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비선

▲ 송승현 기자

TV조선은 지난달 27일 [대한민국의 새 얼굴 '새 국가 브랜드'도 최순실이 만들었다]는 제목의 뉴스를 내보냈다. TV조선 보도를 보며 문득 지난 7월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을 준비하던 때를 떠올렸다.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표절에 대한 예산 집행과 심사위원, 자문단 명부가 궁금해 문화관광부에 정보공개청구를 냈다. 결과는 비공개 통보였다. “해당 정보가 공개되면 공정한 업무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다. 이제 와 ‘최순실 게이트’와 맞물려 생각해보니 공정한 업무가 아니라 비선 실세 도와주기 업무가 아닌가. 얼마 전 논란에 휘말린 ‘아라리요 평창’도 마찬가지다. 문광부에 낸 예산집행 내역 정보공개청구 역시 거부됐다. ‘경영상 비밀’ 통보.

▲ '크레에이티브 코리아' 관련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문체부의 답변. Ⓒ 송승현

청교도 혁명을 비롯해 영국 민주화 혁명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던 존 밀턴은 1644년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에서 “검열하려는 사람은 공원의 문을 닫아 까마귀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자와 다를 바 없다”고 언론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삼았다. 언론 자유는 제한 없는 정보전달에 뿌리를 둔다.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떠받치는 핵심요소의 하나로 언론기관이 이 역할을 맡는다. 유럽 연합(EU)이 강조하는 공영방송의 가치를 보자. ‘정보 시민(Informed Citizen)'.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시민들이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는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자유로운 정보유통이 꽉 막힌 불통 통제사회의 종착역을 잘 보여준다. 시민이 직접 정책을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와 달리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시민사회와 시민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공권력이 늘 대립할 수밖에 없다. 둘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버마스는 구성원들의 합리적 토론을 통해 보편적 이익에 관한 사회적 합의(social consensus)를 도출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사회적 합의가 대의민주주의에서 권력집단의 자의적 의사결정의 폐해를 막아주는 장치란 의미다. 사회적 합의가 존중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정보 접근은 필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보 접근성은 낙제점이다. 정보공개 청구 제도는 있으나 마나 빛 좋은 개살구다. ‘주권재민’의 헌법 정신 실현을 위한 최소한의 정보 접근도 막힌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길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조지오웰은 <동물농장>에서 정보 독점사회, 폐쇄사회가 독재와 부정부패로 귀결되는 현실을 잘 그려냈다. 과거 숱한 독재자들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막았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그랬으며, 히틀러의 나치도 북한 정권도 마찬가지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접한 국민의 대통령 하야 요구가 촛불시위를 통해 들불처럼 번진다. 절대 권력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수술하기 위해 내각제 등으로의 헌법 개정 요구도 다시 불거진다. 이런 논의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근원을 살펴볼 때는 아닌지. 권력자의 자의적 국정농단에 속수무책인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정보 시민(Informed Citizen)의 적극적 감시와 자유로운 정보 접근이 가능한 사회 만들기. 깨어 있는 정보 시민들의 행동이 있을 때 가능하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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