 퇴근한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국회 의사당 앞은 이내 촛불 집회장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임시 무대에서 야당 인사들이 탄핵의 결의를 다진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오늘 오전 야 3당 국회의원들이 사직서를 썼습니다. 그럴 일 없겠지만, 탄핵이 부결된다면 저희 모두가 책임질 것입니다.”며 시민들에게 탄핵 지지를 호소한다. 책임지고 사퇴할 사람은 가만있는데... 대신 고해성사를 한단 말인가.

▲ 탄핵 전날, 국회의사당에서 탄핵 촉구 촛불 집회를 벌이는 시민들. ⓒ 송승현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따끈한 고구마와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사이다가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촛불집회가 벌어지는 국회의사당 정문 앞은 발 디딜 틈이 없어, 시민들이 지나다닐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 경찰과 시민들이 고성을 주고받는 모습이 광화문과 달랐다. 그만큼 탄핵 전야라 더 긴장한 탓일까...

민주주의를 향한 촛불은 비바람에도 꺼지지 않아

저녁 7시.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진다. 시민들은 발길을 돌리는 대신 우비와 우산을 꺼낸다. 자기 몸은 뒤로 한 채 촛불부터 덮어준다. 그만큼 탄핵의 불씨를 꺼트리고 싶지 않은 열망이리라. 관악구에서 온 19살 신명석 씨. 비도 오고, 날도 궂은데 무엇이 그의 발길을 국회 의사당으로 이끈 것일까. “공부하는 학생이기 전에 나라의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이거라고 생각해서 왔어요”.

▲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민들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 송승현

춘천에 지역구를 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원이라는 거룩한 위치에서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유치원생도 다 아는 시시한 얘기를 해서 비웃음을 샀다. 그런데, 탄핵 표결을 앞둔 전야. 바람과 비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회복을 향한 촛불은 비바람이 거셀수록 더욱 끈질기게 타오를 기세다. 그렇다면 이 밤이 지나고 실시될 탄핵 표결 결과는 사실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가결되든 부결되든 대통령 즉각 퇴진을 향한 촛불은 횃불로 더욱 활활 타오를 테니까.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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