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촛불집회

▲ 송승현 기자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단지 시대마다 주인공, 형식, 형태 등이 바뀔 뿐이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직선제 등 형식적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30년 뒤 우리가 받은 성적표는 ‘박근혜 게이트’. 2008년 70만이 운집한 광우병 촛불집회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8년 뒤 돌아온 것은 공권력에 짓밟혀 운명한 농민. 2014년 4월 이후 광화문 광장에서 꾸준히 열린 세월호 집회에도 남은 것은 여전히 바다에 가라앉아 떠오를 줄 모르는 7시간의 진실이 아닌가. 26일 광화문에서 150만의 시민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평화 촛불집회를 열었다. 반복돼 온 역사를 본다면 ‘150만의 시민 결집’과 ‘성공적인 평화 시위’에 취해 있을 일도 아니다.

이번 촛불집회로 드러난 민의의 종착점에 가장 가까운 사건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꼽는다. 두 사안은 정치 스캔들, 여론 악화 등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 또한 크다. 닉슨의 은폐 지시에도 불구하고 워터게이트 사건의 배후를 조사한 FBI. 대통령의 특별검사 해임 지시를 거절하고 사임한 법무장관. 성역 없는 수사가 가능한 환경에서 닉슨은 하야를 택하는 길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 검찰에 성역 없는 수사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검찰은 “정호성의 핸드폰에 담긴 박 대통령의 녹음파일이 10분만 공개되면...”이라는 말을 흘리면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의 사표를 반려시켜 청와대 주도 사정라인을 복원하려 안간힘을 다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제왕적 대통령 구조 하에서 시간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의 편이 될 수 있다.

플라톤은 <정체> 8권에서 민주주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이로 인해 무질서한 대중은 괴물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Democracy)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데모스(Demos, 민중)와 크라시(Cracy, 힘)가 합쳐진 말이다. 플라톤이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중의 힘으로 움직이는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민주주의 대신 현인이 지배하는 철인정치(哲人政治)에 후한 점수를 줬다. 하지만, 고대 철학자들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든, 민주주의는 권력자가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닌 민중의 목소리가 힘을 갖는 제도다. 바꿔 말해 대중의 요구가 변한다면 언제든 현실정치에 반영돼야 한다는 뜻이다.

▲ 촛불이 공염불로 사그라들지 않기 위해, 퇴진과 더불어 이후도 고민해야 한다. ⓒ flickr

2013년 2월 25일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했다. 그러나 26일 광화문에 집결한 150만 시민과 이를 지켜본 대다수 국민은 이제 그 권력을 거둬들였다. 이를 실현하려면 촛불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직접민주주의가 확산하는 세계 곳곳으로 시야를 넓혀보자. 국민투표로 정책을 결정할 뿐 아니라, 신뢰 잃은 정치인을 국민소환제로 끌어내린다. 수렴청정 아래 금치산자 대통령을 단죄할 국민주권을 우리도 확보하는 동시에 촛불 이후를 차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타오른 촛불민심이 공염불로 사그라질지 모른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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