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S 제천나들이 기획] ② 정방사 편

매일 모니터와 책 속 빽빽한 글씨와 씨름하다 보니 하늘과 나무, 짙푸른 공기를 잊고 살았다. 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도 마음처럼 쉽지 않은 현실을 마주할 때 근심과 걱정이 보란 듯이 밀려들었다. 자연을 등지고 속세에서만 아등대니 꿈을 향한 마음이 탁해지며 어그러졌다. 자연을 맛보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동기들과 길을 나섰다. 이 나라에서 마음 비우는 ‘해우소’가 가장 아름답다는 곳, 산 높은 곳에 있어 찾아가는 이들이 녹음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곳, 정방사로 향했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답다고 해서 퇴계 이황이 이름 지은 금수산. 굽이 펼쳐진 고운 비단 자락 허리 어드메 절 하나 서 있다. 신라 문무왕 2년(662), 정원(淨圓) 스님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이곳의 창건설화가 신비롭다. 의상대사의 제자인 정원 스님이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자 의상대사에게 자문했더니,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던져 터를 점찍고 불법을 널리 가르치도록 일렀다고 전해진다. 정원 스님의 ‘깨끗할 정(淨)’ 자,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하는 ‘꽃다울 방(芳)’ 자를 따서 지은 절 이름이 정방사다.

정방사는 금수산 정상에 조금 미치지 못한 신선봉(845m)에 자리 잡은 절이다. 산꼭대기에 있는 절에 도착하려면 넉넉하게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산행해야 한다. 이 산길은 제천시에서 추천하는 ‘자드락길 제2코스’이기도 하다.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이라는 뜻의 자드락길. 제천시는 7가지 다양한 자드락길을 단장했다.

▲ 정방사로 향하는 산길. ⓒ 박기완

자드락길 2코스의 시작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능강계곡 위 능강교 입구다. 2코스 자드락길의 시작점에서 안내판을 따라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 큰 다리를 건너면 정방사로 향하는 정방사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얼음골생태길로 가는 자드락길 3코스다. 갈림길에 나무판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표시판이 있어 구분하기 쉽다. 산길이 급하지 않아 여유 있게 산을 올랐다. 산길 옆으로는 차로 지나다닐 수 있는 도로가 깔렸고, 정방사 입구 근처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산행이 어려운 사람들도 편히 오갈 수 있다.

절에 도착하면 숨 돌릴 새도 없이 건물 하나로 시선이 몰린다. 깎아내려 가는 절벽 끝쪽 귀퉁이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건물, 정방사의 대표건물 ‘해우소’다. 정방사 해우소는 우리나라에서 경치가 가장 좋기로 유명한 화장실이다. 이전에 쓰던 해우소와 뒤편에 새로이 단장한 신식 해우소가 나란하다. 신식과 구식 정방사 해우소 모두 절벽 바깥쪽 창문을 바라보며 용변을 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창문 바깥쪽으로 ‘내륙의 바다’ 청풍호와 끝이 보이지 않는 산자락들이 한눈에 보인다.

▲ 정방사 해우소에서 바라본 풍경. ⓒ 윤연정

해우소에서 나와 오른쪽 계단을 한 차례 올라가면 종무소와 요사와 종각, 그리고 법당 등이 계단식 구조로 자리 잡았다. 나무의자 하나 걸터앉아 청풍호를 바라보고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땀을 닦아주고, 창창히 흐르는 청풍호가 근심, 걱정 모두 담아 흘려 내보내는 듯하다. 정방사를 설명하는 안내판에 적힌 신통한 시 구절도 마음에 아로새겼다.

산중하소유山中何所有     산중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상다백운嶺上多白雲     산마루 흰 구름이 많이 머물러 있다
지가자이열只可自怡悅     다만 나 홀로 즐길 수 있을 뿐
불감지기군不堪持寄君     그대에게까지 바칠 수가 없구나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으로 향했다. 전각 앞머리에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 새겨진 현판에 시선이 갔다. “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필히 응답이 있으리라.” 정방사의 창건설화 속 정원 스님이 부처의 법을 퍼뜨리고자 간절히 바란 일과 냉혹한 현실에도 내가 꿈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정진하고자 하는 마음을 포갰다.

▲ 정방사 원통보전. ⓒ 박상연

관세음보살 오른쪽 뒤편 큰 바위 틈새로 흐르는 한줄기 물은 시원한 약수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상당한 크기의 해수관세음보살이 인자하게 청풍호를 내려본다. 절의 끄트머리까지 찾아가면 바위를 품은 전각 하나가 우리를 맞이한다. 정방사 지장전으로 전각 한 면은 암벽으로 지탱한다. 암벽 한가운데에는 지장보살이 새겨져 있다.

부처가 보살피고 푸른 자연이 우리네 근심 씻어주는 정방사.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청풍명월’의 고장이라는 제천에서 속세의 혼돈과 모순을 제대로 비우는 데 정방사만큼 제격인 곳도 없다. 비워야 차오른다고 했던가. ‘반드시 원하는 것을 이루겠다’는 유구필응의 자세를 위해서라도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 보며 내 마음 비우는 것이 먼저다.

■관련 영상
https://youtu.be/MjM-XJjShZM

■여행정보
정방사는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에 있는 절이다. 자드락길 2코스 ‘정방사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도착한다.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정방사 바로 밑에 위치한 주차장은 무료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시외버스터미널 주변 버스정류장에서 수정‧청풍‧학현 방면으로 가는 953번 버스를 타고 금수산얼음골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이 정류장은 능강교 입구로, 매점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정방사 자드락길로 향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다만, 953번 버스 운행이 편도 기준 하루에 2회 이하이기 때문에 버스 시간표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관련 문의는 제천시 관광 안내 콜센터. (043-641-6731~3)

능강교 입구 근처에는 적당한 휴게음식점이 드물다. 식사는 근처 청풍문화재단지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 청풍문화재단지 근처 작은 마을 청풍면 물태리에도 좋은 음식점이 많다. 물태리는 마을이 아담하고 조용해 식사 후 마실을 하기에도 좋다.

▲ ‘연요리전문점'의 산채나물정식. ⓒ 박기완

다양한 메뉴 중에서도 연차밥정식을 주요 메뉴로 하는 ‘연요리전문점’은 음식이 정갈하다. 연잎차를 직접 우려 손님께 물 대신 대접한다. 연잎 우려낸 물로 밥을 해 샛노란 연차밥이 식욕을 돋우고 갖가지 반찬이 식감을 자극한다. 사장님이 직접 키우는 브로콜리와 그 잎를 무친 볶음찬 등 정성 가득한 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산채나물정식은 1인당 12,000원. 어떤 반찬이든 부족하면 계속 챙겨주시는 사장님의 넉넉한 인심은 보너스다. 위치는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52길로, 청풍파출소에서 횡단보도 건넌 인도의 맞은편에 있다. (043-642-1006)


편집 :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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