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우리가 바꾸자] 서지연 기자

▲ 서지연 기자

‘법대로 하자’는 말이 있다. 한국인들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상황에서 종종 쓰는 말이다. ‘법대로 하자’는 것은 상황이야 어찌 됐든 법의 판결에 기대어 담판을 짓자는 ‘법치’를 연상시킨다. 이는 법이 정의를 판가름하는 잣대로 우리 생활에 얼마나 밀착해 있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는 7년 전 서울시청광장에서 법에 관한 두 가지 문구를 보았다. ‘법치의 이름으로 민주를 짓밟았다’, ‘민주의 이름으로 법치가 짓밟혔다’가 그것이다. 전자는 진보의 논리로, 후자는 보수의 논리를 대변하며 ‘법치’는 ‘민주’와 대립하는 가치로 여겨졌다. 2016년 현재, ‘법치’는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법대로 통치하지 않은 대통령의 턱밑에 ‘하야’를 들이대고 있다.

‘법’을 정의의 파수꾼처럼 여기는 사회 풍토는 우연이 아니다. 현대 자유민주주의는 통치의 수평적, 수직적 통제를 통해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의 선을 만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법은 사회정의의 초석이자 최후의 보루다. 그러나 여기에 권력을 통제하는 삼권분립인 수평적 통제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법치’는 무늬만 법치일 뿐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대통령이 사익을 위해 법안을 발의하고 중요한 결정들을 좌우할 수 있었던 것은 권력간 수평적 통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선거’에서 ‘저항’으로 수직적 통제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수평적 통제에 실패한 것은 상대적으로 국회의 역할이 축소된 탓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역할이 커지고,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가 힘을 쓰지 못하면서 그 역할을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등이 대신하고 있다. 이번 사건뿐 아니라 4대강 사업, 세월호특별법시행령 등은 모두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아니라 대통령이 추진한 사업이나 행정집행에 가깝다. 몇 년간 국회는 약 600억 원의 엄청난 세비를 쓰면서도 어떤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분기가 있었다. 대통령들은 임기 중에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누리면서 ‘식물국회’의 견제를 별로 받지 않다가 임기가 끝나면 사법부의 심판을 받곤 한다. 정치의 사법화다.

▲ 로크는 법의 목적이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것이라 말했다. ⓒ pixabay

‘개헌’으로 국회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생각은 주객이 바뀐 ‘객반위주’(客反爲主)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통령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또는 의원내각제 개헌은 모두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대적 양당체제로 제 역할을 못 하는 국회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이는 개헌이라는 거대한 변화 없이, 투표 비례율을 높이는 선거제도 개혁만으로 이룰 수 있다. 유효 정당의 수가 늘어나면 대통령제에서도 의원내각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 ‘독재’의 트라우마가 남은 한국이 대통령중임제를 선택하거나 정국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의원내각제로 정치체제를 전복시키는 것보다 안전하고 쉬운 방법이다.

로크는 “법의 목적은 자유를 제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법치란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말이 아니다. 법치의 이름으로 민주를 짓밟지 않고, 민주의 이름으로 법치가 짓밟히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권력 간에 힘을 잘 분배하는 것이다. 대통령제에서도 행정부의 입법 권한이나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임명 권한 축소 등의 기술적 문제를 보완하면 수평적 통제는 언제든 가능하다. 지금 법을 뜯어고치지 않아도, 법대로 해도 되는 정치문화가 이룩될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대통령이 불쑥 개헌론을 던졌다. ‘게이트’가 열리지 않도록 하려는 불순한 의도였다. 이를 간파한 시민사회와 야권은 ‘수사와 퇴진이 먼저’라며 유례없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어느 대통령 할 것 없이 불행한 말로를 겪게 되는 이유는 권력구조가 잘못 짜여있기 때문이다. <단비뉴스>는 다음 대선 전이든 후든 개헌론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미리 논쟁의 터를 마련하기로 했다. 마침 이봉수 교수의 튜토리얼 시간에 제출된 과제들 중에 학생들의 다양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이 많아 토론과 첨삭을 거친 뒤 연재한다. 권력구조 말고도 새 헌법에 담을 다양한 제언과 참신한 시각들을 환영한다. (편집자)

편집 :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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