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재앙은 막자] ⑯ 탈핵전문가 이유진의 진단과 대안

“지난해 프랑스 파리의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총회에서 봤던 문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지구가 망하면 일자리도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파리의 시민들은 정부가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쓰면서 그 사업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일명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녹색당 이유진(40) 공동운영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통의동 당사에서 가진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사회는 이런 흐름인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화력과 원자력이라는 낡은 에너지를 붙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녹색당은 지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창당한 대표적 ‘탈핵’ 정당이다. 오는 4월 총선을 위해 당의 11가지 핵심 정책의제를 제시하면서 ‘탈핵 에너지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을 1번으로 내세웠다.

▲ 녹색당 이유진 공동운영위원장. ⓒ 배지열

에너지 공급 장악한 기업에 정책 좌우

이 위원장은 현재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독점적 구조’를 꼽았다. 소수의 공급자 중심으로 편향돼 있어 관련 기업과 정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북 영덕의 원전 부지를 결정할 때나, 부산 기장군에 해수담수화 수돗물을 공급할 때에도 절차적인 투명성이 부족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문제들을 국민들과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인식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합니다.”

▲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 문제를 두고 지역주민들 간에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 KNN <뉴스아이> 화면 갈무리

이 위원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국가적인 토론을 통해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한다’는 결정에 이른 독일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사회적 논의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대표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고, 2011년 4월 공영방송을 통해 이들이 벌이는 장시간 토론을 중계했다.

그는 정보 불균형 문제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과 민간 환경감시기구가 의뢰해 실시한 경북 경주 월성원전 인근 주민 40명의 소변검사 결과가 지난 1월 발표됐는데, 대다수 주민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원전 인근 주민들의 평균 삼중수소 농도는 5.50Bq/L(리터당 베크렐)로, 경주시내 주민들의 검사결과인 3.21Bq/L에 비해 높았다. 월성원전 측은 검출량을 인체에 미치는 방사선량으로 환산하면 실제로는 미미한 수준이라 문제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적은 양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논쟁을 하기 위해 공평하게 정보가 제공되고, 발언 기회가 주어지는 게 맞지만 일단 정보를 틀어쥔 정부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주요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잘 제공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원전과 관련된 위험성을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입증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도 안타까워요.”

▲ 경북 경주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이 높은 농도의 삼중수소 검출 결과를 두고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지방의 희생과 갈등 딛고 전력 대량 소비하는 수도권

현재 운영되고 있는 24기의 원전은 전남 영광, 경북 경주와 울진, 부산에 위치하고 있다. 화력발전소 역시 충남 당진과 보령 지역에 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는 평균 250킬로미터(km)의 송전선을 지나 국내 전력수요의 38%를 차지하는 수도권 지역으로 공급된다. 발전 설비 부지를 둘러싼 강원 삼척과 경북 영덕 지역의 갈등뿐만 아니라 송전선을 두고 오랫동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경남 밀양 지역까지, 지방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나오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에너지 생산과 소비 구조, 그로 인한 피해범위와 정도 그리고 이를 다루는 정부와 기업들의 시선까지 모두 불균형한 상태에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근본적으로 에너지 정책은 결정 과정이 합리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하죠.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전기를 생산, 소비하고 특정 산업계만 배불리는 현재의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이 위원장은 그래도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이 탈핵에 목소리를 내고 있고, 지역별로 탈핵을 주장하는 시민들의 모임 그리고 탈핵학교가 많이 열리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이전에는 원자력발전은 어쩔 수 없이 써야하고 그 기술은 안전하다는 신화가 있었는데, 이제 시민들의 움직임에 의해 그 신화가 깨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강원도 삼척 시장 선거에서 원전을 반대한 후보가 승리하고, 부산의 고리 1호기 가동 중단 결정이 내려진 것 등은 우리 사회가 탈핵에 대해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원전 유치를 반대한 후보가 당선된 강원 삼척 지역의 원전 반대 시위 현장. ⓒ 녹색당 제공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등 지자체의 변화 희망적

서울시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을 늘려 장기적으로 원전에서 생산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대체하는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을 지난 2011년 시작했다. 서울시는 이 운동을 통해 현재 4.5% 수준인 전력자립도를 2020년까지 20%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경기도 역시 지난해 6월 ‘에너지 비전 2030’을 선언하고 태양광 발전소 확대, 신재생에너지 타운 조성 등의 사업으로 2030년까지 전력자립도 7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수도권 지역에서 원전을 많이 대체하겠다는데, 정부는 오히려 원전을 추가해서 2024년까지 42기나 운용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 서울시, 경기도, 충청남도, 제주도 지자체장들은 지난해 11월 지역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 소셜방송 <라이브 서울> 화면 갈무리

“시민들과 지자체의 인식과 행동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4년간 분명히 바뀌고 있는데, 국회와 정부는 아직까지 원전 옹호논리에 얽매여 있습니다. ‘핵마피아’ 세력에 대항하려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탈핵 공동체를 만들어 대응해야 합니다.”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이 시작된 이후 서울에서는 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주최하는 에너지 관련 강의가 많아졌고 이런 강의에 시민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이 위원장은 법과 제도를 정비해 이 분야에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절전을 위해)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많이 사는 경향이라면, 난방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관련 기술에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어떤 수준에 이르면 에너지 절약 방안에 대해서 고민할 텐데, 이들에게 믿을만한 기술을 제공하고 초기 투자할 때 안심할 만한 융자 제도를 마련하는 등의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의 인력과 시장, 기술 등을 갖춰야 합니다.”

이 위원장은 우연한 기회에 <한겨레>의 환경대탐사 기획취재를 함께 했다가 필리핀 미군기지 근처에서 오염된 물 때문에 태어난 기형아들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귀국한 뒤 녹색연합에서 본격적으로 환경문제에 뛰어들었다. 지난 2011년에는 녹색연합에서 ‘에너지 자립 마을’ 사업을 시작했다. 에너지 자립 마을은 주민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생산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관련 일자리와 소득까지 만들어 경제를 살려나가는 공동체다. 농촌 중심으로 진행되던 이 사업은 현재 서울로 확대돼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 성북구 돋을볕마을 등 서울에만 30여개가 있다.

▲ 에너지 자립마을 홈페이지. ⓒ 녹색당 제공

에너지 자립 마을에는 에너지 슈퍼마켓이 있는데,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상품들을 판매하고 에너지전환과 관련된 교육도 한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주택을 개조하거나 소형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주기도 한다. 현재 영등포, 강남, 성북구 등 서울 시내 11곳에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 위원장은 “원전을 하나 운영하는 데 연간 3조원 가량이 드는데, 그 돈을 각 마을의 에너지 슈퍼마켓 운영에 쓴다면 전력수요도 줄이면서 관련된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마을에 위치한 에너지 슈퍼마켓. ⓒ 녹색당 제공

산업용 전기료 현실화와 발전차액지원제 부활 필요

이 위원장은 탈핵을 위한 첫 번째 전제조건으로 산업용 전기요금 현실화를 지적했다. 누진율이 가파르게 적용되는 가정용 전기요금에 비해 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에도 못 미칠 만큼 낮게 책정돼 기업들의 에너지 낭비를 부추긴다. 그는 현재 전력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포함해서 장기적으로 현행 요금의 50% 정도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어느 정도 전기요금이 올라야 에너지효율 관련 산업과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둘째로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활용해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FIT는 정부가 정한 기준가격과 실제 전력 거래가격 간의 차액을 정부가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한 기업에 지원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이 제도를 도입했다가 2011년 폐지하고 공급의무화제도(RPS)를 도입했다. RPS는 발전사업자에게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한다. FIT를 폐지하고 RPS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재정적 부담이 크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제도 변화 때문에 FIT에 기대를 걸었던 소규모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이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차액을 지원해왔기 때문에 (정부) 부담이 생긴 것”이라며 “기금으로 지원하는 게 아니라 생산된 전기요금에 직접 반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이 위원장은 산업용 전기요금 현실화와 FIT 재도입을 탈핵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꼽았다. ⓒ 배지열

이 위원장은 FIT 도입은 예산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의지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은 재생가능에너지가 유용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 위원장은 “우리는 신기후변화 체제에서 대응책을 원자력 발전 확대로 막는 우를 범하고 있다”며 “탈핵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재생가능에너지가 가져올 신생 일자리와 발전 가능성을 못 보면 계속 뒤처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 소형 태양광발전사업자 모임에 갔는데, 그곳에는 정부가 태양광에 투자하래서 자기 연금까지 투자해서 시작했다가 팔지도 못하거나, 가격이 낮아지는 바람에 대출했던 은행에 이자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정책적으로 이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FIT를 재도입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살아나야 탈핵도 가능해요.”

‘재생가능에너지 100%’도 꿈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UNFCC의 키워드는 ‘100% 재생가능에너지’였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미국 일부 지역에서도 실제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마을은 물론이고 도시 단위에서도 재생가능에너지 외에 다른 에너지원을 사용하지 않는 개념이다. 독일은 지난해 재생가능에너지로 만들어낸 전력량이 전체 전력량 대비 30% 수준에 올라섰고 점점 비중을 늘려갈 계획이다. 주택의 경우에도 에너지 손실을 막는 패시브 하우스나 건물에서 쓰는 전력 외에 추가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플러스 하우스까지 등장해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가 만들어낸 전력이 늘어나면 에너지원의 특성상 안정적인 수급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발기인 200여명으로 시작해 현재 당원 약 8400여명으로 규모가 커진 녹색당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처음 의회진출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탈핵과 에너지전환을 연구해온 전문가, 원전과 송전탑 부지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주민, 현장 활동가 등이 여전히 열심히 뛴다. 아직까지 정당을 인물 위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 ‘안철수 당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이 위원장은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다 보면 녹색당이 다루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가 됐다는 반응들이 많아졌다”며 “나이 많은 어르신들도 예전보다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동의해주시고 손자, 손녀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대책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한·중·일 삼각공조 필요한 탈원전

30기의 원전을 가동하면서 추가로 24기를 건설 중인 중국,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폐쇄했던 48기의 원전 중 3기를 재가동한 일본, 그리고 영토 내 세계 1위의 원전밀집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 게다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까지 더해진 동북아 지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 녹색당은 동북아 지역에서 국가 간 탈핵 선언을 제안하고 ‘동아시아 탈핵 공동체’라는 해결책을 지향하고 있다. 핵무기와 원자력발전에서 벗어나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을 공유하고 핵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얘기다.

“북한에도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을 제안해야 해요. 독일 녹색당 의원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독일은 북한에 이미 소형 풍력 발전기나 태양광 발전기를 보급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우리나라도 재생가능에너지 기반이 있다면 남북간 협력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 지난 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20대 총선, 탈핵에너지전환의 과제' 토론회에서 이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배지열

녹색당은 4월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3%이상을 얻어 비례대표 의원을 원내에 진출시킬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우리나라 같이 양당 체제가 공고한 정치에서 녹색당 출신 의원이 나온다면 정치사에 큰 의미가 될 것”이라며 “구호만 외치는 게 아니라 관련 분야에서 쌓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탈핵이 대안이 되고 실현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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