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시 면접 복장 무료 대여 서비스 '열린 옷장'

“거지도 손 볼 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취업준비생이라면 정장을 빼입고 증명사진을 찍는 날을 맞는다. 설렘과 흥분 속에 약간의 불안감이 더해진다. ‘어떻게 하면 잘 나올까...’하는 생각에 입꼬리를 실룩 거린다. 화려한 조명아래 가만히 앉은 모습에 절로 코웃음이 난다. ‘아차, 화장을 고쳐야 하는데’ 하는 순간 플래시가 팡 터진다. 첫 번째 취업 면접용 사진은 그렇게 어색한 표정으로 세상에 나온다.

▲ 열린 옷장은 옷장 속 정장과 이야기를 기증받아 꼭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 고륜형

청년을 응원하는 열린 옷장

청년을 응원하는 기업이 있다. 비영리단체 ‘열린 옷장’이다. 2011년부터 5년간 서울에 거주한 청년들에게 무료로 정장을 빌려준다. 대여 품목은 재킷, 블라우스, 치마 정장, 바지 정장, 구두 등 없는 게 없다. 남성의 경우 타이와 벨트, 플레인 토부터 모카신까지 다양한 구두도 기다린다. 빌리는 방법은 서울시 홈페이지 ‘일자리 플러스 센터’에 가입한 후 온라인 예약하면 끝. 방문도 가능하다. 오프라인 대여점은 건대 1번 출구 쪽에 자리한다. 정장 대여기간은 3박 4일. 대여 기간을 연장하거나 연체하는 경우 20%의 부담금이 나온다. 이용은 연 2회까지다.

“열린 옷장은 옷과 함께 옷에 담긴 이야기까지 공유하여 사람과 사람이 더 가까워지고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취업 때문에 고통받는 청년 구직자들을 응원합니다. 면접을 앞둔 청년들에게 사회선배들의 경험과 응원이 담긴 정장을 전달하여 면접 복장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자 합니다.”

옷 때문에 소외받는 일이 없도록 하게 지원

열린 옷장의 설립 취지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까지 옷으로 소외받지 않아야 한다’는 대목이 미덥다. 열린 옷장의 ‘옷장 지기’ 이성일씨는 “옷으로 소외받거나 기회를 박탈당하는 분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최종 목표입니다. 그 중 하나로 정장 대여를 하는 것이고요”라며 정성스럽게 대여품을 매만진다. ‘누구나 멋질 권리가 있다’라는 모토 아래 매니저와 자원봉사자가 의기투합해서 단체를 꾸려가는 모습에 청년의 희망이 깃든다.

▲ 매니저 격인 옷장 지기 이성일 씨가 ‘누구나 멋질 권리가 있다’라는 열린 옷장의 캐치 프레이즈 아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고륜형

옷깃편지로 따듯한 유대감 형성

옷장지기 이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려준다. 2년 전 국립재활원을 찾아 거동이 불편한 휠체어 환자들에게 ‘리마인드 웨딩’을 선물했을 때다. 정장 뿐 아니라 부케, 연회복 까지 마련해 ‘리마인드 웨딩’의 꿈을 이뤄줬다. 이씨는 “장애 남편 분이 거울에 비친 양복 차림의 자기 모습에 뿌듯해하며 다시 걸어보고 싶다고 했을 때 가슴 뭉클했다”며 보람을 느꼈던 당시 추억에 젖는다.

▲ 열린 옷장은 이용자 간 소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옷깃 편지’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오간 옷깃 편지는 1만 7000여 건에 달한다. ⓒ 고륜형

‘열린 옷장’ 이용객 하루 70-80명... 사이즈별 맞춤대여

"형님 옷을 입고 좋은 일이 많이 생겼어요” 등 옷깃 편지를 통한 미담 사례도 많다. 열린 옷장은 ‘옷깃 편지’라는 기증자 - 대여자 간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쓰기를 운영해 유대감을 높인다. 지금까지 오간 옷깃 편지는 1만 7000여 통에 달한다. 열린 옷장이 단순히 옷을 대여하는 것을 넘어 따듯한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정장별 대여 금액. ⓒ 열린옷장 누리집
▲ 정장 대여 방법. ⓒ 열린옷장 누리집

‘열린 옷장’을 이용하는 이용객은 하루 70~80명으로 한 달에 약 2500명 가량이다. 이용자의 절반가량은 취업 및 면접용이고, 나머지 50%는 결혼식이나 사진 촬영용이다. 호텔 조리사 면접을 앞두고 열린 옷장을 찾은 정소영(21·대학생)씨는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며 “치수를 재 옷을 대여해 주기 때문에 몸에 꼭 맞는다”고 만족감을 나타낸다. 실제 기자가 입어본 면접용 복장도 시중에서 구입하는 제품 못지않게 잘 맞았다. 탈의실 옆에 신체 치수, 옷 번호, 구두 사이즈가 정확하게 기록돼 있어 맞춤형 대여가 가능하다.

▲ 이용자 정소영(21·대학생)씨는 “몸에 꼭 맞는 맞춤 정장이다”며 열린 옷장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 고륜형

대여복 입고 5천원에 증명 사진도 찍는 일석이조

예약 확인을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모니터에 자신의 이름과 탈의실 번호가 뜬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탈의실에 들어가면 자신의 치수에 맞는 옷이 나온다. 옷을 입고 타이나 벨트, 각종 악세서리를 붙인다. 이어 대기실 모니터에 결제 화면이 뜨면 2만원에서 3만 원 정도의 비용을 낸다. 이렇게 옷을 대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여 분. 빌린 정장을 입고 단돈 5천원에 취업 증명사진을 찍는 ‘열린 사진관’도 함께 운영 중이어서 금상첨화다. 열린 옷장은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온라인 예약은 필수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15~29세 청년 실업률은 9.2%다. 10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얻지 못 하는 현실에 열린 옷장이 단비 같은 디딤돌이 돼주길 기대해 본다.


이 기사는 서울시의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 '내 손안에 서울' (http://mediahub.seoul.go.kr/) 에도 실립니다. 

편집 : 황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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