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촛불

▲ 송승현 기자

하인리히 뵐의 저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언론의 관음증에 망가진 여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밀애 대상인 은행 강도 ‘괴텐’의 도주를 도왔다는 이유로 그녀의 모든 과거는 왜곡, 날조된다. 심지어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로 공산당의 첩자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씌운다. 결국, 그녀는 날조 기사와 부도덕한 취재 방식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기자를 총으로 쏘고 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연이어 쏟아져 나온다. 지난 24일 JTBC의 ‘태블릿 입수’ 보도 이후 수면위로 드러난 국정농단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언론의 관음증도 불거진다. 본질을 벗어나 곁가지를 낳는다. ‘비아그라’, ‘팔팔정’, ‘청와대침대’에 매달리는 보도가 그렇다. 최태민이 창시했다는 ‘영세교’, ‘굿판’, “신천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실 침투”도 마찬가지다. 헌법 20조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11조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해 특정 종교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은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 ⓒ Flickr

이번 사태의 본질은 ‘박근혜의 불법’이다. 나아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실패다. ‘박근혜 게이트’는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나왔다. 190만 촛불 민심과 탄핵 찬성 비율 80%를 넘는 민심에도 퇴진하지 않고 버티는 박근혜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 그대로다. 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를 뒷받침하는 뒷배는 무엇일까. ‘소선거구제도’ 아래서 거대양당이 누려온 권력독점 시스템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언론은 구조적 접근은 배제한 채 국정농단 사태 자체나 자극적인 곁가지에 초점을 둔다. 관음증은 난무하지만, 국내 민주주의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한 언론 보도는 개헌에 편승한 짤막한 언급 외에 가뭄에 콩 나기다.

박 대통령은 지난 29일 제3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자진 퇴진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로 공을 떠넘겼다. 이를 계기로 전날까지만 해도 ‘탄핵’에 찬성했던 비박계 의원들이 탄핵에 제동을 건다. 제1 야당은 탄핵 통과를 위한 숫자가 부족한데도 협력 정치를 뒷전으로 미룬다. 국민의당 역시 탄핵 이후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이 부족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이미 정치공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변질될 조짐을 보인다. 국민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대로는 제2의 박근혜가 나올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언론도 공범이다”는 광장의 외침. 관음증이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을 향한 '사회 감시자(Watch Dog)' 역할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고 싶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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