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Rain] 유연한 근무시스템? 아파도 쉴 수 없다

영국의 온라인 음식배달업체 딜리버루(Deliveroo)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긱 이코노미는 필요할 때마다 임시직을 섭외해 일을 맡기는 기업 형태다. 2013년 런던에서 첫 점포를 낸 딜리버루는 현재 전 세계 65개 도시에 점포를 냈다. 올 예상매출액은 지난해보다 10배 상승한 1억3천파운드(약 2,100억원)다.

딜리버루 성공신화의 이면에는 소속 배달원들의 고통이 스며 있다. 딜리버루는 배달원들이 개인 사업자로서 근무시간을 ‘융통성’ 있게 조정할 수 있다고 내세운다. 그러나 소속 배달원의 입장은 회사와 다르다. 딜리버루 배달원은 계약서상 ‘개인 사업자’다. 고용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유급휴가나 병가 등을 사용할 수 없다.

미국 온라인 언론매체 버즈피드는 딜리버루 소속 오토바이·자전거 배달원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들었다. 버즈피드에 따르면 인터뷰 응답자들은 회사에서 겪은 직, 간접 경험을 토대로 비슷한 불만을 털어놨다. 익명을 요청한 배달원도 있었다. 버즈피드와 인터뷰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가 근무시간을 할당해주지 않을 거라는 염려에서다.

▲ 근무 중인 딜리버루 배달원. ⓒ Flickr

임신 아내 병원 동행했다고 근무에서 빼

익명을 요청한 딜리버루 오토바이 배달원은 회사가 말하는 ‘융통성’ 있는 근무시간이 불이익으로 돌아온 경험을 들려줬다. 임신한 아내가 전화로 복통을 호소한 때였다. 그는 매니저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집으로 달려갔다. 정해진 근무시간을 채우지 못해 근무수당이 줄었다. 예상치 못한 손해도 봤다. 회사가 정해져 있던 근무시간 중 하루를 빼버린 것이다.

“배달원들은 정해진 스케줄을 뺄 수 없다. 하지만 임신한 아내 때문에 토요일 저녁 근무에 빠지니 회사가 화요일 근무시간도 빼버렸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정말 끔찍하다. 아내를 병원에 데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회사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더해 돈 걱정도 하게 만든다.”

딜리버루에서 배달원을 교육하는 벤 씨는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건 회사가 즐겨 쓰는 징계 수단이다. 해고보단 낫지만 강한 메세지를 전달한다. 일이 없는 동안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벌금과도 같다”고 털어 놓는다.

딜리버루는 배달원들이 개인 사업자일뿐 회사가 책임지는 직원이 아님을 계약서에 명시한다. 버즈피드가 확인한 딜리버루 계약서에는 “귀하는 자영업 공급자다. 귀하는 딜리버루의 종업원이 아니며 고용법상 노동자도 아니다”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임금’대신 ‘요금’, ‘근무시간’ 대신 ‘접속’

딜리버루는 간부급 직원들에게 정규직과 개인 사업자를 명확히 구분하도록 가르친다. 예컨대  ‘임금’이나 ‘급여’ 대신 ‘요금’이라는 단어를 쓴다. 정규직 사원들도 ‘근무시간’을 배달원과 ‘접속’한다는 표현으로 바꿔 부른다. 이에 대해 딜리버루 배달원 교육자 벤 씨는 “배달원들이 노동자나 직원이 아닌 것처럼 단어를 최대한 꼬는 것이다”라고 꼬집는다.

벤 씨 같은 교육 담당자도 ‘개인 영업자’다. 딜리버루에서 2년간 근무한 한 교육자는 “배달원을 교육하고 일부를 뽑아 채용까지 한다. 나는 교육 받는 사람들에게 회사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준다. 그렇지만 여전히 ‘개인 영업자’일 뿐이다. 화가 나는 일이다. 난 어떤 일을 하라는 지시를 받고, 근무시간 시범 운영에 대한 이메일을 보낸다. 배달원들은 나를 정규직 사원으로 알고 근무지 변경에 대해 물어온다. 하지만 난 개인 영업자다”라고 말한다.

딜리버루는 개인 영업자 신분이 융통성 있는 근무 환경을 조성한다고 둘러댄다. 하지만 버즈피드와 인터뷰한 배달원들에 따르면 원치 않는 시간에 일해야 하고 근무지가 무려 30개나 있는 런던에서 근무지를 임의로 바꾸라는 통보까지 받는다.

한 오토바이 배달원은 “올해 스페인에서 일주일 동안 지낸 적이 있다. 돌아가기 이틀 전 회사에 이메일을 보내 돌아가자마자 언제든 일할 수 있다고 알렸다. 난 ‘원래 근무시간에 일하고 싶다’라고 말했으나 회사는 2주 동안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일을 해야 했기에 매일 이메일을 보냈다. 결국 월급 없이 2주일을 보낸 셈이다.” 다른 배달원들도 비슷한 일화를 들려줬다.

많은 노동자들이 근무시간의 유연성 때문에 딜리버루 배달원 같은 일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그들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면 회사는 그제서야 금, 토, 일요일에는 적어도 2교대로 일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딜리버루는 이와 같은 정책을 버즈피드에 확인해 줬다.

북부 런던 출신의 덴 벡쇼.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해 딜리버루에서 일해보라는 말에 솔깃했다. 한 친구가 임금이 보장되고 근무시간이 유연하다고 해 환상적인 일자리라 여겼다. 돈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회사는 첫 한 달간 일주일에 20시간씩 일할 수 있고 주말 근무는 필요 없다는 그럴듯한 조건을 내세웠다. 하지만 계약서에 사인한 직후 일주일 12시간에 주말근무까지 배당받았다. 그는 즉시 일을 그만뒀다.

부상당해도 회사 도움 없이 혼자 보험회사 상대

배달원 대다수는 장시간 근무하는 오토바이 배달원들이다. 앞서 임신한 부인을 병원에 데리고 가기 위해 근무시간을 뺐던 오토바이 배달원은 토요일 아침에만 세 아이를 만날 수 있다. 밤늦게 일이 끝나기 때문에 주중에는 잠자는 자식들 얼굴만 본다.

많은 오토바이 배달원들이 장시간 근무를 선택하는 이유는 높은 보험료 때문이다. 배달원들이 한가롭게 앉아있는 동안에도 보험료는 여전히 붙는다. 대부분 부상 때문에 아파본 적이 있고, 회사 도움 없이 혼자서 보험회사와 경찰을 만나 절차를 밟는다.

회사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배달원은 인터뷰 대상자 가운데 오직 한 명 뿐이었다. 그는“지난 해 2주 동안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회사는 나를 친절히 대해주었고 일하지 못했음에도 일주일치 급여를 줬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 딜리버루는 배달원이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음을 홍보한다. ⓒ 딜리버루 홈페이지 갈무리

영국의 보험료는 매우 비싸다. 오토바이 배달원 무바라크 칸은 한 달 보험료로 117.50파운드(약 20만원), 한 달 오토바이 할부금으로 90파운드(약 15만원)을 낸다. 다른 배달원들도 연간 보험료가 900파운드(약 150만원)에서 1,400파운드(약 230만원) 사이다.

오토바이 배달원 “굶어도 보험료는 내야한다”

칸 씨가 하루에 7시간씩, 토, 일요일엔 10시간30분씩 일주일 동안 일한다고 치면 순수입은 600파운드(약 100만원)다. 하지만 칸 씨는 딜리버루가 시범운영중인 새로운 계약에 따른다. 배달 요금은 시간당 7파운드(건당 1파운드 추가)에서 건당 3.75파운드로 50% 가까이 낮아진다. 한 시간에 5.35파운드를 받는 꼴이며, 이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나는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보험료와 오토바이 할부금을 내야한다, 런던에 사는 우리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누가 배달 한 건당 3.75파운드로 살아갈 수 있는가? 보조금을 신청해야겠지만 나는 보조금보다 일하고 싶다.”

보험 들지 않는 자전거 배달원 피해 더 커

자전거 배달원들은 비용 때문에 거의 보험을 들지 않는다. 이는 미래에 발생할 사고에 대해 배달원 개인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 자전거 배달원은 “한 번은 자동차와 작은 접촉이 있었다. 난 ‘보험처리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운전자가 내 자전거를 쳐다봤다”며 “딜리버루는 그 운전자에게 내 신상정보를 알려줬고 나에게는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난 자전거 운전자용 보험을 들었지만 만일 내가 택배회사에서 일한다면 이 보험은 무용지물이다. 자동차 운전자에게는 자전거 운전자용 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딜리버루에서 일하는 고충을 들려준다.

딜리버루는 배달원이 법적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소송 방지 구절도 계약에 넣는다. “귀하나 그 대리인은 고용심판소나 민사법원에서 귀하가 종업원이거나 노동자임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회사를 소송한 배달원이 양측에서 발생하는 소송비용을 다 책임진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법적 다툼 시 회사 측 소송비용까지 배달원이 내라는 계약

하지만 고용 전문변호사들은 해당 구절이 법원에서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버캠 다이슨 벨사의 고용 변호사인 니콜라스 르 리슈는 “그 구절 때문에 소송을 못한다거나 주장이 묵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단언한다.

“만약 내가 딜리버루 배달원이고 해당 구절을 위반해 법적 절차를 밟으라는 위협적 편지를 사내변호사의 이름으로 받는다면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법원에 가면 그 구절이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두고 법적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차일드앤차일드사의 고용 변호사인 케빈 폴터는 “해당 구절은 딜리버루 배달원들을 제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딜리버루도 굳이 법원에까지 가서 그 구절을 시험해보지 않을 것이다”이라며 “소송 당사자인 배달원에게 법적 비용 부담을 떠넘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근무 시간이 유연해진다지만, 줄어드는 임금

지난 8월, 배달원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7일간 파업이 벌어졌다. 경영진은 배달원들을 개별적으로만 만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파업에 참가한 배달원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딜리버루는 이후 새로운 계약은 선택 가능한 시범사항이라며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딜리버루는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냈다.

“우리는 영국에서 두 가지 임금지불 방식을 채택한다. 하나는 시범운영하는 배달건수당 지불 방식이다. 배달원은 배달을 원할 때만 로그온, 로그아웃을 선택할 수 있어 근무시간 융통성이 100% 보장된다. 다른 하나는 시간당 지불 방식으로 배달원들은 근무 가능한 시간을 미리 알려줘야 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배달원의 반응은 다르다. 버즈피드는 딜리버루 오토바이 배달원들이 주문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장소인 커피숍 바깥에서 배달원 10여 명을 만났다. 이 가운데 브라질계 한 배달원은 “새로운 계약으로 배달 건수당 금액이 줄어든다고 생각해봐라. 우리는 돈 한 푼 만져볼 수 없을 것이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 파업 중인 딜리버루 배달원들. ⓒ Flickr

노동자를 밟고 성장하는 건 아닌지?

르 리슈 변호사는 “자영업 계약은 분명 널리 퍼지고 있는 관행”이라며 “지난달에는 우버사 판례가 나왔고, 가을에는 택배 회사 배달원 판례가 나올 것이다. 고용법은 사회변화에 맞추고자 노력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버즈피드 인터뷰에 응한 배달원들 역시 불안한 미래에 가슴 졸인다. 인터뷰 응답자 절반은 긱 이코노미 시장에서 경쟁 심화에 따라 근무 환경이 더 열악해질 것을 걱정한다.

우버가 경쟁적으로 확장시킨 우버이츠(UberEats) 플랫폼 등이 딜리버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올해 초 파산한 벨기에 스타트업인 테이크잇이지(Take Eat Easy)를 포함해 일부 경쟁 업체들은 문을 닫았다. 테이크잇이지사가 파산한 날, 우버이츠는 배달원들에게 배달건수당 지불하던 기존 요금을 깎았다. 우버이츠는 우연의 일치라고 강변하지만 곧이 들을 사람은 없다.

테이크잇이지의 배달원들은 마지막 두 달 치 임금을 떼였다. 행정부는 그들 모두가 개인 영업자이기 때문에 정규직 직원이 아닌 “무담보 채권자”로 봤다. 만약 딜리버루나 다른 배달업체가 파산한다면 배달원들에게 또 한 번 같은 일이 발생할 게 분명하다.

딜리버루의 가치가 올라간 것은 투자자들에게 희소식이다. 그들이 투자한 돈은 현재까지 안전하게 지켜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배달원들의 희생으로 투자금이 불어나서는 안 된다는 절규가 더 크게 들려온다.

[기사 원문 링크]

Deliveroo Riders Reveal The Harsh Realities Of The Gig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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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 :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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