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시각장애인 일자리창출 앞장선 송영희 대표

“시각장애인 직원을 채용할 때면 ‘무엇이든 스스로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출퇴근은 기본이고 모든 업무를 혼자 처리할 것을 주문하죠. 능력이 부족해서 하는 실수와 신체적 장애 때문에 하는 실수를 구분해서 직원의 능력을 평가합니다.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일단 본인이 하려는 의지를 갖춰야 해요."

사회적기업인 ㈜엔비전스의 송영희(44) 대표는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북촌에 있는 사옥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며 ‘무엇이든 혼자’를 강조했다. 엔비전스는 ‘어둠’을 주제로 한 전시·공연과 시각장애인의 인터넷 접근성을 높이는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 2009년 네이버의 투자를 받아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으로 설립됐고, 현재 시각장애인 23명과 비장애인 12명을 고용하고 있다. 2011년에는 서울시로부터 ‘우수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기도 했다.

‘혼자서 모든 업무를 해볼 것’ 직원들에 주문

송 대표는 직원들에게 ‘자립’과 함께 ‘도전정신’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특히 시각장애인 직원들에게 “회사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업무 영역에 도전해라. 우리 회사에선 다 열려있으니까”라고 독려한다. 엔비전스의 시각장애인 직원들은 주 업무인 전시 안내뿐 아니라 교육, 인사, 재고관리까지 다양한 부서에서 일한다. 전시 주제가 ‘어둠’이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안내를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시각장애인이 어려움 없이 일하도록 전담 근로지원인 1명을 배치했고 안내견 시설, 컴퓨터 화면을 읽어주는 스크린리더, 화면확대 프로그램, 점자시계 등 보조공학기기도 비치하고 있다.

▲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주)엔비전스 송영희 대표. ⓒ 이현지

‘너 스스로 다 해야 돼’, ‘모든 업무 영역에 도전해라’ 등의 주문은 사실 송 대표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송 대표는 미술대학 지망생이던 19살에 시력을 잃었다. 처음에는 색을 구분할 수 없었고 곧 완전히 안 보이는 상태가 됐다. 그 후 2년 정도 심리적으로 위축돼 혼자 힘들어 하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골방에서 아버지가 건네 준 기타를 치고 놀다 문득 ‘다른 사람과 함께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후 기타리스트로 아마추어 음악밴드 활동도 하고, 피아노조율사와 속기사 등의 직업에도 도전했다.

피아노조율에 관심을 가진 것은 시각장애인에게 보편적이었던 안마업 외에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미국에선 시각장애인이 피아노조율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음악활동을 했던 터라 피아노조율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피아노조율사가 결코 만만한 직업은 아니었다.

“피아노조율은 근사하게 음을 맞추는 일이 아니라, 피아노 전체 구조와 부품 하나하나를 다 머릿속에 넣어야 하는 일이에요. 자격증 시험은 피아노의 음을 맞추는 것뿐 아니라 건반도 눌리지 않게 망가뜨려놓고 제한된 시간 안에 완벽하게 고쳐놓도록 하는 방식이에요. 눈이 보였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저는 안 보이니까 하나하나 만져가면서 해야 했죠.”

26살에 어렵게 국가공인 산업관리기사 피아노조율자격증을 땄지만 조율사의 길은 험난했다. 혼자 명함을 돌리고, 가본 적 없는 집을 찾아가야 했다. 섬세한 기술을 요하는 피아노조율을 굳이 시각장애인에게 맡기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디지털피아노까지 보급되면서 피아노조율 시장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송 대표는 결국 3년 만에 일을 그만 두었다. 하지만 지금도 미국에서처럼 피아노조율사가 시각장애인에게 적합한 직업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속기사가 된 것은 장애인고용공단의 시각장애인 속기사 양성과정을 거쳐 2001년에 2급 자격증을 딴 후였다. 그러나 속기사의 길 역시 평탄치 않았다.

“처음엔 국회 속기사로 들어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었죠. 그런데 잘 안받아주더라고요. 그때는 고용환경이 지금과 많이 달라서 장애인 취업이 더 어려웠어요. 국회사무처와 법원에 지원했지만 안 된다 하고, 속기사무소에도 지원했는데 다 안 됐습니다.”

아무데서도 받아주지 않자 그는 서울 서초동 법조단지 앞에 직접 속기사무소를 차렸다. 변호사 사무소의 의뢰를 받아 법원에 제출할 증거용 녹취 파일을 풀어주는 일을 했다. 의뢰인들은 송 대표가 시각장애인이란 사실을 알고 나면 그를 불신했기 때문에, 고객이 사무실에 오면 앞이 보이는 척 행동했다. 그러다 시각장애인이란 사실이 드러나 곤혹스런 입장이 되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5년 동안 속기사무소를 운영했다.

사람들과 만나는 전시안내에 꽂히다 

▲ <어둠속의대화> 전시장 간판. ⓒ 어둠속의대화 페이스북

속기사 일을 하던 2007년, 송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시 ‘어둠속의 대화’를 관람했다. <어둠속의대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각, 촉각, 후각만으로 즐기는 체험전시로 시각장애인이 전시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80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현재 25개 나라 27개 도시로 뻗어나갔다. 송 대표는 이 전시에 말 그대로 ‘꽂혔다’.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집중해야하는 속기보다,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전시 일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사무실로 돌아온 후에도 그 경험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송 대표는 전시기획사를 찾아가 하루 중 오전에만 전시장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리고 오전 오후로 나눠 전시장과 속기사무소에서 ‘투잡’을 뛰었다.

“가이드로 일하는 게 정말 행복했어요. 제가 목이 다 쉬어서 회사에서 ‘몸도 안 좋은데 나오지 말라’고 해도 나갔죠. 그냥 즐기면서 했어요. 그러다 2차 전시가 시작될 때 아예 제가 하던 일을 접고 기획사로 들어갔습니다.”

속기사무소까지 그만두고 전시기획사에 들어갔지만 2008년 3차 전시가 끝난 후 재정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간판을 내리게 됐다. 송 대표는 자신에게 꿈과 열정을 주었던 이 전시를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다시 한 번 만들어보자’고 제의했다.

네이버 지원 받아 사회적기업을 세우다  

송 대표는 일단 전시를 다시 연다는 계획을 가슴에 품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일산직업능력개발센터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컴퓨터속기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 공단에서 일하는 동안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애인의무고용 대상인 기업이 자회사 형태로 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에 투자하면 모회사가 장애인을 고용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였다. 송 대표는 장애인고용공단의 ‘대기업참여사업장추진팀’의 도움을 받아, 여러 대기업에 <어둠속의대화> 상설전시 투자유치를 제안했다.

▲ 장애인고용을 위한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의 개념도. ⓒ 고용노동부

송 대표와 직원들은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 안 벤치에서 1000원짜리 도시락을 먹으며 제안서를 구상하고 발표를 준비했다. 주로 대기업의 사회공헌실에 제안서를 보냈는데 반응은 냉담했다. ‘안 되나보다’하고 포기할 때 쯤 네이버에서 연락이 왔고, 제안발표와 투자결정이 몇 달 사이 이뤄졌다. 주식회사 엔비전스를 설립한 이듬해에 서울 신촌에 <어둠속의대화> 상설전시장을 마련했다.

장애인 내세우지 않고 시장에서 살아남다

▲ <어둠속의대화> 홍보영상 갈무리. ⓒ <어둠속의대화> 홈페이지

“보는 눈을 감고, 통찰의 눈을 떠라(Switch off the sight. Switch on the insight)." <어둠속의대화> 캐치프레이즈다. 송 대표는 관객이 선입견을 가지고 전시를 접하지 않도록, 장애인도 전시운영에 참여한다는 것 등 전시의 주요 특징과 내용을 설명하지 않고 홍보했다.

“지체 장애인 무용수가 있었어요. 이분 기사가 나오면 어떤 각도에서 찍든 모든 사진이 불편한 다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거예요. 한쪽 다리가 꼬여있고 접혀있는 부분에서 얼굴이 나오는 식이죠. 그 분이 장애인이 아니었더라면 가까이서 표정도 찍고 손동작도 찍었을 텐데... 그 분의 퍼포먼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오로지 ‘다리가 불편한데도 이렇게 하는구나’하는 교육적 목적만 부각시키는 거예요.”

엔비전스는 상설전시장을 열고 처음 몇 년간 적자를 봤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 전시장이 독일 함부르크와 이스라엘 홀론 다음으로 큰 성과를 내는 곳이 됐다. 송 대표는 <어둠속의대화> 서울전시가 사회적기업을 위한 ‘착한 소비’의 관점이 아니라, 냉정한 문화산업 시장에서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성공을 거뒀다고 자평한다. 관객은 주로 입소문을 듣고 전시장을 찾는데, 연인이나 가족 단위도 있고 회사나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기도 한다. 예매사이트 후기를 보면 관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장애인고용’을 적극 내세웠던 나라들 중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이미 문을 닫은 전시장도 있다. <어둠속의대화> 독일 본사가 전시를 새로 도입하는 국가에게 서울전시를 벤치마킹하라고 주문할 정도로 엔비전스의 비즈니스모델이 인정받고 있다고 송 대표는 자랑했다. <어둠속의대화> 서울전시는 누적관람객 수 25만 명을 기록했는데, 송 대표는 앞으로 지방에서도 전시를 하고 독창적 콘텐츠를 살려 해외로 역수출해 보겠다는 꿈도 갖고 있다.

장애인 고용활성화 위해 인프라 조성 필요

우리나라 30대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1.9%로 대기업 법정 의무고용비율인 2.7%에 크게 못 미친다. 전체 기업의 장애인고용률이 2.5%인 것을 감안하면 기업 규모가 클수록 장애인고용이 저조한 셈이다.

▲ 2015년12월 기준 장애인 의무고용사업체의 고용 현황. ⓒ 고용노동부

송 대표는 “장애인 고용을 외치지만, 장애인이 안정된 직업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엔비전스는 그래서 시각장애인 직원들이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안정적으로 회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용 그룹웨어를 자체 개발했다. 시각장애인 정보통신기술(IT) 전문인력 3명이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음성엔진을 가동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그룹웨어는 문서를 올리고 서류를 결재하는 등 회사 구성원들이 네트워크 내에서 공동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송 대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 그룹웨어의 완성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엔비전스는 이와 함께 시각장애인들이 웹(온라인)이나 앱(모바일)을 이용할 때 그림형태의 콘텐츠를 음성으로 전환해주는 등의 ‘웹접근성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기타를 치고 있는 송영희 대표. ⓒ Brander&Maker

올해 연말 이벤트로 ‘어둠’을 주제로 한 공연을 자그맣게 열 예정이라는 송 대표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상시 운영하는 공연사업도 추진 중”이라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편집 : 이명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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