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KBS 견학
주제 ① 제작현장과 보도본부장 강연

“리허설 현장을 촬영하다가 적발되면 메모리에 있는 자료를 모두 포맷하고 사진을 지울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퇴장 조치되니 넣어주시고요.”

현장 통제를 맡은 직원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리허설 현장은 보는 것만도 얼마나 제약이 많은지 그리고 방송 직전 스태프들이 얼마나 긴장하는지 대변해주었다. 1인미디어가 현장 생중계를 하는 뉴미디어 시대에 아이돌 가수의 리허설 장면이 SNS에 뜨면 그 순간 본방송은 ‘올드미디어’가 되고 마는 게 시간을 다투는 방송의 속성이니 이해할 만도 하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학생들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KBS를 견학했다. 방송사 내부 프로그램 제작 현장 견학과 보도본부장∙드라마본부장의 강연과 설명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실습강좌를 심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 KBS 전경. ⓒ 연합뉴스 TV 화면 갈무리

카메라 뒤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

매주 금요일 KBS 별관에서는 음악프로그램 <뮤직뱅크> 녹화가 진행된다. 한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아침부터 드라이 리허설과 카메라 리허설이 수없이 반복된다. 학생들이 별관으로 입장했을 때는 보이그룹 세븐틴의 카메라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객석에는 소녀팬들이 플래카드와 야광봉을 든 채 녹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PD의 “갈게요”라는 한 마디에 음악이 시작되고 조명이 켜지면서 팬들의 환호가 터져 나온다. 무대 옆에 설치된 모니터로 지금 어떤 카메라의 화면이 비춰지는지 알 수 있다. 흔들림을 없애기 위해 허리에 카메라를 맨 스테디캠 감독은 무대 위를 가로지르며 가수들을 클로즈업한 영상을 담는다. 장비가 무거운데 빠르게 빠져 나오려다 보니 뒤에서 한 사람이 허리를 잡고 끌어서 무대 밖으로 내려온다. 무대 위로는 높다란 지미집 카메라 두 대가 양 쪽에서 번갈아 오가며 촬영한다.

한 곡이 끝나고 제작진과 출연진이 무대 한 켠에서 모니터를 통해 방금 전 공연 모습을 체크한다. 그 사이 매니저와 맵시가꿈이들이 출연진의 외모와 의상을 고쳐준다. 그리고 또 한 번 같은 곡으로 리허설을 진행한다.

지켜본 시간은 15분 남짓했지만 카메라 뒤에서 어떤 노력들이 이뤄지는지, 카메라 앞에서 보여질 모습을 위해 출연자들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대당 10억 초고가 화물차의 정체

차는 대표적인 기호의 상징이다. 독일의 명차, 이탈리아의 스포츠카까지. 실재는 이미지에 밀려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보드리야르의 말은, 차에 대해서만은 일리 있는 지적이다. 어떤 차를 운전하든 목적지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여유가 되면 비싼 차를 사고 싶어 한다. 차의 가치는 이미지로 파악된다. 그래서 중계차의 가격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진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대형 탑차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 KBS 중계차의 외관은 일반 대형 화물차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몸값은 상당히 비싸다. ⓒ 김근홍

그러나 이 화물차는 엄청난 고가장비다. 이 차를 담당하는 부서도 따로 있다. 기술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어간다지만 이 중계차만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런지는 차 내부로 발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 외관은 평범하지만, 내면은 뇌섹남이라는 신조어처럼 섹시하다.

중계차 내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방송국이다. KBS 스튜디오를 벗어난 모든 곳의 방송, 특히 대형 프로그램이나 생방송을 다룬다. 활동영역은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다. 때에 따라 대륙을 횡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행기나 태평양 한 가운데 잠수함에서도 위성을 내보낸다. 그러나 이런 작업은 웬만한 방송사가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힘들다.

KBS 중계차의 방송기술 수준에 이른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해외 촬영을 하게 되면 방송품질을 담보하기 위해서 어디든 중계차가 따라가야 한다. 비용이 들더라도 어쩔 수 없다. 기술과 함께 진보해온 미디어의 역사 속에서, 중계차는 현대 방송기술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중계차 내부에는 각종 장비들이 들어차있어 두 명이 나란히 발 디딜 틈이 없다. ⓒ 김근홍

프로그램이 맛있게 요리되는 주방 같은 곳, 부조정실

실내로 이동해 도착한 곳은 수많은 모니터들이 불을 밝히고 있는 KBS 신관 13부조정실. 학생들을 반겨준 염장철 기술감독은 부조정실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부조정실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녹화하는 과정을 총괄하는 곳이다. 스튜디오마다 부조정실이 있고 그곳에서 녹화한 영상을 주조정실에서 송출한다. KBS에는 25개 부조정실이 있는데 본관과 별관, 수원센터 등으로 분산돼 있다. 뉴스를 제작하는 부조정실은 따로 있다.

▲ 염장철 기술감독이 부조정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근홍

“조금 전에 보고 오신 <뮤직뱅크>를 제작하는 부조정실도 이곳과 같은 시스템입니다. 많은 카메라와 조명, 오디오, 영상 밝기 조정뿐 아니라 자막 CG작업까지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곳이죠.”

디지털 오디오 콘솔과 조명의 밝기와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장치들에 기술감독과 조명감독이 자리한다. 총 감독은 메인 보드 앞에서 여러 모니터로 들어오는 화면 중 최종적으로 녹화될 화면을 골라 지시를 내린다. 그러면 부조정실 입구 한 켠에 있는 녹화기기에 하나의 프로그램 파일로 만들어진다.

13부조정실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스튜디오는 80평 남짓한 규모다. 매주 월요일 <TV비평 시청자데스크>를 녹화한다. 스튜디오에는 아직 프로그램 녹화에 썼던 세트가 남아있었다. 스튜디오 한쪽 벽에는 크로마키 효과를 줄 수 있는 초록색으로 칠해진 벽이 세워져 있다.

“스튜디오는 촬영하는 데 최적화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죠. 소음도 차단하고, 야외에서 생길 수 있는 그늘을 방지하기 위해 조명도 설치돼있습니다.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는 곳도 없애려고 여러 대 카메라를 사용하죠.”

보도는 이제 그래픽에서 결판난다

김현석 팀장이 학생들을 맞았다. 그의 편한 차림새는 정장으로 몸을 감싸고 있던 경비원들과 대비돼 외지인으로서 KBS의 내부로 완전히 깊숙이 들어왔음을 느끼게 한다. 김 팀장은 평소 뉴스 보도에 쓴 그래픽, 특히 최근 선거 보도에 사용한 그래픽 들을 보여주었다.

▲ 보도그래픽부에서 학생들이 준비된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 김근홍

언젠가부터 각 방송사 선거보도는 어디서 얼마나 재미있고 몰입하게 만들었느냐는 게 화제가 되었다. 유달리 주목받는 선거 보도가 아니더라도, 그래픽효과가 발달한 요즘 방송을 세련되게 하는 역할은 바로 여기서 한다. 보도그래픽부 사람들은 화면에 등장하는 기자들 뒤에서 보이지 않는 업무를 하면서도 방송의 질 향상에 큰 책임을 지고 있다.

▲ 보도그래픽부 김현석 팀장이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김근홍

이들의 작업은 종종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한다. 한 번 방송에 쓰일 그래픽 효과를 위해 필요한 영상을 따려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몇 달간 준비해야 할 때도 있다.

기자들이 보도그래픽부에 의뢰서를 가져오면 이들은 효과를 제작해 넘겨준다. 이런 식의 삽입 작업이 하루 50개 정도다. 9시 뉴스 아이템이 하루 25개 정도인데, 한두 개를 빼면 그래픽은 거의 모든 보도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고 김 팀장은 말했다.

“무심코 보시는 뉴스 뒤에 저희가 매일 엄청난 양의 그래픽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KBS 조직 개편의 속사정

학생들이 KBS를 찾은 날, KBS 본사 로비에는 5월 10일 발행된 <KBS사보>가 ‘KBS 조직 개편’을 톱 이슈로 알리고 있었다. 강연을 한 KBS 보도뉴스 책임자인 김인영 본부장은 “기존 ‘보도본부 본부장’에서 ‘통합뉴스룸 국장’으로 이름을 바꿔 달게 됐다”며 KBS 뉴스의 새로운 방향을 소개했다.

KBS는 5월 10일, 보도국, 스포츠국, 디지털뉴스부, 시사제작부 등으로 나뉘어있던 보도본부 조직을 통합뉴스룸으로 묶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김 본부장은 통합뉴스룸에는 방송주간, 디지털주간, 취재주간, 국제주간, 뉴스영상주간이 속해 있는데, 이전에 따로 분리되어있던 영상과 취재 업무를 합쳐 뉴스의 생산성을 높이려고 했다고 개편 목적을 설명했다.

“예전에는 보도본부의 경우, 아침에 2차례 편집회의를 했어요. 취재계획을 짜고 9시에 어떤 뉴스를 낼지 생각했지요. 이제는 TV와 웹페이지, 모바일에서 뉴스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 기획 단계부터 고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 변화가 조직 개편을 하게 된 배경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PC나 모바일 등 온라인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다. 공중파 뉴스는 갈수록 시청자를 잃어가고 있어 온라인 부분 뉴스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방송’이라는 자부심

김 본부장은 KBS뉴스의 존재감은 해외에서 더욱 빛난다고 소개했다. 한국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외국에서 먼저 찾아보는 뉴스가 KBS뉴스라는 것이다. 중국 대사관의 경우 한국의 다수 언론을 모니터하지만 중심에 두는 것은 KBS라며 KBS뉴스가 한국을 들여다보는 척도라고 설명했다. 중앙아시아에 많은 고려인들에게 KBS뉴스는 한국어를 익히는 교과서이기도 하다.

▲ 김인영 보도본부장이 KBS 보도프로그램의 편집과 보도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배지열

“우리 사회가 남북 관계 등 이념적으로 논란이 심해 여러 언론 매체가 이념 지향에 따라 나뉘지만, KBS는 좌우를 아우르고 극단에서 탈피한 뉴스를 만들어 나갑니다. 그래서 KBS뉴스는 항상 좌우 양쪽에서 공격을 받습니다.”

김 본부장은 그러면서도 “수신료로 뉴스를 만들기에 비판은 언제든지 환영한다”며 강연을 듣는 학생들에게 가감 없는 비판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KBS뉴스의 시청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종합편성채널 출범과 인터넷 매체의 증가, 포털의 전재 여부, 어뷰징 등으로 KBS에게는 미디어 환경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보도본부장에 취임한 김 본부장은 이러한 미디어 환경 속에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타개책으로 ‘집중∙심층∙현장’ 보도를 꼽았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뉴스가 너무 많기 때문에 모든 뉴스를 다 다루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보고 그런 타개책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요즘처럼 매체가 다양한 상황에서 사소한 사건 기사는 소구력이 없다는 것이 김 본부장의 판단이다. 중요한 뉴스를 집중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대여섯 꼭지씩 블록뉴스를 만들어 이슈의 기승전결 형태를 갖추고 시청자의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여러 뉴스를 다 보여주는 소위 ‘백화점식 뉴스’나 사건∙사고 뉴스는 시청률을 추인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시청률 추이 곡선을 보면 KBS 보도본부가 잡은 방향이 틀리진 않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청년 대한민국' 슬로건, 젊은 KBS를 꿈꾸다

문제는 젊은층이었다. 김 본부장은 작년 KBS 기자 공채 합격자를 면담해 보고 9시뉴스를 정시에 챙겨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젊은층은 이전처럼 뉴스를 기다렸다 보는 것이 아니라 모바일로 어느 때고 뉴스를 소비할 수 있다. 그래서 각 부서에 ‘디지털 에디터’를 도입하고 온라인으로 내보낼 텍스트 기사를 쓰게 교육시켰다. 기자들부터 ‘디지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맞춤형 뉴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페이스북 뉴스에 뛰어들었는데 회원수는 현재 8만5천 정도로 빠른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KBS는 KBS뉴스뿐 아니라 ‘멀티미디어뉴스’ ‘고봉순뉴스’ ‘취재파일K’ ‘시사기획 창’ 등 다양한 형식으로 뉴스를 가공해 전달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바꾸고 있다.

“요즘 시청자들은 굉장히 똑똑해요. 아이템이 마음에 안 들면 금방 채널이 돌아가죠. 하루하루 취재하기 바쁘지만 찾아가는 뉴스가 되기 위해 조직을 개편해 보도 프로세스를 바꾸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뉴스를 보게 만드는 것이 KBS가 가야 할 새로운 방향입니다.”

▲ KBS는 지난 3월 30일 9시뉴스에서 3D프린터 창업에 도전한 청년들의 창업 현장을 찾아가 생방송으로 보도했다. ⓒ KBS 뉴스 화면 갈무리

올해 KBS가 구호를 ‘청년 대한민국’으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였다. 변화하는 시대와 청년층의 시청 습관에 맞게 뉴스를 개발해 청년에게 다가서겠다는 것이다. KBS가 청년처럼 발로 뛰어 뉴스를 만들겠다는 포부이기도 하다. 김 본부장은 KBS의 변화를 지켜봐 달라며 강연을 마쳤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1학기 <저널리즘특강>은 김종철 이대근 곽윤섭 박태균 김호상 임병도 오연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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