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제천 어린이집 사망 사건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네 살배기 원아를 강제로 재우다 질식사하게 한 사건의 공판에서 공소유지 결정이 내려졌다. 10일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2호 법정에서 지난 9월 7일 제천 장락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영아 사망 사건의 1차 공판이 열렸다.

피의자는 어린이집 보육교사 천 모(여·43) 씨로 피해자 최 모(4) 군이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최 군을 이불로 덮어씌워 몸을 압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군이 움직이지 않자 천 씨는 보육일지를 쓰기 위해 자리를 비운 채 약 50분간 최 군을 내버려 두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 지난 10일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에서 어린이집 영아 질식 사망 사건의 1차 공판이 열렸다. Ⓒ 민수아

이날 열린 공판에서 변호인 측은 사죄의 말을 전했다. 변호인은 합의를 통한 해결을 요청했지만, 최 군의 아버지는 “아이가 죽은 일이 합의가 될 일이냐”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원만한 합의를 위해 유가족과 접촉을 시도하고 노력했다는 변호인의 말에 “유가족에게 한 번 찾아온 것을 노력했다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감정이 격해진 유가족 일부는 재판정을 나가는 피의자에게 비난의 말을 던져 재판관으로부터 주의를 받기도 했다. 재판관들은 공소를 유지하고 다시 재판하기로 해 천 씨의 처벌 수위는 12월 1일 재판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학대’에 대한 명확한 이해 필요

제천경찰서는 사건 다음날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천 씨를 긴급체포했다. 하지만 법원은 최 군의 사망과 천 씨가 강압적으로 잠을 재우려는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최 군 또래 아이를 둔 제천시 어머니 모임은 공분했고 최 군의 부모는 법원 앞에서 천막 시위를 벌였다. 천 씨가 최 군의 몸을 압박하는 화면이 담긴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한 뒤에야 질식사의 개연성이 인정되어 10월 11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 최 군의 죽음을 알리는 현수막과 천막이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건물 앞에 설치되어 있다(10월 21일). 지금은 모두 철거된 상태다. Ⓒ 민수아

유가족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제천환경운동연합 김진우 사무국장은 "처음부터 경찰이 업무상과실치사가 아닌 아동학대치사로 보고 영장을 신청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체포 당시 폐쇄회로TV 영상도 확보한 상태에서 경찰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영장을 신청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한 달이 지나 아동학대치사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지만, 그 사이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입힌 정신적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이냐며 경찰의 초기 대응을 비판했다. 김 사무국장은 “경찰이 학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피해자가 저항력이 없는 아이임을 고려하여 수사를 진행해야 했다”고 의견을 밝혔다.

사건을 담당한 제천경찰서 여성청소년과는 “학대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조사한 근거를 설명했다. 학대를 판정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통보 없이 학대에 따른 치사로 영장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는 확인된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죄명을 정하기 때문에 절차상 처음부터 학대로 사건을 다루기 어렵다고 전했다.

어린이집 낮잠 시간과 보육교사 노동환경

2014년 11월 서울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생후 11개월 된 아이를 엎드려 눕히고 이불로 덮어 재웠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강제로 잠을 재우려다 아이가 사망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과 비슷하다.

▲ 낮잠을 자는 동안 보육교사들이 하는 일. Ⓒ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의 2008년 논문 <어린이집에서의 낮잠에 대한 교사와 부모의 인식 및 실제>에 따르면 연구대상 어린이집 교사들의 92.1%가 ‘낮잠 시간이 있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에 보육교사들은 주로 개인 업무를 보거나 자지 않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 천 씨는 최 군을 억지로 재운 뒤 보육일지를 쓰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오랜 시간 최 군을 내버려 둬 사망에 이르게 했다.

▲ 천 씨가 작성한 최 군의 보육일지. Ⓒ 민수아

영유아에게 낮잠은 신체발달과 정서적 안정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원아 개개인의 수면 습관을 무시하고 어린이집에서 일괄해서 낮잠을 재우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의 보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 낮잠을 자는 아이들을 항상 지켜보기 위해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보육교사 1인당 어린이 수 현실화해야

사건이 벌어진 장락동 어린이집의 원아는 8월까지 17명이었고 9월에 6명이 더 들어왔다. 기존 원아의 30%가 넘는 수의 인원을 더 받았으니 해당 어린이집은 보육교사를 늘리는 등의 조처를 취해야 하지 않았을까?

어린이집 원아 수를 관리·감독하는 것은 해당 지자체의 역할이다. 제천시청 여성가족과 김영옥 보육 지원 팀장에 따르면, 연초에 어린이집 인허가에 대한 보육정책위원회가 열리고 채용된 보육교사의 수를 바탕으로 어린이집 보육정원이 정해진다고 한다. 최 군이 다니던 어린이집의 정원은 이 과정을 통해 27명으로 정해졌고 27명 이하로는 어린이집이 자체적으로 원아를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 사고가 일어난 어린이집은 제천시로부터 휴원 처분을 받았다. Ⓒ 민수아

제천시내에는 시립 어린이집(국공립), 법인 어린이집, 민간 어린이집(인허가), 가정 어린이집(정원이 20명 이하인 민간 어린이집) 등 어린이집이 70여 개 있다. ‘보육사업안내’ 지침에 따라 매년 정기적으로 어린이집을 점검하고 사안이 있을 때는 특별점검을 한다고 김 팀장은 전했다. 어린이집의 종류에 따라 관리·감독 시스템이 다르지는 않지만 지원되는 사업비 규모는 다르다.

충북교육청은 지난 10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반영하지 않은 내년도 예산안을 도의회에 제출했다. 이런 흐름이라면 최 군 사망 사건과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지자체의 신속한 관리·감독을 통해 보육교사 1인당 아동수의 현실화가 절실해 보인다.

국가 보육정보 사이트의 부실한 내용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2014년 11월 17일부터 ‘어린이집·유치원 통합정보공시’ 사이트(http://www.childinfo.go.kr)를 구축하고 서비스를 제공했다. 어린이집·유치원 전반의 주요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부모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선택의 폭을 넓혀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린이집·유치원의 설립유형, 위치정보, 영유아/교직원 현황, 운영시간, 부담금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 사고가 난 어린이집을 ‘어린이집·유치원 통합정보공시’ 사이트에서 검색한 결과, 보육교사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 ‘어린이집·유치원 통합정보공시’ 사이트.

‘어린이집·유치원 통합정보공시’ 사이트에서 사고가 벌어진 어린이집을 검색해보면, ‘연령별 반 현황’은 6개 학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교직원 현황’ 정보는 매우 부실해 총 교직원 수가 1명으로 명시되어 있고 이것도 원장을 가리키는 내용이다. 실제로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교사 숫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보육교사가 어떤 전문 자격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종합평가서에는 해당 어린이집이 안전 영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돼있다. 

▲ ‘어린이집·유치원 통합정보공시’ 사이트 검색 내용에 따르면 해당 어린이집은 여러 영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어린이집·유치원 통합정보공시’ 사이트.

원장의 거짓말, 다른 교사 이름이 적힌 보육일지

최 군은 9월 1일 어린이집에 처음 등원했다. 이날 최 군 어머니는 최 군이 낮잠을 잘 자지 않는다고 어린이집 원장에게 말했다. 최 군의 어머니가 쓴 사건 진술서에 따르면 첫 상담에서 원장은 “아이들을 일괄적으로 재우지 않으며 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은 교사가 거실로 데리고 나와 돌본다”고 최 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최 군이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일주일 만에 사고가 일어났고 9월 11일 제천시는 그 어린이집에 휴원 조처를 내렸다. 다른 원아 22명은 전원 퇴소 처리했다.

한편 최 군의 등원 첫날 보육일지에는 담당 보육교사인 천 씨의 이름이 아닌 다른 보육교사의 이름이 쓰여 있어 의문이 제기된다. 피의자 천 씨는 사고가 일어난 날 최 군을 재우고 이 보육일지를 쓴다며 최 군을 방치했다. 첫 등원 이후 담당 보육교사가 바뀐 것은 아닌지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 최 군이 등원한 첫날 보육일지에는 담당 보육교사인 천 씨가 아닌 이 모 씨의 이름이 적혀 있다. Ⓒ 민수아

다신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

11월 14일에는 충남 논산의 어린이집에서 19개월 된 여자아이가 숨졌다. 유가족들은 아이가 두 시간가량이나 움직이지 않았는데 어린이집에서 확인도 하지 않았다며 “아이를 재우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어린이집 폐쇄회로TV 영상을 분석 중이며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할 방침이다. 정확한 정황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제천 어린이집 사건과 별개로 보기 어렵다. 어린이집에서 유사한 사망 사고가 계속 일어난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지고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제천 어린이집 사건에서 가장 큰 잘못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보육 교사에게 있다. 하지만 운영책임자인 어린이집 원장과 관리·감독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정부와 지자체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아이들이 생명을 잃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편집 :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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