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여성학자 정희진
주제 ① 독창적 글쓰기의 조건

인터넷에는 ‘당장 버려야 하는 나쁜 글쓰기 습관 8가지’, ‘글쓰기에 대한 오해 5가지’, ‘성공하는 글쓰기의 7가지 습관’ 따위의 글이 넘쳐난다. 글쓰기 비결을 다룬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글쓰기는 더 이상 취업준비를 앞둔 청년이나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의 전유물이 아니다. 직장인은 보고서를 쓰고, 공무원은 공문을 작성해야 한다. 사업가는 기획안으로 투자자의 마음을 훔쳐야 한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을 쓸 수 있지만,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을 잘 써야 하는 시대다. ‘무엇이 좋은 글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5개 매체에 칼럼 쓰는 이의 글쓰기 습관

▲ 정희진 선생은 2014년 쓴 책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어떻게 글을 읽을 것인지와 독후감 쓰는 법을 제시했다. ⓒ 교양인출판사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은 <한겨레> <경향신문> <씨네21> <인물과 사상> <PD 저널> 등 5개 매체에 칼럼을 연재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여러 번 그의 글을 만나는 때가 있다. 대중의 편애와 매체들의 구애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쏟아지는 많은 텍스트 중 정 선생의 글이 선택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글쓰기는 일반적으로 ‘쓰기’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생각’입니다. 글을 볼 때 문제의식을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로 두는 이유도 글이 곧 생각이기 때문이죠. 물론 숙련된 사람은 표현력과 고민의 깊이가 일치하겠지만, 둘 중 뭐가 더 중요한지를 택일하라면 글이 담고 있는 콘텐츠입니다.”

정희진 선생은 ‘어떻게 쓸 것인가’를 말하기에 앞서 ‘무엇을 쓸 것인가’를 강조했다.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표현력이 조금 부족해도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대체 불가능한 필자가 돼라’는 그의 주문도 같은 맥락이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그 생각이 잘 조직되어 있다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콘텐츠로 평가받는다.

글쓰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정 선생이 정의한 글쓰기는 자기 몸 밖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자기재현’이다. 개개인의 자기 재현으로 소통이 이뤄지고 사회가 굴러간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람의 몸은 자기재현에 앞서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정신분석학 연구자는 방어기제를 ‘스킨’이라 부른다. 신체와 세상이 맞닿아있는 ‘피부’를 은유한 것이다. 자기재현의 정도는 방어기제의 정도와 다르다. 방어기제에 따라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글쓰기는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다. 정 선생은 “글쓴이 이름을 가렸을 때,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지당한’ 이야기는 자기 재현에 실패한 글”이라 규정한다.

배운 것이 많다고, 수입이 많다고 사람이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의 매력은 말과 글을 통한 자기재현에 달려있다. 자신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말과 글을 다듬는 과정은 ‘타인에게 조금 더 매력적인 인간이 되는 과정’이다. 모든 인간관계에 필수적이고, 인생 전반에 걸친 숙제다.

글쓰기의 ‘트리플 악셀’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을 할 때 가장 많은 점수를 받는 부분이 트리플 악셀이듯 글쓰기에도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겠죠. 여러분이 생각할 때 글쓰기에서 핵심이 되는 덕목은 무엇입니까?”

▲ 정희진 선생은 글쓰기의 트리플 악셀이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물으며, 대중성·전문성·시의성을 설명했다. ⓒ 네이버 블로그

학생들 사이에서 창의성, 흥미성, 시의성, 가독성 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사람마다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의 특징은 다르다. 그 중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취하면 된다. 쉽게 전달하고, 풍부한 내용을 담으려면 대중성에 주목해야 한다. 미학개론 첫 페이지를 보면 ‘대중성은 곧 전문성’이란 설명이 나온다. 즉, 굉장히 전문적인 사람이 쉽게 쓰는 걸 말한다. 글을 쓰는 이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쉽게 읽히는 글이 나온다. 쉽게 읽히는 글에 초점을 맞춘다는 부분에서 명확성은 전문성과도 통한다. 한 가지를 깊게 이야기하는 것이 명확성이다. 하나의 주제를 갖고 끝까지 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당장 오늘 자 신문을 보세요. ‘박정희’라는 단어가 나올 거예요. 30여 년 전에 죽은 사람이 오늘 신문에 나오는 이유가 뭐겠어요. 지금 시대를 대변하는 말이기 때문에 쓰이는 거겠죠.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만 ‘시의성’ 안에 포함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시의성은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만 말하는 게 아니다. 시기를 탄다는 말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현재와 연관 지어서 과거 이야기를 끌어온다면 그게 바로 시의성에 부합하는 글이다. 중요한 점은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가 삼사십년 전 이야기인데 오늘 자 신문에도 ‘박정희’라는 키워드가 실리는 것은 시대정신이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도 시대정신을 나타낸다면 그 키워드를 가져와서 글을 쓸 수 있다.

영화 <사도>라는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250년 전 이야기지만 탈역사화, 탈 맥락화해서 지금까지도 보편성을 가진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오늘날 세대갈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이다. 시대정신을 나타내는 콘텐츠가 사랑받는다는 공식에서 ‘글’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의미와 재미는 한 뿌리

정희진 선생은 글쓰기 덕목을 대립해서 보는 시각을 지적했다. 오락성과 의미는 별개의 카테고리가 아니다. 연속선에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오락성 있는 내용과 의미 있는 내용은 다르다고 착각한다. 정 선생은 자신이 수업했던 성매매 관련 특강을 예로 들었다. 그가 강의를 마치고 수강생들에게 평가지를 받았는데 “알고 들으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코멘트가 있었다. 그 수강생은 이해와 재미를 구분해서 생각한 것이다. 그 학생의 생각과 반대로 사람들은 자신이 재미있다고 여기는 콘텐츠에서 의미도 찾는다. 의미만 있고 재미는 없는 글은 없다.

감성과 이성도 글쓰기에서만큼은 대립하지 않는다. 정 선생은 “쿨하거나 과묵하거나 우아한 사람은 무식한 사람의 다른 말일 뿐이라고 셰익스피어가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냉소적이라면 그만큼 알지 못해서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반대로 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흥분도 할 수 있다. 감성과 이성을 함께 건드리는 글을 써야 한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정 선생은 ‘독창성’을 꼽았다. 시각의 독창성, 다른 말로는 관점, 세계관이 돋보이는 글은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 하지만 표현력만 좋아서도, 창의성만 좋아서도 안 된다. 창의성과 표현력은 동떨어져 있는 요소가 아니다. 좋은 콘텐츠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표현력이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없고 전달력만 좋은 글은 빨리 읽히지만 읽고 나면 남는 내용이 없다. 자칫 ‘옐로 페이퍼’가 되기 십상이다.

진부함은 ‘당연시함’에서 나온다

▲ 정희진 선생은 "자신만의 문제의식이 있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며 "독특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사고방식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 김다솜

독창성의 상대어는 진부함이다. 그렇다면 진부함은 어디서 비롯될까? 정 선생은 고정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말로는 ‘지배 이데올로기’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공기와 같다. 없으면 질식당한다. 누구도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배가 나오고 살이 찌면 스트레스를 받고, 성형수술을 해서 예뻐지고 싶어 하는 이유도 모두 우리가 주류의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자한테, 장애인은 비장애인한테 동일시한다. 선망하고 동경하기도 한다. 모두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결과다. 정 선생은 가난한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을 찍는 이면에도 이러한 주류의식이 작동한다고 진단했다.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는 현 제도의 변화를 주장하는 진보정당을 찍는 게 유리하다.

현실은 반대다. 계급배반 투표 현상은 16대 대선보다 18대 대선에서 더 뚜렷해졌다. 부자를 위한 정책을 내는 정당에 기꺼이 표를 던지는 가난한 사람들은 부를 선망하기에 부의 편에 선 사람들까지 옳다고 여긴다. 한편으로 개인의 선택을 나쁘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분명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아니다. 주류의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선망한다면,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고 개인도 낡은 테두리 안에 갇혀버린다.

“헬렌 켈러에게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는 건 장애가 아니었어요. 그녀에게 인식 도구는 청각과 후각이었어요. 우리는 비장애인 처지에서 장애의 기준을 재단하죠.”

시각장애인, 농아를 떠올리면 당연히 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 선생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비장애인의 시각이라고 설명하며 헬렌 켈러의 예를 들었다. 보지 못하고,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는 청각과 후각을 발달시켜 비장애인보다 세계를 더 정확하게 인식했다. 라틴어, 독어, 불어 3개 국어를 했고,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무엇이 장애이고, 무엇이 장애가 아닌가?’ 이 물음에 대한 답조차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기 쉽지 않다.

남자의 안식처가 여자에겐 전쟁터

▲ 정희진 선생은 수업 초반 학생들이 자꾸 웃자 그 이유를 물었다. 한 학생은 "글로 선생님을 접할 때는 진지한 분인줄 알았는데 재밌게 말씀하셔서 그렇다"고 답했다. ⓒ 김다솜

정 선생은 독창성을 ‘사유(思惟)’라고 정의 내린다. 고정관념을 벗어난 창의적인 생각은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단련하고, 생각을 할 때 생긴다는 설명이다. 생각은 누구나 한다.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건 어떤 현상을 문제라고 느끼고 저항하는 사유에서 문제의식을 기르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치성의 사유’라고 그는 말한다. 자리를 옮겨가며 위치성에 대한 사유를 많이 할 때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남자들에게 섹스는 삽입이죠? 여성들에게는 흡입입니다. 남성들에게 집은 쉬는 곳인데, 여성들에게는 노동의 공간이에요. 남자들의 안식처가 여자들에게는 전쟁터인 셈입니다.”

위치성의 사유를 연습하는 데 가장 좋은 이론은 여성주의라고 정 선생은 말한다. 남녀 문제만큼 5,000년 역사에서 명확하게 위치의 차이를 보이는 게 없기 때문이다. ‘처지가 다르다’는 명제에 가장 부합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콩나물 사는 문제만 봐도 그렇다. 보석이 아닌 콩나물을 사는 것이 소비인가 노동인가. 남자들은 소비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여성에게는 노동이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의 입장은 본질적인 게 아니다. 역할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위치성에서 가장 중요한 모델이 되는 것이 여성주의다. 정 교수가 여성주의를 처음 배울 때 세계의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칼을 쥔 것 같았다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통념을 받아들이면 독창성은 사라진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는 말이 있죠. 그런데 그건 새의 입장 아닌가요? 벌레의 처지에서 생각해 봅시다. 일찍 일어날수록 빨리 죽는 거에요. 벌레는 오래 살려면 늦게 일어나거나 안 일어나야죠. 아니면 침대에 오래 누워 있어서 우울증에 걸려있거나.”

전제에 얽매여서는 궤도 밖의 사유를 할 수 없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라는 말에는 ‘새의 입장’이라는 전제가 있다. 벌레의 처지가 배제된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으로 현안을 바라보려면 전제를 뒤집어 봐야 한다. 그는 현 정부가 외치는 복지 논쟁도 전제를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로 양분된 프레임은 복지가 선별적일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모든 국민은 아플 수 있다. 선택적으로 아프기는 불가능하다. 정부 여당이 주장하는 양자택일을 받아들이면 나올 수 없는 생각이다.

전제를 받아들이면 편하다. 갈등을 빚지 않고, 통념에 순응하면 피곤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안일하게 생각하고 고정관념 안에 갇히는 순간 독창성은 영영 멀어지게 된다. 궤도 안에서 피곤하지 않게 사는 사람은 낡은 글을 쓰게 되어 있다. 글은 곧 그 사람인 탓이다. 따라서 쉽지 않지만 치열하게 고민하고, 위치 바꾸기 연습을 오늘도 부단히 해야 한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연주 조효제 정희진 김혜원 이문재 이택광 신형철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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