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헌법

▲ 민수아 기자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대통령이요.” 대학생 때 잠시 휴학을 하고 동네 공부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다. 다정한 선생님 역할을 해보고 싶었던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장래희망을 물었다. 당시 초등학생 대상 장래희망 설문조사에서 1위가 공무원이라는 기사를 읽었던 터라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아이의 대답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유를 묻고 나선 기특함이 허탈함으로 바뀐다.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데?” “대빵(대장)이잖아요.” ‘아이의 눈이 제일 정확하다’는 말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배신자’라며 축출하고, 자기 사람은 잘못을 저질러도 끝까지 곁에 두는 대통령이 아이의 눈에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대빵’으로 보였나 보다.

대선 주자들을 중심으로 개헌론이 다시 고개를 든다. 30년을 맞이하는 ‘87년 체제’는 민주화의 산물인 동시에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정치권력 문제를 놓고 헌법 탓만 할 수는 없다. 헌법 자체의 결함으로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도 있지만, 불합리한 관행에서 빚어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게 우리 정치판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개헌논의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이다. 한 나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헌법 1조다. 하지만 최근의 개헌 담론에서는 대한민국 헌법 1조가 천명하는 ‘국민주권주의’가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개헌 찬반 설문조사가 포털 기사를 장악하는 반면, 개헌에 대해 국민여론을 묻는 설문조사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철저히 정치인들의 권력 욕구에 똬리를 튼 개헌론이란 회의감을 지울 수 없다. 국민에게 ‘지금 개헌이 필요한가’를 물어야 할 때에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탁상공론으로까지 느껴진다. 모든 정부 형태는 장단점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권력구조만 바꾼다고 우리나라의 정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들이 얼마나 헌법을 준수하고 합리적 관행의 정치문화를 만들어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제도는 크게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 등의 국가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일본이나 독일 등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 청와대 홈페이지

개헌에 유보적인 이들이 개헌보다 시급한 문제로 꼽는 것이 선거제도 개선이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통한 정권획득의 정당성 확보, 노회찬 정의당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한 국회의원 국민 대표성 제고 주장을 편다. 모두 ‘득표율만큼의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를 둔다. 국민의 표심을 기반으로 탄생한 국회는 민심이 반영된 법을 만드는 게 의무다. 행정부는 법에 기초해 정책을 펴거나 인사를 단행한다. 이런 민주정치 시스템에서 여론과 의회를 외면하는 제왕적 대통령은 건강한 정치 환경을 해친다. 정강정책과 시스템 중심의 정당정치가 아닌 특정 인물 중심의 비합리적 정당문화가 독버섯처럼 자란다. 합리적 정당문화가 잘 작동하는 나라.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에 ‘국민을 존중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를 만날 수 있는 대한민국이 조금 더 민주적인 국가가 아닐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민지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