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말'

▲ 최효정 기자

혐오의 말이 범람하는 시대다. 이상과 정의를 말하던 혀들은 굳어버렸고 ‘다름’을 혐오하는 말들이 횡행한다. 양지와 음지가 극명하게 갈라진 시대에 응달에서 자라나는 것은 소수자 혐오를 양분으로 삼는 독버섯들이다. 소외된 자들의 갈 곳 없는 분노는 매혹적인 독버섯을 섭취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묻지마 범죄’는 또 하나의 귀결이다. ‘묻지마 범죄’는 말이 생략되고 행동으로 나타났을 뿐 혐오의 표출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막말로 분열된 대중은 변화를 만들 힘이 없다. 공화당 주류에게 배제된 백인 노동자 계급이 트럼프에게 열광하는 것은 그가 다른 희생양을 지목해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트럼프가 내뱉는 여성, 유색인종, 무슬림, 동성애자에 대한 막말을 들으며 대리 배설의 쾌감을 느낀다. 이는 한국에서도 일정 부분 유효하다. 동성애 혐오를 공약으로 내건 기독자유당이 창당 이래 최고의 득표율을 얻었고, 인터넷에서는 ‘맘충’ ‘한남충’ ‘여혐’ ‘남혐’ 등 ‘충’과 ‘혐’이 붙은 단어가 난무한다.

증오 발화(發話)는 개별성을 말살한다.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 혐한 시위가 일어나는 도쿄 한인타운에서는 종종 이런 섬뜩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 좋은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이거나 한국인이라면 모조리 죽이자는 이 말은 ‘혐한’이 어떤 개연성이나 논리를 배제하며 완벽하고 순수한 ‘혐오’의 감정을 지향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내가 당신을 죽일 만큼 싫어하는 데 있어 어떤 마땅한 이유도 필요 없다는 당당함은 말이 휘발된 후에도 남아 광기의 깊이를 보여준다.

다원성을 말살하는 막말의 유행에서 파국의 징후가 포착된다.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열등한 존재를 파괴하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믿음은 환원주의적 전체주의와 맞닿아 있다. 혐오는 혐오를, 배제는 배제를 낳는 이 경험칙은 비극적인 방식으로 증명됐다. 지난 세기 인간은 전쟁에 따른 피로와 절망이 또 다른 전쟁을 부르는 것을 목도했다.

▲ 지난 5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구글 이미지

절망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희생양이 아니라 변화다. 침묵은 대응이 될 수 없다. 침묵은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혐오의 말에 맞서는 말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때 우리의 언어는 정확하고 개별적이어야 한다. 인간의 개별적 인격을 말살한 말들을 버리고, 구체적 상황을 그려내는 ‘증언’을 준비해야 한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서로를 ‘충’이라는 혐오의 언어로 가둬둘 게 아니라 ‘일베충’의 절망을, ‘맘충’이나 ‘급식충’이 처한 양육과 교육의 열악한 환경을 말로써 고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해의 시작이고, 변화를 위한 연대의 시작이다. 혐오의 말이 흘러 넘치는 시대는 그렇게 건너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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