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VR 저널리즘의 명과 암, 그리고 미래

영화 <해리포터> 팬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마법 신문’을 눈여겨봤을 것이다. 마법부 신문부에서 발행되는 이 신문은 동영상에 특화돼 있다. 1면엔 주요 뉴스와 관련된 동영상이 흘러나온다. 요즘 유행하는 ‘짤방’과 비슷하다. 3~5초의 짧은 동영상엔 호그와트 소식, 아즈카반 소식 등이 담겨 있다. 영상은 짧지만 강력하다.

▲ <뉴욕타임스>가 선보인 <난민>에서 시리아 어린이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난민> 갈무리

최근 저널리즘에서도 생생함으로 무장한 강력한 동영상 뉴스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VR 저널리즘이다. <뉴욕타임스>는 시리안 난민을 다룬 11분짜리 다큐멘터리 <난민>을 360도 영상으로 만들었다. 시청자는 VR을 통해 자신이 시리아 난민 사태가 일어난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는 호평을 했다. <시엔엔>(CNN) 역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를 360도 영상으로 제작해 시청자가 토론회 무대에 있는 것 같은 효과를 주어 인기를 끌었다.

마치 현장에 있는 듯, VR 저널리즘의 세계

VR은 Virtual Realism, 즉 가상현실을 의미한다. 1989년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재론 래니어에 의해 고안된 이후 가상현실은 의료, 교육, 산업,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됐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컴퓨터 속에 만들어진 360도 전 방위로 펼쳐지는 가상공간에 들어가면 현실과 똑같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3차원 공간, 컴퓨터와 사람의 상호작용, 몰입은 가상현실을 설명하는 3요소다. VR 기기만 착용하면 눈 쌓인 산속이나 바다 한가운데 있을 수 있다. 팔을 움직여 쌓인 눈을 치울 수도 있고 배를 조종할 수도 있다.

VR 뉴스를 제작하기 위해선 360도 어안렌즈와 송·출력 시스템, 별도의 시청 기기가 필요하다. 2014년 구글은 VR 뉴스를 시청하기 위한 약식 안경인 ‘카드 보드’를 만들었다. 골판지와 플라스틱 렌즈만으로 만든 기기다. 이후 카드 보드 규격에 맞춘 중저가브랜드의 VR 기기 500만 개가 만들어졌고 삼성과 구글, MS는 전문 기기 생산에 나섰다. 삼성의 오큘러스, VR 기어, 구글의 안드로이드 VR은 현재 100만 명의 소비자를 갖고 있다.

 ▲삼성에서 개발한 VR기기 ‘옵큘러스’. ⓒ 삼성모바일코리아 영상 갈무리

VR 뉴스의 강점은 뛰어난 현장감과 몰입도, 객관성이다. 시위 현장을 찍은 360도 영상을 보며 시청자는 시위대와 경찰 양쪽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기존 2차원 영상에서 볼 수 없었던 시위 주변 환경도 볼 수 있다. 프레임에 구애받지 않고 시청자 중심의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재해·재난 현장을 취재해 시청자의 이해를 높이고 발 빠른 대처도 가능하다. VR은 스포츠 중계나 탐사보도 영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가상현실 도입에 적극적이다. 그중 <뉴욕타임스>가 선구적으로, 앞서 얘기한 <난민>이 대표적이다. NYTVR이란 페이지를 만들어 VR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직 도입 초기라 뉴욕 걷기, 파리테러 추모 현장 등 10개 안팎의 뉴스밖에 없지만 VR을 위한 애플과 안드로이드 앱을 무료로 배포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AP통신>은 쿠바나 북한 등 AP만 특파원을 두고 있는 지역에 VR 저널리즘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에스투데이>,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력 언론들도 몰입형 컨텐츠 제작에 나서고 있다.

국내서도 반응 높은 VR 영상, 고민 필요한 때

국내에선 한경닷컴이 가장 먼저 VR 뉴스를 도입했다. 한경닷컴의 뉴스채널인 ‘뉴스래빗’은 작년 12월 민중 총궐기 당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조계사 도피 사건을 다룬 ‘아수라장 조계사’를 내놨다. 360도 영상으로 경찰과 노총 관계자들의 대치 상황을 1분 분량으로 보도한 것이다. 이 영상은 <아리랑티브이>를 통해 해외에 한국의 우수 VR 저널리즘 사례로도 소개됐다. 지상파 최초로 VR 저널리즘을 도입한 건 <한국방송>(KBS)이다. 삼일절을 맞아 제작한 ‘서대문 형무소 고문 체험하기’ 영상은 시청자가 실제 사방이 뾰족한 못으로 둘러싸인 독방에 들어가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고문을 받는 체험을 하게 해 주었다. ‘기상 캐스터와 함께 걷는 윤중로 벚꽃 축제’ 영상에선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좌우를 둘러보며 걸을 수 있다. 얼마 전 종영한 인기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주인공 송중기가 <뉴스9>에 출연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360도 영상은 KBS WORLD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2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실제 <뉴스9> 인터뷰 영상보다 2~3배 높은 수치다. VR 뉴스가 가진 현장성과 생생함에 독자들이 반응한 것이다.

 ▲조계사에서 한상균 전 민주노총장이 경찰에 인계되고 있다. ⓒ 뉴스래빗 ‘아수라장 조계사’ 갈무리

VR 뉴스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360도 영상을 오래 볼 경우엔 구토 증상과 어지럼증이 올 수 있다. <조선일보>의 VR 플랫폼인 <VR조선>도 30분 이상 VR 뉴스를 시청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다. PC에서 VR 영상을 시청할 땐 마우스로 영상을 클릭하느라 오히려 화자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고도의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 VR 영상이 오히려 뉴스에 대한 피로도를 높이는 것이다. 영상 그 자체에 집중하면서 메시지가 사라진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4월 기자협회에서 주최한 ‘저널리즘과 혁신’ 강연회에서 연설자로 나선 최진순 기자는 “VR 등 기술의 혁신이 목표도 의미도 상실한 ‘실험을 위한 실험’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첨단의 대안 영상시장으로의 가능성과 저널리즘을 본령이라는 양축에서 어떤 강점을 살려내 저널리즘에 기여할 지 고민과 대안이 필요한 때다.


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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