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청년’

▲ 전하경

보수는 숫자로 말한다. 논리로 대변되는 정확한 수치는 보수의 강점이다. 이들에게 수는 좋은 공격수단이다. 이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할 때도 검인정 교과서 8종 중 5종이 좌편향돼 있다고 몰아붙였다. 좌우 성향을 가리는 잣대 자체가 너무 우경화한 탓이지만. 생명이 위독한 백남기씨에게 진보진영이 “어르신에게 물대포 쏘는 ‘파렴치한’ 정부”라며 형용사로 공격할 때, 보수는 해외에서 폴리스라인 침범으로 처벌된 숫자를 들어 방어했다. 나름대로 객관적 수치를 대며 그들의 아젠다를 지키던 보수가 ‘헬조선’에는 주관적인 잣대를 든다. 바로 ‘노력’이다.

진보언론은 헬조선을 수치로 보여준다. <한겨레>는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연구결과를 크게 보도했다. 상속∙증여가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이 1980년대에는 27%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에는 29%로, 2000년대에는 42%로 10% 이상 증가했다. 진보 논리는 더욱 탄탄해졌다. <블룸버그>가 작년 연말 기준 세계 부호 상위 400명을 조사한 결과, 여기에 이름을 올린 5명은 모두 자수성가가 아닌 부모 상속으로 부자가 된 경우였다. 수저계급론의 실체가 뚜렷이 드러난 것이다.

수치로 헬조선 논란을 덮을 수 없게 되자 보수언론이 궁여지책으로 들고나온 수단이 성공사례다. 보수언론은 성공한 ‘흙수저 인터뷰’를 계속 내보낸다. 헤드라인부터 ‘지방대 졸업생인 흙수저의 창업성공기’라며 흙수저도 언제든지 노력하면 금수저가 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일종의 귀납법으로 헬조선을 부정한다. 최근에는 ‘연대’까지 들고나왔다. <조선일보> 한 논설위원은 ‘청년당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했다. 진보와 보수의 의제설정 수단이 뒤바뀐 셈이다.

▲ 수치로 헬조선 논란을 덮을 수 없게 되자 보수언론이 궁여지책으로 들고나온 수단이 성공사례다. 보수언론은 성공한 ‘흙수저 인터뷰’를 계속 내보낸다. ⓒ <TV조선 뉴스7> 화면 갈무리

하지만 노력과 연대는 청년 문제의 근본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청년의 좌절은 한국 사회 구조적 모순에 기인한다. 저성장 기조에 따른 저고용•저임금은 청년의 주머니를 불려주지 못한다. 도전도 무의미하다. ‘어이 해봤어?’ 정주영 식 도전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한번 엎어지면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노력도 해볼 만해야 힘이 나고, 자동차 운전묘기는 에어백이라도 있어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 보수가 말하는 연대는 사회구조적 원인을 청년 개인 문제로 돌리는 책임 회피다. 구조적 원인이 고쳐지지 않는 한 연대해도, 선거를 해도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청년들이 탈조선행 열차에 탑승하는 이유다.

헬조선의 실체는 명확하다. 해결 방법도 명확하다. 노력할 수 있는, 도전할 수 있는 한국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재벌 독식 경제구조를 타파해 다양한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경제생태계를 만들고, 최저임금을 높여야 한다. 도전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청년 복지와 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 노력은 청년보다 정치권이 앞장서야 할 책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7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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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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