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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서 살아남기

기사승인 2016.01.02  19: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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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 있는 서재]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2015년을 관통한 키워드를 꼽자면 단연 ‘헬조선’이다. 헬조선이라 이름 붙인 데서 지금 발 딛고 사는 이 땅이 지옥같이 살기 어렵다고 인식하는 대중의 고통을 읽는다. 일자리는 ‘비정규직’만 늘어나고 3포(취업, 결혼, 출산 포기), 5포(내 집 마련, 인간관계도 포기), 7포 세대(꿈, 희망까지 포기)가 상징하듯 꿈조차 꾸기 힘든 현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은 다양하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를 꿈꾸기보다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 살기란 말 그대로 지옥이다. 헬조선에서 살기 위해서는 목숨 건 ‘노오력’을 하거나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벅차면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요즘 대학가에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추어진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로 이민을 준비하는 모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 요즘 20대 젊은 층들 사이에서 이민계(移民契)가 유행한다. 한국 사회에서 더는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은 삶의 질이 높은 북유럽이나 호주, 뉴질랜드를 주요 대상국으로 삼고 이민에 필요한 목돈을 만들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탈(脫)한국’을 꿈꾼다. ⓒ flickr

"한국이 싫다" 헬조선의 단면

여기 두 마디로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는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이민으로 헬조선에서 탈출한 계나의 이야기가 있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다. 현 세태를 잘 반영해서일까. <한국이 싫어서>는 지난해 신문 및 잡지에서 꼽은 올해의 책 리스트에서 거의 빠지지 않았다. 소설은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 ‘계나’가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에 이민 간 사정을 독자에게 말하듯 들려준다. 자신이 왜 이 나라를 떠나게 되었는지, 막상 떠난 호주에서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집에서 바글바글 모여 살던 호주 생활에서 그나마 자신의 방이라도 있는 한국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친구에게 말하듯 꾸미지 않고 있는 대로 속내를 다 드러낸다. 그 대화를 읽어내려 가자면 계나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계나는 종합금융회사 신용카드 팀 승인실에서 일한다. 단순반복적인 일을 생각 없이 하고 있는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다 어느 날 지독히 붐비는 출퇴근의 지옥철이 계기가 되어 사표를 내고, 가족의 만류와 눈물로 호소하는 남자 친구, ‘외국병’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호주로 떠난다. 한국을 떠나며 그녀는 말한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에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하고 물려받은 것이 없다면 경쟁에서 도태되고 약자가 되는 순간 다시 회생할 수 없는 끝이라며 평생 노인 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거라 자조하는 계나의 말은 바로 헬조선의 민낯이다.

   
▲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자신이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를 모색한다. ⓒ 민음사

호주에서 인종차별과 언어장벽 등 크고 작은 위기들을 극복하며 어학원을 수료한 뒤 회계학 대학원에 입학해 안정을 찾아가던 계나는 남자 친구 지명으로부터 청혼에 가까운 고백을 받는다. 그녀는 방학 두 달 동안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지명과 함께 한국에서 지내게 된다.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살 정도로 아파트까지 갖춰진 생활을 하지만 계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실 속에서 잘 가꿔지는 화초처럼 안온한 한국에서의 삶에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찾아 홀로 호주로 돌아간다.

소설에서 계나의 넋두리를 듣다 보면 내 얘기 같아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체는 발랄하고 경쾌하다. 한번 계나의 이야기에 빠져들면 쉽게 놓을 수 없다. 계나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면서 ‘계나의 헬조선 탈출‘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계나는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못난 사람들한테는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라고 답한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라에 버림받은 헬조선의 국민이 충분히 했을 법한 생각이다. 계나는 헬조선에 사는 바로 나였다.

헬조선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탈출만이 답일까. 헬조선만 탈출하면 계나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탈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허희 문학평론가는 평론 ‘사육장 너머로’에서 계나가 한국에서 호주로, 좀 더 나은 우리(사육장)로 떠났지만 결국 우리 안에 갇혀있는 것은 여전하다며 탈출만이 완벽한 답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 탈출해도 우리는 우리 속에 여전히 갇혀 있기에 우리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우리 속에서의 삶을 어떻게 개척해 나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2016년, 달라진 것 없는 헬조선에서

2016년이 밝았다.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은 지난해 명명된 헬조선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세월호 유가족들은 차가운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고, 찬바람이 부는 광화문 광장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국정화 역사 교과서에 대한 문제도, 노동 유연화라 부르는 쉬운 해고의 문제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위안부 문제도 그대로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투성이인 채로 새해가 시작됐다.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계나에게 묻는다. 우리(울타리) 밖을 벗어나도 그것이 또 다른 우리라면, 헬조선이라는 우리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남자 친구 곁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다시 호주로 떠난 계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며 살고 싶지 않아.”

2015년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암울한 현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2016년에 다시 읽으며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 행복해질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나의 첫 번째 출국이 한국이 싫어서 떠난 도피의 길이었다면, 두 번째 출국은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한 도전의 길이다. 명확해졌다. 내가 사는 헬조선에서 탈출만이 답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중심을 잃지 않고 이 땅에서 살아남는 것, 단순히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에 치여 나를 잃지 않고 당당히 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헬조선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회사와 시어머니 욕을 하는 친구들의 하소연에 계나는 이렇게 말한다. “걔들은 아마 앞으로 몇 년 뒤에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지…걔들이 원하는 건 공감해 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책을 덮자, 한 문장이 뇌리에 남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무섭고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불평만 해서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불만을 말하고 공감만을 구했다면, 이제 용기 내 말하자. 많이 힘들겠지만, 용기 내 싸워서 세상을 바꾸자.


편집 : 이지민 기자

유수빈 기자 holaso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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