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콰이강의 다리'와 정부의 대일외교

▲ 박장군 기자

<콰이강의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전쟁영화다. 여느 작품과 다르게 전쟁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간헐적인 총격전보다 눈길을 끄는 건 주인공 니콜슨 대령의 인물상이다. 그는 영국군 지휘관으로 뼛속까지 밴 군인정신을 보여준다. 일본군 포로가 돼 미얀마에 있는 수용소에 갇히지만, 대영제국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놓지 않는다. 관객이 니콜슨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지점은 그가 다리 건설을 지휘하고부터다. 철도를 통해 인도까지 손에 넣겠다는 적의 계획을 모를 리 없는 니콜슨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다리 건설에 힘쓴다. 그는 일본군이 짓지 못한 다리를 자신의 부하들이 기한 내에 완공하는 것을 곧 영국군의 승리로 여겼다. 니콜슨은 연합군의 비밀작전으로 콰이강의 다리가 산산조각이 나고서야 적을 돕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주인공의 행동에서 일본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외교가 오버랩된다.

정부의 대일외교를 보면 뒤로 걷는 가재걸음이 떠오른다. 니콜슨 대령이 다리 건설에 집착한 것처럼 외교적 승리에 목을 맨다. 지난 12·28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정부의 첫 반응은 자화자찬이었다. 역대 정부가 포기했던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면서 최초로 일본 총리의 공식 사죄와 반성까지 받아냈다는 것이다. “아! 방금 일본 선수를 보기 좋게 때려눕혔습니다. 고국의 동포 여러분 기뻐하십시오”로 시작되는 70년대식 스포츠 중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뒤집힌 애국심 앞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흘린 피와 눈물은 가려졌다. 위안부 문제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 가재걸음 민족주의는 소녀상의 눈물을 가린다. ⓒ flickr

뒤틀린 민족주의에 집착한 사이, 정부는 역사무대에서 일본에 정당성을 안겨주고 만다. 국제 사회에서 상호 비방을 자제한다는 합의는 정부의 손발을 묶는다. 전범 국가 일본이 공식적으로 역사를 왜곡해도 제지하기 어렵다. 위안부로 끌려간 게 아니라 ‘보내졌다’고 표현한 교과서에도 항의 못 한다. 일본은 과거사 장애물을 하나둘 치우면서 제국주의 야욕을 드러낸다. 안보법제를 개정한 데 이어 평화헌법 9조까지 뜯어고치려 든다. 과거 전쟁범죄 반성은커녕 침략과 전쟁의 망상에 다시 빠져 허우적댄다.

리영희 선생은 <자유인>에서 중국의 사상가 루쉰의 표현을 빌려 “페어플레이는 페어플레이를 이해한 상대에게 적용될 때 비로소 공정한 게임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일본이 공정성에 기반한 페어플레이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도록 이끄는 길은 우리 몫이다. 가재걸음 민족주의를 벗겨내면 일본의 민낯이 보인다. 21세기판 콰이강의 다리는 아직 폭파되지 않았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1학기에 개설되는 인문교양수업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담당교수 김문환)].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한 서양 문명사 강의가 펼쳐집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 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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