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김민지 기자

▲ 김민지 기자

나는 종교가 없지만 부처와 예수, 두 신의 존재를 믿는다. 유치원과 고등학교 때 가입한 기독교 동아리 때문이다. 조그만 암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면서 자연스레 불교를 접했다. 졸업한 뒤로 반야심경을 외운 적은 없지만 석가탄신일에는 가끔 가족들과 절을 찾았다. 기숙사 생활을 한 고등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기독교 신자 친구들이 모임을 진행했다. 비종교인이지만 두 종교를 체험했고 지금도 친근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에는 종교에 개방적인 이들이 많다. 한국 종교인 분포는 불교 22%, 개신교 21%, 천주교 7%로 나타난다. 불교와 개신교 비율이 비슷하지만 두 종교가 갈등하고 대립하는 일은 드물다.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한다. 종교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하는 숱한 사례를 볼 때 한국은 특별하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 종교를 선택할 자유만 있을 뿐 상대가 가진 종교를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에도 예외는 있다. 바로 이슬람교다.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 화장실에서 폭발물 의심 물체가 발견됐다. 폭발물과 함께 아랍어 메모가 놓여있었다.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이다. 신이 처벌한다.’ 대통령과 총리는 ‘기회는 이때’라는 식으로 국회에 계류된 테러방지법 통과를 촉구했다. 그러나 사건은 음악을 전공한 30대 실업자가 벌인 해프닝이었다. 용의자는 “사회에 불만이 많아 짜증 나서 갖다 놨다”고 진술했다.

용의자가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한 건 잘못이지만 그는 정부의 유명무실한 청년고용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은 ‘아랍어 메모’가 나오자 무슬림에 대한 반감을 약삭빠르게 이용했다. ‘테러’와 ‘이슬람’을 연관시키는 것은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쉽다. 국내 무슬림 이민자에게는 ‘무법자’나 ‘과격분자’라는 낙인이 또 한 번 찍혔다.

▲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중인 이집트 출신 무슬림 새미 라샤드. 그는 "이슬람이라는 단어 자체에 '평화'라는 뜻이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 JTBC <비정상회담> 화면 갈무리

한국에서 이슬람교는 낯선 종교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이슬람교 신도는 13만5000명에 이른다. 중동과 남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 숫자가 늘면서 무슬림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는 무슬림 유학생이 매년 평균 25%씩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슬람은 선택 가능한 하나의 종교가 아니다.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가치체계이자 사회를 이끌어 가는 기준점이다. 지난해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조직 세력을 이들과 동일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김종도 교수에 따르면 전 세계 23%가 믿고 있는 이슬람교는 “관용을 중시하고 비무슬림의 권리를 인정하는 평화적인 종교”이다. 외국인 참수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는 이슬람국가(IS)를 무슬림 이민자와 연관 지어서는 안 된다. 낯설고 왜곡된 무슬림 이미지에 익숙해진 한국사회가 무슬림 이민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문화 정책’을 오랫동안 시도해온 네덜란드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네덜란드는 땅이 해수면보다 낮아서 수 세기에 걸쳐 제방을 쌓아야 했다. 다른 유럽 강국들이 여유로운 삶을 누릴 동안 네덜란드인들은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했다. 이런 숙명은 네덜란드가 수로와 운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다른 유럽 국가와 다른 경로를 통해 근대로 이행했다. 항구를 낀 대도시는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기 쉬웠다. 사형제, 마약, 입양아, 여성 인권, 어린이 보호, 안락사, 사회적 소수자와 같은 예민한 사회 문제에 개방적일 수 있었다. 이민자를 사회에 강제로 통합시키는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 다른 문화나 종교 집단과 분리할 수 있는 복지와 주거지를 제공해 그들만의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게 했다.

민족주의는 독재의 유용한 수단이다. 무슬림을 배제하고 타자화하는 시도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하버마스는 “민주주의적 자유와 같은 이슈보다 민족 정체성에 대한 욕구가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기 다른 정체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한국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 무슬림 이민자를 테러 집단으로 보는 것은 동화정책의 다른 면모이다. 한국인이 아니면 호전적이고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이주민과 비교할 때 무슬림은 이런 편견에 쉽게 노출된다. 정체성 있는 다문화사회는 배제가 아니라 배려로 구현될 수 있다.


편집 :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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