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트럼프

   
▲ 전광준 기자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 토머스 프리드먼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세계화를 통한 번영을 위해 규제 완화, 민영화, 관세 인하로 대표되는 황금 구속복의 착용이 필수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착용을 거부할 때 남는 건 렉서스라는 번영 대신 황야의 말라비틀어진 올리브나무 뿐이다. 황금 구속복-세계화-번영으로 이어지는, 일직선적 세계관이 너무나 뚜렷해 벗어날 길조차 없어 보인다.

세계화의 상징인 미국이 황금 구속복을 벗어 던졌다. 반세계화‧반이민을 외친 트럼프 대통령당선이 이를 말해준다.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준 핵심지역은 미국 5대호 주변 제조업 쇠락 지역인 러스트 벨트(Rust belt)다. 1992년 이래 민주당 텃밭이던 이곳이 죄다 공화당으로 돌아섰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화로 줄어든 최대 20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직접적 원인이다. 세계화에 지칠 만큼 지친 러스트 벨트의 위스콘신 주를 클린턴은 유세 때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패배의 그늘은 그렇게 드리웠다.

▲ 세계화의 상징인 미국이 황금 구속복을 벗어 던졌다. 반세계화와 반이민을 외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이를 말해준다. ⓒ Flickr

세계화는 이 지역 일자리는 물론 주민들 소득도 앗아갔다. 지난 20년 동안, 선진국 최하층 소득은 고작 1% 올랐다. 같은 기간 65% 오른 선진국 최상층 소득은 물론 개도국 최상층과 최하층 소득이 각각 23%, 15% 오른 것과 대비된다. 저임금 노동자가 선진국으로 대거 유입돼 일자리를 잃은 선진국 최하층의 소득은 뒷걸음질 쳤다. 선진국 내 일자리가 대거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한 것도 한 원인이다. ‘똘레랑스(관용, Tolerence)’를 외치던 선진국에서 프랑스의 극우 국민전선 약진, 영국의 브렉시트 등 최하층을 중심으로 반세계화 반이민 물결이 거세진다. 세계화가 가져온 후폭풍이다. ‘얕은 세계화’ 필요성은 여기서 움튼다.

현재의 ‘깊은 세계화’는 민주주의, 국민국가와 공존하기 힘들다. 깊은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정책적 자율성을 옭아맸다. 선진국 최하층으로 대표되는 경제 소외계층을 낳아 민주주의까지 갉아먹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세계화로 가되,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각 국민국가의 정책 결정권이 존중되는 세계화가 필요하다. 얕은 세계화만이 민주주의 영향력을 높여, 소득불평등을 해결하고 소외계층을 줄이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온다. 미국이 얕은 세계화 정책을 도입했다면, 무작정 반세계화를 앞세우는 트럼프가 당선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궁지에 몰리면 민주주의는 황금 구속복을 벗어던진다.”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의 말이다. 소득 감소로 궁지에 몰린 러스트 벨트는 황금 구속복을 이젠 벗어던지겠다고 선언했다. 관세 인상으로 황금 구속복을 벗겨주겠다고 약속한 트럼프에게 승리가 돌아갔다. 하지만 트럼프가 만들 미래는 결코 황금빛이 아니다. 미국의 관세 인상은 타국의 관세 인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전반적인 상품 가격은 올라간다. 가격 인상에 따른 피해는 지금까지 값싼 중국산 공산품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정치와 경제 간 악순환의 반복이다. 얕은 세계화로 이 고리를 끊을 때가 왔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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