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예술기획자 겸 작가 서해성

“아이고, 오래 기다렸죠. 여기가 제 작업실이에요. 제자가 운영하는 카페 2층을 빌려 쓰는 거죠.”

서울 종로구 안국역 근처의 조그마한 공정무역 커피가게에서 서해성(55) 작가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카페 2층이 통째 그의 작업공간이었다. 기자가 처음 찾아갔던 지난 5월 15일 오후에는 스승의 날을 맞아 제자들이 꽃과 선물을 챙겨왔고, 그가 관여하는 평화박물관의 직원들이 문서 작업을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5평(약 15㎡) 남짓한 베란다에는 진돗개 세 마리가 옹기종기 웅크리고 있었다. 2층 구석에 있는 8평(약 24㎡) 남짓한 서재가 그의 방이었는데, 침상과 3층짜리 책장 대여섯 칸, 컴퓨터 책상, 옷걸이 등 가구가 단출했다. 그는 서재가 자신의 작업실이자 집이라고 말했다. 칼럼니스트이자 전시기획자, 교수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 작가를 지난 20일 다시 인터뷰해 우리 사회 현안과 청년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 서해성 작가가 매일 바라보며 ‘생각의 정원’으로 삼는다는 물건들. 커다란 푸른색 돌은 값이 비싸 아프간 군벌들이 쟁탈전을 벌였다는 라피스라줄리(청금석)다. 그 외에도 괴테의 흉상, 바흐 모양의 틀, 세월호 리본등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 이성훈

문화도 역사도 재미있어야 한다

그는 <한겨레>에 칼럼을 쓰고, 성공회대 겸임교수로서 ‘역사와 문화콘텐츠’ ‘사진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등을 강의한다. 또 벌금 낼 돈이 없어 징역을 살아야 하는 극빈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의 공동창립자이기도 하다. 요즘은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조민석 등 조형예술가 10여명과 함께 경기도 파주에 이주민센터를 짓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명함도 다양하지만, 자신의 본업은 ‘예술기획’이라고 말한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일생을 돌아본 전시전(2014.11월~2015.3월), 군사정권시절 민주화세대에게 영감을 주었던 케테 콜비츠의 판화 전시회(2015.2월~4월), 베트남전 종전 40주년 기념 이재갑 사진전(2014.4월~5월)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전시를 기획할 때 반드시 역사를 주제로 하고 시민들이 기획자, 작품제작자, 역사가와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두 번 이상 마련한다고 말했다.

▲ 지난 3월 7일와 3월 18일,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케테 콜비츠 전시회의 전시기획자인 서해성 작가의 “케테 콜비츠, 대지의 모성” 강연이 두 차례 있었다. © 평화박물관 제공

“요즘 세대가 민주화운동과 일제강점기를 모른다는 말이 저는 정말 싫어요. 그건 후배세대 탓이 아니고, 저 같은 선배세대 탓이거든요. 왜냐하면 프랑스 사람들도 200년 넘은 프랑스혁명은 잘 기억 못하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레미제라블>은 잘 기억해요. 한국인도 장발장은 기억하잖아요. 전 거꾸로 이렇게 물어보고 싶네요. 우리는 문화적 콘텐츠를 잘 만들어서 후배들에게 잘 전달했느냐. 민주화운동을 담은 유명한 연극이나 영화, 봐도 또 보고 싶은 그런 작품이 있냐고요. 저는 후배들에게 미안해요. 역사를 기억 못하게 한 선배로서 미안하다고요.”

▲ 지난 4월 29일 오후 11시, 베트남전 종전 40년 사진전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을 기념하여 전시기획자인 서해성 작가가 전시장 내부에 이재갑 사진작가, 한홍구 교수, 관객과 함께하는 토크쇼를 마련했다. © 평화박물관 제공

그는 역사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게 ‘문화 콘텐츠’로 잘 만드는 것이 예술가인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시를 기획할 때 ‘후세가 즐길 수 있는 역사와 문화를 담았는지’ 꼼꼼히 점검한다고 한다. 그는 서울시가 협찬한 광복절 70주년 기념사업 <나의 광복>을 총 감독했는데, 이 행사가 ‘시민들의 작품’이 되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행사에서 서울도서관의 외벽 중앙에 시민 5000여명이 보내준 ‘나의 광복은 00이다' 메시지를 태극문양 모양으로 채우고, 청소년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광복을 자유롭게 말하는 행사를 준비했다. 서 작가는 “광복이 재미없는 역사책에서 빠져나와 시민의 삶에 살아 숨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역사란 노래로 부르고 시나 소설로 써야 비로소 표현된다. 안 그러면 역사책, 연대표일 뿐이다. 그건 정말 재미없다”고 덧붙였다.

“기레기가 ‘소설 쓴다’고 하면 예술에 대한 모독” 

미국 공영방송 피비에스(PBS)의 종군기자 마이클 커크는 “언론은 사실에 기반하기 때문에 예술과 다르다”고 말했다. 언론은 창작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지어낸 얘기’를 쓰는 언론이 있다. 지난 4월 네팔 대지진 참사 당시, 국내 몇몇 조간신문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특파원이 현장취재를 한 것처럼 거짓 기사를 내보냈다. 한 종합편성방송은 지난 4월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촛불집회를 ‘폭력시위’로 공격하기 위해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죽창을 들었던 시민의 사진을 세월호 집회 장면인 것처럼 쓰기도 했다. “역사와 사실에 기반하는 서해성 작가의 전시기획이 언론 같고, 우리사회 일부 언론이 소설가 같다”고 말하자 서 작가는 언성을 높였다.

“기분 나쁘네요. 사람들이 흔히 잘 비교하는데, 그건 소설에 대한 모독이에요. 기레기(기자+쓰레기)와 소설은 전혀 관련 없는 업종이에요. 한국전쟁을 담은 훌륭한 소설, <태백산맥>이 나오는데 40년 걸렸잖아요? 소설을 쓰는 거 쉽지 않습니다. 소설은 시대의 전형을 창출해내야 하는 거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에요. 기자보다 치열하게 취재합니다. 네팔 르포사건은 소설이 아니라 ‘거짓말’이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서 작가는 예술을 ‘연’에 비유했다. 연을 메고 달릴 끈이 없었다면 연은 애당초 하늘을 날 수 없다. ‘상상력’이라는 연을 날리려면 ‘사실’이라는 끈에 매달아야 한다. 서 작가는 “예술작품도 퍼센트는 다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네팔 거짓기사를 두고 “언론의 타락이 갈 데까지 간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말(言)의 원칙(論)을 세우는 것이 언론인데, 지금의 언론은 거짓말하는 행위가 타락이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지경에 왔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인에게는 ‘계몽’이라는 막중한 의무이자 특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인은 양식 있는 지식인이 되어야 해요. 역사적으로 사회진보는 잘 살고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앞장섰어요. 양식 있는 공부를 하고 나니까 깨달은 거죠. ‘계급의 배신’이니 뭐니 신기한 일이 아니에요. 마르크스, 레닌, 우당 이회영, 전부 가난한 출신이 아니잖아요. 이 사회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려 노력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밝히는 빛을 가져다주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어요. 언론인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계몽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계몽주의 이후에 언론이 생겨났잖아요.”

그는 언론인 지망생들에게 “기자, 피디(PD)가 되더라도 절대 우쭐대지 말라”고 당부했다. 언론인은 정보생산자로서 책임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서 작가는 “책임을 잊고 우쭐대다가 정보도매상이자 시장권력의 노예로 전락한 언론인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물대포에 맞서 “온수 쏴” 외치는 유쾌함

청년들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 싸가지가 없는데, 그게 정말 마음에 든다”며 껄껄 웃었다.

“(지난 2008년 봄) 광화문 시위에 갔는데, 효자동에서 경찰들이 물대포를 쐈잖아요. 그때 어느 젊은 목소리가 ‘온수 쏴’라고 소리쳤어요. 하하, 따뜻한 물 쏴달라는 거예요. 유쾌하죠. 흔히 386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으면 ‘폭력경찰 물러나라’ 했을 거예요. 그럼 경찰이 아무도 웃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날은 경찰이 물대포 쏘면서 웃는 걸 봤어요. 자기도 쏘면서 쪽팔린 거야. ‘온수 쏴’가 물대포 쏘는 사람을 쪽팔리게 했죠. 그런 건강함이 후배들의 모습이에요. 그게 멋있어요. 싸가지 없고 멋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한없는 존경을 보냅니다.”

서 작가는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청년들의 행동도 “싸가지 없고 재밌었다”며 웃었다. 그는 시위현장에서 누군가 외쳤던 ‘쥐박이 너나 먹어’를 떠올렸다.

“역시 인터넷세대다워요. ‘쥐박이 너나 먹어.’ 그런데 이건 답이 불가능한 말이잖아요. 대답을 한다면, ‘나는 안 먹어’ 라고 해야 되는데 ‘그 분’ 입장에서는 대답이 불가능한 거죠. 가볍고 정말 싸가지 없죠. 그래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자주 쓰인 거죠. 전 그 후배들이 너무 멋있었어요.”

서 작가는 젊은 세대들의 유쾌함, ‘싸가지없음’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청년다운 말이 사회를 민주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싸가지없음에서 희망과 밝음, 따뜻함을 본다고 덧붙였다. 다만 세월호에 와서는 젊은 세대가 가졌던 따스함과 희망이 사려져 버리고 너무나 비장함만을 말하고 있어 아쉽다고 했다. “우리는 슬퍼해야 하지만, 슬픔에만 짓눌린다면 붕괴되고 만다”며 “세월호가 남긴 슬픔을 다양한 방식으로 애도할 수 있도록 선배세대들이 도와야 한다”고 서 작가는 강조했다.

▲ 서해성 작가는 청년들에게 스펙에서 벗어나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라고 부탁했다. ⓒ 이성훈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이지 말고 자기다운 인생 살길

그는 우리 시대 청년들이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였다.

“짠해요. 스펙(평가요소), 절대 사람한테 써서는 안 되는 말인데. 이건 물건 설명서에 쓰는 말이잖아요. 청춘들이 스펙에서 해방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당연히 나에게 묻겠죠. 그럼 뭐 먹고 사느냐고. 그런데요, 먹고 사는 거로만 질문하면, 먹고 사는 거밖에 남지 않아요.”

삶은 시장경제의 잣대로 성패가 갈리지 않는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서 작가는 대학생이던 80년대에 취업을 포기하고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삐라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영역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그는 90년대 이후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국내 최초로 시민이 만드는 위성방송채널인 '시민방송RTV' 출범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내 인생도 취업하고 스펙 쌓기에는 실패”라며 웃었다.

“하지만 이런 인생은 실패하지 않아요. 자기 삶을 사니까 만족도도 높아요. 우리가 설마 조선시대보다 못살겠어요? 시장권력이 우리네 삶을 빼앗게 두지 마세요. 돈보다는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자기 자신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일상적으로 있어야 해요. 그래야 자기 삶이 즐거워요. 젊은이들은 자기 길을 걸었으면 좋겠어요, 정말요.”


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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