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
주제 ② 인권과 평화: 코스타리카의 경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안보법안을 제•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한 일본, 이를 등에 업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G2로서 군사 굴기를 과시하고 있는 중국, 전통적 군사 강국 러시아, 남북의 군사대치까지 다양한 변수들이 군비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리영희가 <반세기의 신화>에서 밝힌 것처럼 상대방에 대응하는 군사력 증강 노력이 끝을 알 수 없는 나선형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군비경쟁은 비단 동북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낸 ‘2014년 국가•지역별 국방비 및 무기 수출입 자료집’에 따르면 국방비 지출 상위 10개 국가에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영국, 인도, 독일 등도 포함됐고, 2014년 한 해 세계가 군사비로 지출한 금액은 1조 7,760억 달러에 이르렀다.

조효제 교수는 이런 전 세계적 군사 국가화 조류를 거슬러 가는 유일한 나라로 중남미 소국 코스타리카를 꼽았다. 코스타리카는 현재 군대가 없는 나라로 67년 전에 상비군을 폐지했다. 조 교수가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코스타리카 군대 폐지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현재를 조망하는 과정은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국가안보와 군대의 뿌리는 홉스식 인권관

조 교수는 인권관과 안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두 번째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인권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먼저 ‘홉스식 인권관’을 들었다. 홉스식 인권관은 토머스 홉스(1588~1679)가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밝힌 인간 본성과 자연 상태의 특성을 바탕으로 인권을 설명한다.

▲ 조효제 교수가 인권의 2대 조류로 홉스식 인권관을 설명하고 있다. ⓒ 박장군

"홉스식 인권관은 ‘만인이 만인에 대한 적인 자연 상태’를 국가가 통제해 질서를 부여해주면 인권이 보장될 거라는 논리예요. 이때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인권인 ‘생명보존권’을 보호받는 대신 국가에 절대적으로 충성한다는 거죠. 납작 엎드려서 생명만 살려주시면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식이에요."

조 교수는 우리나라 국가보안법이 홉스식 인권관으로 정당화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법 제정에 찬성했던 자유당 의원들까지 국가보안법이 악용될 가능성을 경계했지만, 여순사건을 비롯한 내부적 혼란이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상황을 바꿨다”며 “국가가 망하면 국민의 인권도 사라진다는 논리에 인권침해를 포함한 모든 것이 정당화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가가 있어야 인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홉스식 인권관은 국가를 중심으로 인권을 상정했고, 이는 곧 국가안보와 직결됐다. 국가안보가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고, 전 세계적으로 국가안보를 위해 군대를 보유하는 것이 상식처럼 굳어졌다.

조 교수는 홉스식 인권관이 사람들에게 굉장히 설득력이 높다는 점도 지적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전쟁이나 테러의 위협으로 사회질서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지면 쉽게 홉스식 인권관으로 경도된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이번 DMZ 포격대치 같은 사건이 일어나 남북 간에 긴장이 높아지면 국가안보를 위해 어느 정도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테러용의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있더라도 이 점이 사람들에게 본능적인 설득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인권에 가까운 안보개념, 인간안보

조 교수는 '홉스식 인권관'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근대적 인권관’을 들었다. 인간의 개화(flourishing)를 위해 국가가 상황에 따라 절제하거나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근대적 인권관의 핵심이다.

“언론의 자유 같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대해 국가가 절제해야 한다는 논리예요. 국민이 어떤 말을 하고, 글을 쓰든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대신 의식주, 기초생활 같은 사회복지에 대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는 식이죠. 그래서 이 인권관에 의한 국가는 리바이어던 같이 무서운 국가가 아니라 절제할 때는 절제하고 지원할 때는 지원할 줄 아는 지혜로운 국가인 거죠.”

조 교수는 근대적 인권관을 ‘인간안보’와 연결 지었다. 인간안보는 인권에 조금 더 가까운 개념으로 안보를 국가가 아닌 인간 중심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는 “국가안보가 보장됐더라도 국민 인권이 탄압받으면 그게 좋은 걸까요”라고 물음을 던지며 “국가가 목숨은 살려준다고 하지만 국민이 조금만 거슬리는 말을 하면 탄압하고, 감옥에 가두면 생명을 살려준들 무슨 의미가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안보에는 국가도 중요하지만 인권, 평화구축, 인도적 보호 등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인간안보의 관점에서 보면 군대는 필요악에 가깝다”고 말했다. 조 교수가 2014년 8월부터 한 학기 연구년을 보낸 코스타리카는 ‘인간안보’의 관점에서 국가안보와 국력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병영을 모두 학교로 전환한 코스타리카

“12월 1일은 코스타리카 ‘군대 폐지의 날’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군대 폐지의 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나라는 여기 밖에 없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코스타리카에서 1948년에 군대를 폐지한 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쟁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거예요.”

▲ "Weapons bring victory, but only law can bring freedom." 호세 피게레스 대통령이 군대 폐지를 선언하며 벽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한 벨라비스타 요새. 지금은 국립박물관으로 바뀌어 그 자리에 기념동판이 박혀있다. ⓒ flickr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지던 1948년 12월 1일, 코스타리카에서는 군대가 폐지됐다. 당시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 대통령은 군사령부 건물인 벨라비스타 요새 벽을 망치로 부수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를 벌이고, 군대 폐지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듬해 호세 피게레스 대통령은 ‘항구적 제도로서 군대를 폐지한다’는 신헌법을 제정해 군을 완전히 해체해 버렸다.

그 배경에는 1948년 코스타리카 대통령 부정 선거를 둘러싼 내전이 있다. 당시 대선 부정행위로 국회가 선거무효를 선언하면서 정국이 혼란에 빠졌다. 이때, 평소 정권에 불만이 있었던 호세 피게레스가 민병대를 조직해 정부군과 맞서면서 내전이 발생한다. 6주간 내전으로 인구의 1%에 이르는 약 2,000~4,000명의 국민이 죽었다. ‘더 이상 국민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내전 승리 후 임시정부 수반으로 취임한 호세 피게레스는 군대폐지를 포함한 일련의 사회주의적 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나온 유명한 말이 ‘평화 배당금(Peace dividend)’이예요. 우리가 주식에 투자하면, 배당금을 받듯이 평화에 투자했을 때 우리가 받는 배당금이 있다는 거예요.”

군대 폐지를 선언한 뒤, 호세 피게레스 대통령은 앞으로 병사들의 군대가 아닌 ‘교사들의 군대’라 부르겠다며 전국의 병영을 모두 학교로 전환한다. 그리고 군대 예산 전체를 교육과 보건에 쓰겠다고 선언한다. 이른바 ‘평화 배당금’이다. 코스타리카는 실제 군사비를 교육, 보건 의료, 환경, 문화에 투자하면서 인간개발지수가 올라갔고, 현재 중남미에서 문맹률(4%)이 가장 낮다.

군대 없앤 뒤 외교력으로 평화담론 주도

“실제 그들은 '우리에게 군대가 있었다면 분명히 전쟁을 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군대를 없앤다는 건요. 단순히 군만 없애는 게 아니라, 군과 관련된 모든 활동이 없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방위산업, 군수산업, 군산연구개발, 무기계약들, 국민동원 시스템 등이 싹 다 없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비군사적 방식의 안보개념, 다시 말해서 ‘인간 안보’ 개념이 대신 들어가는 겁니다.”

조 교수에 따르면, 군대를 없앤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군사력을 포기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안보’에 대한 개념이 바뀐다는 의미다. 군대가 없기 때문에, 비군사적인 방식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생각한다는 거다.

‘외교력’이 대표적이다. 조 교수는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없었기에 필사적으로 외교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코스타리카의 외교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말했다. 코스타리카는 군대를 폐지하고 국제적으로 중립을 선언하면서, 평화와 인권이라는 국가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국제관계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적극적 외교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조교수는 “코스타리카는 탈군사화와 중립화라는 지렛대로 국제관계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이라 평했다.

▲ 코스타리카 수도 산호세에서 남서쪽으로 3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에 있는 유엔평화대학. 유엔 총회에서 조약기구로 설립한 독특한 교육기관으로 유엔에서 나오는 각종 인권, 평화 담론을 주도한다. ⓒ flickr

코스타리카는 실제 인권과 평화라는 브랜드를 통해 국제정치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중미를 휩쓸었던 내전과 분쟁을 종식한 1987년 에스키풀라스 평화협정은 코스타리카의 중재로 성사될 수 있었고, 엘발바도르와 니카라과의 자유선거를 지원하기도 했다. 조 교수는 “코스타리카는 현재 UN에서 나오는 각종 인권과 평화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인권이라는 거대한 빙산이 있다고 하면, 지금 사회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그 일각에 불과하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적인 차별이나 권리의 문제만 본다고 인권이 해결되지 않는다”며 “인권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아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과 구조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를 통해 드러난 각종 인권 문제들은 일시적인 대안들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평화와 군대의 뿌리’, 곧 한국 사회의 조건과 구조를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연주 조효제 정희진 김혜원 이문재 이택광 신형철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 :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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