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요칼럼]

▲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문화방송(MBC) 관계자와 보수매체 폴리뷰 관계자의 회동 녹취록이 공개됐다. 녹취록에는 MBC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이 2012년 파업 당시 “최승호하고 박성제는 증거없이 해고시켰다, 해고시켜 놓고 나중에 소송이 들어오면 그때 받아주면 될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소송에서 패소할 것을 알면서도 두 언론인을 해고시켰다는 것이다.

2012년 MBC 노조는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사장 김재철 퇴진과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170일에 이르는, 방송사상 초유의 최장기 파업이었다. MBC는 해고 6명을 포함, 총 44명 징계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MBC와 보수매체 관계자 녹취록 유출

2014년 1월, 해고ㆍ징계 무효 확인 소송 1심에서 MBC는 패소했다. 그 해 4월과 11월, MBC와 폴리뷰 관계자가 두 차례 문제의 회동을 가졌다. 이때 오갔던 대화 녹취록이 최민희 의원을 통해 유출된 것이다. 파업의 배후라는 증거도 없이 두 사람을 해고했다는 내용 외에 권력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통제해 왔다는 증언도 담겨 있다. 해고ㆍ징계가 정당하다는 기사를 청탁하는 정황, 그 반대급부를 폴리뷰 편집국장이 요구하는 내용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뒷거래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 5월 2심에서 MBC는 또 패소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야당과 시민단체, 노동조합, 방송직능단체들은 당시 인사위원장이었던 현 MBC 안광한 사장과 백종문 본부장의 사퇴와 해고자 전원 복직을 요구하고 나섰다. 법적 대응도 예고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 유출된 녹취록에는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이 증거 없이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를 해고했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증거도 없이, 패소를 예상하면서도 단행한 두 언론인에 대한 해고

MBC가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를 패소할 것을 알면서도 증거도 없이 해고한 의도는 뻔하다. 당사자로 하여금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지루한 소송에 휘말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사자들은 지금까지 4년여를 해고 상태에서 소송전에 시달리고 있고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홈스와 라헤가 스트레스지수를 끌어 올리는 43가지를 정리했는데, 1위는 배우자 사망, 2위 이혼, 3위 별거, 4위 감옥살이, 5위 일가친척 혹은 가족의 사망, 6위 본인의 부상 또는 질병, 7위 결혼, 8위 해고 등의 순이다. 소송에 휘말리면 가족의 사망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소송 과정에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자료를 준비해야 하며 경찰, 검찰, 법원을 수없이 드나들어야 한다. 수천만 원, 수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이 더해지기도 하고, 패소하면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더해지면 스트레스가 증폭될 수밖에 없다.

비판을 포기하게 만드는 ‘전략적 봉쇄소송’

이런 소송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목적으로 제기하는 것이라 소송 기간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공공영역에 대한 비판적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 또는 ‘시민들의 공적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다.

위키백과는 SLAPP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SLAPP은 비판이나 반대를 포기할 때까지 법적 방어 비용을 부담지우는 방법으로 비판자들을 검열하고 위협하며 침묵을 의도하는 소송이다. 승소는 SLAPP를 제기하는 자가 필요로 하는 목적이 아니다. 원고의 목적은 피고가 공포, 협박, 늘어나는 소송 비용 또는 소모전에 대한 굴복으로 비판을 포기할 때 성취된다. SLAPP은 다른 이들이 토론에 참여하는 것도 위협한다. SLAPP은 종종 법적 위협으로 행해진다."

이런 소송이 최근 들어 남발되고 있다. 국정원, 청와대같은 권력 집단이나 고위 관료가 언론인에게, 유통 대기업이 중소 상인들에게, 회사가 노조에게, 보수단체가 야당 정치인이나 진보단체에게 소송을 제기한다. 주로 갑이 을에게 제기하는 소송이다.

‘전략적 봉쇄소송’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언론인들

언론과 언론인은 이런 전략적 소송 제기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권력을 비판하고 의혹을 파헤치는 것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명예훼손 형사소송, 손해배상 민사소송, 언론중재위원회에 대한 중재신청, 정정보도ㆍ반론보도 청구, 게시금지ㆍ기사삭제 청구 등 형태도 다양하다. 소송 대상 또한 스트레이트 기사 이외에도 해설기사, 논평 등 언론 보도의 모든 형태를 망라하고 있다.

이런 소송이 제기되면 언론인의 취재 활동은 위축되고 나아가 자기검열로 이어진다. 다른 언론인들에 대한 위협효과도 있다. 소송으로 괴로워하는 동료를 보고 알아서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일상화된 풍경화다.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전략적 봉쇄소송 억제법’ 도입이 시급하다

언론이 소송의 부담에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도록 전략적 봉쇄소송을 억제하는 법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명시한 ‘언론자유’를 전략적 봉쇄소송이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본 미국에서는 전략적 봉쇄소송 억제 법리(Anti-SLAPP)가 발전했는데,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해보자는 것이다.

박 교수가 소개한 미국 억제 법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국민의 청원권 및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소송이 제기될 경우 국민의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원고에게 입증 책임 및 비용 부담을 지운다는 원칙이 1990년대에 27개주에서 법제화되었고, 둘째 민사소송제도에 이미 존재하는 조기각하(dismissal)와 약식판결(summary judgment) 절차를 피고, 즉 자신의 발언에 대해 소송을 당한 자에게 유리하게 적용해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후자에 따르면 예를 들어 언론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이 제기될 경우, 언론은 이 소송이 전략적 봉쇄소송에 해당한다는 점을 주장해 신속하게 각하 판결을 받고 소송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체계는 미국과 달라 이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으로 검토해야 할 점이 많다. 그러나 이를 시급히 도입하기 위한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가 압살당하기 전에.


논객닷컴에 실린 글입니다. 

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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