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정연주 전 KBS 사장
주제 ① 노암 촘스키의 언론 읽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연주 조효제 정희진 김혜원 이문재 이택광 신형철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세계에서 공영방송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7년 영국의 BBC가 설립되면서다. BBC 트러스트는 왕실칙허장에 따라 BBC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시청자와 공익을 위해 활동하고, 예산 편성과 집행을 규제 감독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BBC는 시청자의 다양한 시청권 보장과 불편부당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KBS 역시 70년대 방송공사화와 80년대 언론통폐합 조처를 거치며 탄생한 공영방송이다. 방송 민주화 투쟁으로 방송법상 '국가 기간방송'으로서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진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민주화 투쟁을 통해 탄생하고,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공적 가치를 위한 공영방송 KBS의 역할은 '민주적 언론 체제'를 구성하는 일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촘스키와 인터뷰한 내용을 중심으로 세계 언론과 한국 언론을 진단하고 조망했다.

▲ 정 사장은 "공영방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수신료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창훈

애덤 스미스는 독점 상태를 자유시장이라 말한 적 없다

정 전 사장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부론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경제 내의 모든 것들이 균형을 찾아간다는 이론이다. 시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국부론에 촘스키가 동의한 이유를 정 사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류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 이론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의 <국부론>을 보면 국가가 보호하는 기업 독점에 혹독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정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이 균형을 찾아가는 조건은 작은 규모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존재하는 시장입니다. 거대한 독점력을 행사하는 권력이 있는 시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죠."

이것은 미디어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사람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접근권을 동등하게 부여받아야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적 미디어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자본권력이나 정치권력이 지배하는 언론이 아닌 일반 대중이 참여하는 언론이 존재해야 민주적 언론 체제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중의 참여가 높을수록 사적인 이해보다 공적 이해를 반영할 확률이 높고, 진실이나 진리를 말하는 언론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정 사장은 "수신료는 무조건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대중이 참여하는 민주적 언론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이 바로 서야 하고, 공영방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신료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이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신료를 올릴 수 없다는 이야기는 어떤 체제에서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적 영역을 위해서는 수신료를 반드시 올려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적절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그 서비스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합니다."

수신료의 가치를 중시하는 만큼 정 사장은 협찬을 '가장 최악의 케이스'로 꼽았다. "차라리 미국의 공영방송 PBS처럼 기부를 받는 것이 낫다"며 "협찬은 기사나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협찬에 영향을 받은 기사와 프로그램은 일종의 '왜곡된 광고'라는 것이다. 그래서 KBS가 정치적·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수신료를 올려 자유로운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정권 아래서든 그만큼 수신료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미국 공영방송 PBS가 ‘석유방송’으로 불린 이유 

촘스키는 1920년대 매스미디어의 중심인 라디오로 거슬러 올라갔다. 라디오는 주파수를 통해 내용을 전달받는데 주파수는 정해진 권역이 있는 제한된 자원이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주파수를 규제하고, 공영 라디오를 시작하게 됐다. 그게 바로 공영방송의 모태다.

촘스키는 “탄생한 공영방송의 수준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는데 정 사장도 그 말에 동의했다. 정 사장은 “과거 소련의 공영방송은 전체주의적 성향을 띌 수밖에 없었고 캐나다나 영국은 민주적 사회인 만큼 민주적 공영방송이 정착됐다”고 말했다. 촘스키에 따르면 미국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공영방송 체제보다 상업방송 체제를 택했다. 대부분 라디오 주파수를 사적 소유에 맡기고 공적 소유로는 일부만 둔 게 문제라는 것이다. TV 역시 마찬가지다.

▲ 영국 공영방송 BBC의 뉴스룸. ⓒ flickr

1960년대부터 TV와 라디오가 전성기를 맡게 될 때 다른 나라가 공영방송 체제도 있고 상업방송도 있는 체제로 나아갔다. 이때부터 미국은 사적으로 소유한 방송국들이 TV와 라디오의 공적 기능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공영방송은 PBS입니다. 일부에서는 PBS를 Public Broadcast Service로 해석하지 않고 Petroleum Broadcast Service라고 해요.”

영국의 BBC는 수신료가 한국돈으로 25만원 정도다. 정 전 사장은 “여러 나라를 다녀본 결과 영국의 BBC가 공영방송 체계로는 가장 잘 잡혀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상업방송 중심으로 운영되고 수익 구조는 시민의 기부금, 재단의 도움, 기업 협찬 등으로 유지한다. 특히 PBS는 엑손과 같은 석유화학 기업이 기업 이미지 세탁을 위해 협찬을 많이 해서 사람들이 P를 ‘Public’이 아닌 ‘Petroleum’(원유)으로 본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PeutroleumBS'가 민간 기업 체제의 힘과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공영방송 수준은 그 사회의 민주화 수준과 함께 갑니다. 그 사회가 성숙돼 있으면 BBC와 같은 공영방송이 있을 수 있고, 미국처럼 자본가의 세력이 강력해서 공영방송까지 그 세력을 미치면 공영방송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겁니다.”

정 사장은 사적 영역이 미디어에서 너무 팽창해버렸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NHK는 철저하게 자민당 편에 서있다. 정치적 권력의 수하들이 경영체제를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NHK는 보도와 관련한 비판기능이 거의 없고 ‘팩트’만 나열해 전달한다. 일본 자민당이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도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BBC는 이라크 참전 결정을 내린 토니 블레어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스스럼없이 내보낸다. 정 사장은 “사적영역이 미디어를 장악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는 BBC와 같은 공영방송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 인문교양특강을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조창훈

미국 FOX채널을 따라가는 우리나라 종편

미국 공화당 중심의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지상파 ABC, NBC, CBS를 비판하면서 ‘Liberal Bias’라는 말을 자주 썼다. 쉽게 말해 ‘좌파’라는 뜻이다. 그들은 이 채널들이 너무 진보적이라며 비판했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FOX채널을 출범시켰다. 정 사장은 “우리나라 종편이 FOX채널을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후 시간에 FOX채널을 보는 시청자층은 은퇴한 세대들”이라며 “FOX가 보수주의자들의 입맛에 맞는 의제설정기능을 하고 오후 내내 이를 방송에서 말하듯, 종편도 FOX와 똑같은 논리로 의제설정기능을 하고 오후 내내 은퇴한 기성세대와 노인층에게 그들의 논리를 주입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치는 2500년 전 시작됐는데, 민주주의를 지지했던 사람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비판한 사람들 기록만 남았습니다. 왜 민주주의를 지지한 사람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왜 현대 민주주의는 철학자의 ‘기획’이나 지식인의 ‘이론적 뒷받침’없이 이뤄졌을까요?”

▲ 정 사장은 언론 소유주나 투자자가 세세하게 어떤 뉴스를 내라고 간섭하지 않지만 소유자나 투자자 원하는 걸 내재화(internalized)한 사람만이 매니저나 편집자로 승진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있다고 말했다. ⓒ 조창훈

콘텐츠에 영향을 미치는 교묘한 힘 

촘스키는 ‘광고 등에 장악당한 언론이 콘텐츠까지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해 “멀리 본다면 콘텐츠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언론 소유주나 투자자는 세세하게 오늘 뉴스에 무엇을 내라고 간섭하지 않는다. 그 정도는 모두 직원들 재량에 맡겨둔다. 그러나 더 교묘하고 복잡한 메커니즘이 작동되며 소유주나 투자자의 이익을 반영한다. 메커니즘은 바로 소유주나 투자자가 원하는 내용을 방송하려는 마음이 내재화(internalized)한 사람들만이 매니저나 편집자 등으로 승진할 수 있는 ‘필터링 시스템’을 의미한다. 내재화하지 않은 사람은 책임 있는 자리에 앉지 못하는 반면 소유주나 광고주의 생각을 내면화한 사람은 승진을 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는 것이다.

이어서 정 사장은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사장 선출 방식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국회가 국민을 대변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정치권이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는 지금의 방식이 이상적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정치적 권력이 공영방송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아직은 우리나라 정치 수준이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독일 ZDF처럼 이사를 60명을 뽑는다고 해도 이들을 현 정치권에서 뽑을 것이고, 시민단체가 선출하도록 해도 그 시민단체는 누가 뽑겠는가, 결국 정치권이 뽑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스템이 민주적으로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 수준이 먼저 높아져야 한다는 의미다.


편집 : 김영주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