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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선 안 될 잊고 싶은 기억

기사승인 2015.12.10  14: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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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 있는 서재] 신경숙 ‘외딴방’

선명하게 남아있는 어릴 적 기억들은 입학식이나 생일같은 특별한 때가 아니다. 의외로 내가 주인공이 아니던, 주변에서 쭈뼛대던 상황이나 창피했던 순간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다섯 살쯤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모인 어느 날, 두 살 터울인 사촌 언니가 거실에서 발레 실력을 뽐냈다. 어른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며 연신 언니를 칭찬했다. 한쪽에서 엄마 품에 착 달라붙어 있던 나는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열등감이라는 걸 느낄 수는 있으나 숨기지는 못한 다섯 살이었다. 이 밖에도 받아쓰기를 60점 맞은 사실을 잊은 채 배를 깔고 TV를 보다가 엄마에게 혼난 유치원 때 기억, 오빠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방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초등학교 6학년 때 기억이 생생하다. 평범한 날들의 떳떳하지 못한 내가 그렇게 남아있다.

소설가 신경숙이 <외딴방>에서 그리는 여공 시절은 내가 유년기를 기억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녀가 선택한 열여섯부터 열아홉 살까지 이야기는 결정적인 사건들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작가는 감정이 조금 동요했던 일상을 들려준다. 열여섯 살 그녀가 나중에 시나 소설을 쓰고 싶다고 외사촌 귀에 속삭인다. 외사촌이 “그런 사람들은 다르게 태어나는 것 같던데”라고 의심하자 조바심치며 “다르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거야”라고 부연한다. 그녀는 겸연쩍다. 외사촌이 큰 오빠에게 “쟨 작가가 될 거래요”라고 얄밉게 말을 전할 때 큰 오빠가 짓던 의아한 표정을 묘사한다. 작가는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순간을 낚아채 담담하게 옮긴다.

   
▲ <외딴방>은 70년대 후반 쪽방에서 살며 여공으로 일했던 신경숙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 문학동네

‘정리는 역사가 하고 정의는 사회가 내린다. 정리할수록 그 단정함 속에 진실은 감춰진다.’ 이 책에서 신경숙은 글쓰기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결국 글쓰기란 뒤돌아보기라고 정의 내린 그녀는 정제된 서술 대신 헝클어짐을 택한다. 그리고 담대하게 기억을 직시한다. 사람들이 <외딴방>을 읽고 감동하는 지점도 이러한 날것 그대로 남아있는 일상성에 있다. 37개 쪽방, 그 방에서 네 명이 살을 맞대고 잤던 밤들, 컨베이어벨트 속에 둘러싸인 채 들어야 했던 소음, 신경숙은 그 이야기들을 애써 꾸미지 않는다. 비뚤비뚤하게나마 기록된 사실들이 독자 마음에 강렬하게 박힌다.

개인적인 기억은 이렇듯 정돈되지 않은 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기억은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는 힘들지만 가치 있게 여겨진다. 나라의 기억이라고 다를까? 신경숙이 관통한 1970~80년대에 빛났던 개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사람은 지난하고 비천한 오늘을 꿋꿋이 견디며 살았다. 성실과 근면을 무기로 하루하루를 일궈내고, 피 흘리며 민주화를 성취했다. 개인으로서 자랑스러울 수도, 잊고 싶을 수도 있다. 국가는 이를 판단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런데 2015년 오늘 역사를 판단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더불어 그들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부각할 필요가 있다며 역사 교과서를 하나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부끄러운 역사와 자랑스러운 역사는 둘로 나눌 수 없다.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더 기술해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를 둘로 나누어 국민의 가치 판단에 개입하겠다는 의미다. 개인에게 어두운 기억은 한편으로 역사적으로 되새겨야 할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일본군이 저지른 잔혹한 성범죄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겠지만 역사적으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둠의 역사를 줄이겠다는 이야기는 위안부의 증언을 기억 저편에 묻어도 괜찮다는 말과 같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평화의 소녀상. ⓒ Flickr

어둠의 기억을 국민에게 되새기는 데 열심인 나라는 오히려 주변국의 인정을 받는다. 독일의 역사 교과서는 2차 세계대전과 나치 시대에 큰 비중을 할애한다. 대중 매체도 부지런히 근현대사를 가르친다. 독일 국민은 매주 한 번꼴로 텔레비전에서 나치 시대의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어두운 역사는 잊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기억하고 반성해야 할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외면하고 싶은 기억이 있다. 개인이라면 지우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히 마주할 때 성숙해진다. 고통을 토로하면서도 자전적 서술을 감내했던 신경숙의 <외딴방>이 호평을 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떳떳하지 못한 역사를 딛고 나아가는 방법은 미화가 아니다.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고 도쿄 전범재판을 검증하겠다는 일본 정부가 비판받는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어둠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독일, 역사를 포장지로 덧씌우려는 일본, 그 사이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글쓰기가 언론인의 영역이라면 글짓기는 소설가의 영토입니다. 있는 사실을 쓰는 것이 글쓰기라면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게 글짓기입니다. 그러나 언론인도 소설가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갖춰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단비뉴스>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서재’ 개관을 기념해 이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소설을 읽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첨삭을 거쳐 이곳에 실립니다. (이봉수)

편집 : 서혜미 기자

이지민 기자 aaa3469@naver.com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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