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김민채 북노마드 편집자 겸 작가

“(제게) 잘 맞는 일을 찾은 덕분에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볕 좋은 창가에서 해사하게 웃는 출판편집자 겸 작가 김민채(27)씨에게서 진심으로 일을 즐기는 사람의 기분 좋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여행과 예술분야의 책을 주로 내는 북노마드에서 3년차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그녀와 지난 5월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데 이어 17일 온라인 메신저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은 출판사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삶은 어떤지 궁금했다.

▲ 김민채 편집자가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견민정

“대학 생활(국어국문학 전공)을 하다 휴학하고 일 년 동안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곤 책을 내고 싶은 마음에 대여섯 군데 출판사에 투고했는데, 그때 북노마드 대표님이 원고에 관심이 있다고 연락을 주셔서 책을 내게 되었고, 그게 또 인연이 되어서 일을 하게 됐네요.”

휴학 중 책 낸 인연으로 출판사 취업 

김 편집자는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1년간 휴학하면서 거의 매일 혼자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고 한다. 이 작업을 묶어 2012년 <더 서울>이라는 책을 펴냈다. 서울이라는 공간을 2000년대 소설, 동네마다 숨어 있는 이야기, 그리고 저자의 경험과 엮어서 쓴 책이다. 대중적 반향이 크진 않았지만 한 독자가 "저자가 <더 서울>을 쓰며 혼자 걸었던 것 같아 외로움이 느껴졌다"고 쓴 리뷰가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이 책이 인연이 돼 대학 졸업 무렵 출판사 문학동네의 신입사원 모집에 지원했고, 계열사인 북노마드에서 일하게 됐다.

입사 후 2년 11개월 동안 김 편집자는 여행 무크지 <어떤 날>, 제주도 무크지 <섬데이 제주>등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고 직접 글도 썼다. 무크지는 책과 잡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부정기간행물이다. 저자와 편집자의 일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저자는 자기 책이니까 굉장히 욕심을 많이 부려요. 내가 쓴 게 100개라면 그 100개를 다 넣으려고 하는 사람이고, 그 100개에 모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 근데 편집자는 그걸 객관적으로 봐줘야하고, 100개 중에서 필요 없는 10개가 뭔지 알아야 하고, 그중에서 몇 개가 강조되어야 하는 지 파악해 책을 더 돋보이게 해줄 수 있어야 해요. ‘무조건 이게 좋다’고 생각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책을 더 다듬어서 빛나게 하는 역할인 거죠.”

저자만큼이나 그 텍스트를 알아야 하고 저자만큼 텍스트에 애정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애정이 안 가는 책은 편집자로서 작업하기도 힘들다고 덧붙였다.

탁탁탁 결을 모으고 삐죽삐죽 나온 것들 걷어내기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편집자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업은 ‘원고 다듬기’다. 그는 이를 ‘막 흩어져 있는 종이를 모아 탁탁탁 책상에 쳐서 그 결을 모으고, 그 종이더미에서 삐죽삐죽 나와 있는 것을 걷어내고 반듯하게 다듬어 내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필요한 내용은 보충해서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인 셈이다.

하지만 빨간 펜을 들고 하루 종일 원고를 교정하는 것이 편집자의 일상은 아니다. 저자와 만나 의견을 나누고, 일러스트레이터(삽화가) 등 다른 작업자와도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므로 생각보다 활동적이고, 외근이 많은 직업이기도 하다.

김씨는 편집자로서 기억에 남는 책으로 지난해 가을 출간한 시인 박연준(35)의 산문집 <소란>을 꼽았다. 여행 무크지 <어떤 날>을 통해 여행 산문을 선보인 박연준 시인은 글에서 느껴지는 힘이 있어 작업이 재미있었고, 출판과정에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꾸준히 피드백을 해준 태도 역시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또 지난 1월에 낸 책 <고고! 대한 록탐방기>의 편집과정에서도 배운 게 많았다고 말했다.

▲ 김민채 편집자가 작업한 시인 박연준의 산문집 <소란>과 하세가와 요헤이의 <고고! 대한 록 탐방기>. ⓒ 북노마드

“장기하와얼굴들에서 기타를 치는 양평이 형(하세가와 요헤이)이 일본에서 낸 책을 번역 출간하는 작업이었어요. 번역자의 원고를 읽었을 때 매끄럽다고 생각되니까 그냥 넘어간 부분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저자가 한국에서 20년 동안 활동했고 한국인을 잘 아니까 조사 하나하나에도 되게 민감한 거예요. 번역본 교정지에다가 ‘이렇게 하면 일본인이 한국인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체크를 해왔더라고요. 그때 뒤통수 딱 맞은 느낌이었죠. 저는 그냥 맞춤법이 틀리나 맞나만 보고 책을 빨리 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런 뉘앙스까지 다 헤아리는 저자의 태도에서 많이 배웠죠.”

‘양평이 형’의 섬세한 지적 받고 초심 되새겨 

김 편집자는 직장으로서의 출판사에서 대해, “아무래도 대기업에 비해 작은 조직이다 보니 활동이 자율적이고 융통성이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자유롭게 행동하는 만큼 책임져야할 것도 많지만 굳이 큰 조직에서 경쟁하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완성할 책이 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이기려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좋다고 한다. 북노마드는 제작, 유통, 홍보 등을 모기업인 문학동네 소속 직원들과 함께 하고 순수한 편집부는 김 편집자를 포함해 2명이다. 그녀는 “출판사는 대개 작은 조직인데 가보면 여자가 대부분이고, 굉장히 착하고 온순한 느낌의 사람들이 많아서 정신이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물론 출판했을 때 잘 팔리는 책이 있고, 그에 따라 편집자의 대우가 달라지기도 한다. 책의 판매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나 출판계 전체적으로 느끼는 어려움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 편집자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좋은 책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책을 편집하다보면 자연스레 저자와 책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는데, 출간 이후에 생각보다 그 책이 주목받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커지는 거죠. 대중들에게 많이 판매되는 책들 중에는 사실 글의 깊이가 더 얕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저자가 SNS 스타라든지, 방송인이라든지 하는 식의 유명인 효과를 받아 많이 팔리는 책들도 많거든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문인들의 글 중에 정말 깊이 있고 빼어난 글들이 많은데, 이렇게 좋은 글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게 속상한 거죠.”

이른바 '팔리는 책'을 잡기 위해 출판사들은 높은 선인세를 동원해 유명한 저자를 잡으려 하고, 스타들의 비위를 맞추기도 한다.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결국 '만들고 싶은 책'이나 '좋은 책'보다는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충이 출판계에 있다고 김 편집자는 토로했다.

‘사라지는 것을 잡아놓는 일’ 더 잘하고픈 마음  

김 편집자는 글을 쓰는 일이나 책을 만드는 일이 결국엔 ‘사라지는 것을 잡아놓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일은 이 순간이 지나가면 없어지고, 내가 봤던 풍경도 다 사라지기에 그걸 잡아두고자 사람들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그림도 그린다. 김 편집자는 이런 작업을 앞으로 좀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한다.

“편집자로서 완전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이 일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 꼭 책이 사고가 나고, 오탈자가 나오더라고요.”

▲ 경제적으로 큰 여유는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김민채 편집자. ⓒ 견민정

세금을 뗀 초봉이 월 200만원이 안 돼,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취를 하면서 백원, 천원을 아껴 여행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는 그녀는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운 지금이 행복한 편”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김 편집자는 요즘 독립책방들을 인터뷰하고 소개하는 책 <우리, 독립책방>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지난여름부터 외주 편집자와 함께 서울 곳곳의 독립책방과 지역 서점들을 찾아다니며 준비해 왔다. 출판계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지만 개성 있는 독립출판물과 독립책방은 점점 늘어나고 있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작지만 의미 있는 대상에 주목하고 공들여 작업하며 보람을 느끼는 그녀의 모습은 오월의 햇살만큼이나 밝고 힘차 보였다.


편집 : 문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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