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정션 48' 리뷰

<정션 48>은 최초의 아랍 래퍼를 그린 영화다. 영화 도중 흘러나오는 아랍 랩은 아랍어를 몰라도 흥겹다. ‘아랍어가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구나’하는 생각조차 든다. 멜로디와 선율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정션 48>은 음악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영화 속 녹아든 정치적 메시지가 음악을 만나 감미롭게 전달된다. 음악영화가 가진 힘이다.

▲  ‘최초의 아랍 랩퍼’ 카림의 이야기를 그린 <정션 48>.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누리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경 Lod지역에 사는 주인공 카림은 마약 밀거래로 생계를 유지하며 랩을 노래하는 래퍼다. 마땅히 생계를 유지할 일이 없는 이 지역에서 마약 밀거래는 청년들의 주 수입원이다. 카림은 그의 동생과 마약을 하며 지역 청년들과 교류한다. 마약 갱단에게 10만 불의 빚을 져 음악으로 성공해 그 빚을 갚으려 한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음악 ‘힙합’은 주류가 아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통용되는 음악이다. 아랍 래퍼는 카림이 처음이기 때문에 음악을 이해하는 이도 드물다. 어느 날 이스라엘 클럽에서 그의 음악성을 알아본 방송 작가의 눈에 띄어 방송에까지 출연하며 그는 빛을 발하게 된다. 강한 정치적 발언이 담긴 그의 음악이 방송을 타면서 영화의 흐름은 급전환을 맞게 된다.

그의 정치적 발언은 “빈민가인 Lod의 강제철거를 중지하라”는 것이었다. 실제 영화의 배경이 된 Lod지역은 이스라엘에 속해있지만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이 함께 섞여 산다. 실질적 지배는 이스라엘과 유태인이 하고 팔레스타인과 아랍인이 하층민을 구성하고 있다. 경찰과 방송 또한 이스라엘과 유태인이 장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Lod지역을 철거하려고 한다. 염소 한 마리가 실 거주자인 아랍인보다 가치 있게 여겨지는 인권탄압의 현장이다. 카림은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지만 변호사는 땅의 소유를 인정받기 위해선 팔레스타인인 한 명보다 이스라엘에서 건너온 염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화 중간 중간 갑자기 들이닥치는 경찰에 몸수색까지 당하며 반항하지 못하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음악을 공연하는 공연장 역시 이스라엘 음악가들이 득세 하고 있고, 주인공인 카림은 무대에서 ‘아랍 랩’을 했다고 쫓겨나게 된다. 정치적 문제를 음악에 반영한 결과로 맞닥뜨린 현실이다. 

‘힙합(Hippop)’은 1970년대 후반 뉴욕 할렘가에서 유행한 음악이다. 할렘가에 거주하는 흑인과 스페인계 청소년들이 미국 정부의 차별대우와 인권탄압에 저항하며 시작했다. ‘엉덩이를 흔들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자기 생각이나 일상의 삶을 이야기하는 랩, 랩에 맞춰 곡예 같은 춤을 추는 브레이크 댄스, 전철이나 건축물의 벽면·교각 등에 에어스프레이 페인트로 거대한 그림 등을 그리는 그래피티(낙서미술), LP레코드판을 앞뒤로 움직이는 디제잉 4 요소가 있다. 흑인과 스페인계의 반항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랩 가사엔 그들의 삶의 애환과 정부에 대한 디스(Disrespect, 무례), 자유에 대한 갈망이 들어 있다. ‘힙합’과 ‘랩’은 그들의 정치적 요구를 담아내는 좋은 수단이 된다.

힙합은 약자들의 정치적 발언 수단

1980년대 힙합은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과 더불어 브루스와 R&B, 펑크 등이 가미돼 미국 음악의 거대한 한 흐름을 이룬다. ‘라임’이라고 하는 반복되는 어구, 절 등은 시와 소설, 연설문 등을 인용하기도 하고 문학 형식을 차용한 문법 체계를 갖추기도 했다. 특히 1982년 그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의 앨범 [The Message]으로 힙합은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에 반대하는 분명한 정치적 방향성을 갖게 된다. 백인 사회에서 정치경제적 약자인 흑인들이 힙합을 이용해 정면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힙합이 유행한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정치적으로 억압된 욕구가 많다는 뜻이다.

2012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케이블 방송 <Mnet>의 <쇼미더머니 (Show Me The Money)>는 올해로 4년 째, 5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인기는 매 시즌을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쇼미더머니5>의 시청률은 2.8%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 래퍼들의 경쟁인 <언프리티랩스타(Unpretty Rapstar)>역시 3번째 시즌을 거듭하며 흥행중이다. 홍대 ‘라이브클럽데이(LIVECLUBDAY)’의 편성도 락(ROCK)보다는 힙합에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공연장을 비롯한 뮤지션 역시 힙합문화로 기울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정치적 자유도는 2012년 50위에서 점차 떨어져 2014년 57위, 2016년 59위를 기록했다. 언론의 자유도 역시 2012년 31점, 2013년 32점, 2016년 33점으로 하락세다. 사회적 불만이 힙합이라는 하위문화로 표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국내 음원 사이트 ‘멜론’, ‘벅스 뮤직’ 등에서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노래가 빈지노, 로꼬, 씨잼(C Jamm) 등 래퍼들의 음악이라는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 FINAL 2라운드 비와이 <자화상 pt.2>. ⓒ Mnet 갈무리

<정션 48>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영화 후반부 카림의 음악은 성공한다. 자유와 사랑을 노래한 그의 노래는 음반이 발매되기도 전에 50만장이 팔리는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며 언더문화의 꽃을 피운다. 억압받는 정치적 현실에 Lod 지역의 주민들이 반응한 것이다. 그의 음악은 비록 강제철거를 막지는 못했지만 지역민들에게 정치적 발언의 기회와 조직적으로 뭉칠 자신감을 제공했다.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로부터 시작된 흑인 인권 운동이 힙합 문화를 타고 미국 전역에 번져나간 것처럼.

우리나라 <쇼미더머니> 열풍으로 시작된 힙합 문화가 반갑지만 경각심도 함께 드는 이유다. <정션 48>의 감독 우디 엘런은 “예술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일종의 포장일수도 있다”며 “하층민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해야만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이어도 상관없다’라는 말은 특권층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적 약자가 힙합이라는 예술을 통해 말하는 정치적 발언이 긴장되는 동시에 예술적인 이유다. 음악영화가 가진 힘은 정치적 문제를 특권층만이 아닌 하층민까지 발언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정션 48>은 2016년 제66회 베를린영화제에서 파노라마 관객상을 받았다.


편집 : 황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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