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이명주 기자

▲ 이명주 기자

한동안 한국을 지배한 문화코드는 '웰빙'이었다. '웰빙(wellbeing)’이 대세일 때 나는 감격해 했다. '한국이 정말 발전했구나.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을 넘어서 총체적 안녕을 꿈꾸는 웰빙이라니!' '웰빙'에 이어 2014년에 문화코드 '힐링'이 등장했다. '힐링'은 '웰빙'을 처음 접했을 때와 달랐다. 여러 매체에 압도적으로 등장하던 힐링코드에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분명한 괴리가 있었다. '힐링'이란 단어는 유행했지만, 그 이면에 아우성치는 개인과 사회의 아픔이 존재했다. 하지만 치유할 힘을 가진 자들은 이 신음을 듣지 않았다. 사회구성원들의 고통을 방치한 결과 2015년 대한민국의 핵심어는 '힐(치유)'에서 '헬(지옥)'로 바뀌었다. 제대로 '힐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포'보다 '애프터'가 끔찍한 한국 사회

한국에 살면 ‘비포’와 ‘애프터’를 비교하는 장면을 자주 본다. 지하철역 통로 벽에 줄줄이 걸려있는 성형외과 광고 속 이름 모를 그녀들의 시술 이전과 이후 사진들이다. 이미지들이 전하는 골자는 하나다. ‘비포’보다 ‘애프터’가 낫나니. ‘애프터’의 삶을 살며 그들 인생이 얼마만큼 힐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는 아픈 이들이 너무 많았다. 치유는 없었다. 세상은 이들에게 빨리 나으라고 야단을 치거나 아팠던 사실조차 잊으라고 강요하는 분위기였다. 병세는 악화됐다.

▲ 광화문 광장. 진실마중대 앞에서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조속한 인양 등을 촉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하고 있다. ⓒ 이명주

한국 사회의 현실은 ‘비포’보다 ‘애프터’가 끔찍하다. 가장 극명한 대비는 4.16 이전과 이후로 나눴을 때다. 2014년 세월호 사고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은 그만큼 컸다. 그럼에도 그 거대한 아픔을 보듬기 위한 치유의 노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사고 직후 사회의 총체적인 분노가 누그러들자 적반하장의 호통이 시작됐다. ‘보상금 주기로 했으면 그만 나아야지 왜 계속 아프다고 징징대느냐, 금액이 적어서 그러냐?’ 막장 드라마 코드가 진상규명을 원하는 유가족들을 호도했다. 

치유의 첫걸음은 진실의 소통이다. 지난 12월 14일부터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3일 동안 열렸다. 사고가 나고 무려 600일 이상이 지난 뒤 열린 청문회였다. 지상파 3사는 아예 이를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거짓이 난무하고 책임자는 사실을 왜곡하는 뻔뻔한 청문회였다. 지켜보던 ‘세월호의 의인’ 김동수 씨는 분함을 못 이겨 그 자리에서 자해한 뒤 병원으로 실려 갔다. 설명도, 책임이나 반성도, 사과도 실종된 청문회에서 유가족들의 상처는 더 깊어졌다. 한 보수신문 사설은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천막 10여 개는 1년 넘도록 버젓이 놔두면서 애국심을 고양시킬 대형 국기게양대 설치는 금한다’며 서울시를 맹비난했다. 대형 태극기를 설치하고 싶어도 굳이 세월호 천막을 들먹일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그 천막들이 왜 “1년이 넘도록” 그곳에 남아 있는지부터 성찰해야 했다. 소통 없는 비난이 상처를 더욱 깊게 했다.

'헬'을 '힐'로 읽으라는 정부 

타인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언어폭력과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무관심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언어폭력과 무관심은 경쟁과 이익추구를 앞세우고 사람 우선인 사회공동체를 파괴해온 결과다. 힐링 없는 한국 사회에서 고통받는 또 다른 집단은 이제 막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청년 세대이다. 청년들은 취업난을 넘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에서 ‘이번 생은 실패다’는 N포까지 좌절을 겪는다. 청년세대의 현실은 출퇴근길의 지하철 9호선 급행열차를 닮았다. 출퇴근길의 9호선은 ‘지옥철’이다. 그 지옥철 안에서도 여유로운 이들이 있다. 사람들이 서로 밀리고 눌리면서 전쟁을 하고 있을 때 편히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편해 보인다고 이들을 비난하거나 혹은 일어서게 만들어선 안된다. 앉아 있는 사람과 서 있는 사람 사이에 싸움을 붙여서도 안된다. 지옥철의 현실을 바꾸려면 장기적 안목으로 차량을 더 구매하고 열차 편 수를 늘려야 한다.

▲ 메트로 9호선 여의도역. 열차에 올라타기조차 힘든 출퇴근길 만원열차 풍경. ⓒ 이명주

대통령과 정치권의 '헬조선'에 대한 인식은 문제의 핵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들이 잘못된 국사교과서로 공부해서 자학적 역사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 지옥 타령이나 한다니. 환자의 증상설명도 듣지 않고 정밀검사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과 기준으로 한국병을 진단하고 치유하려는 식이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해가 필요하다. 진정한 이해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영어식 표현으로는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이 왜 마르지 않는지, 청년들이 왜 ‘헬, 헬’ 하는지 그 피멍 들린 신음에 대한 진단과 이해 없이 진정한 힐링은 불가능하다. ‘헬’을 써놓고 ‘힐’로 읽으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편집 :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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