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3김 패러다임,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기사승인 2015.11.25  15:49:38

공유
default_news_ad1

- [이상요칼럼]

   
▲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1988년 연말쯤에 <뉴스비전 동서남북>이라는 프로그램 제작을 맡고 있었다. 그해 9월 올림픽이 개최되고 난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언제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나 싶을 정도로 올림픽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87년 6월항쟁으로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던 간접선거체제에서 직접선거 수용이라는 항복을 쟁취했으나, 김영삼-김대중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정권은 노태우에게로 넘어간 상태였다. 올림픽이라는 대형 이벤트로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으나 국민은 싸늘한 냉소를 보였을 뿐이었다. 에너지가 내재하고 있기는 했지만 분출하는 사건은 없었던 때였다.

3김 인터뷰 지시를 받다

연말 아이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부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연말 분위기에 아이템도 없고 하니까 4당 총재 새해 인사 인터뷰로 20여 분을 메꾸라는 것이다. 당시 4당 총재는 민주정의당 노태우, 평화민주당 김대중, 통일민주당 김영삼, 신민주공화당 김종필이었다. 민정당은 노태우가 대통령이면서 총재직을 겸하고 있어 박준규 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질문지를 짜고, 섭외에 들어갔다. 1인당 허용 시간은 7분. 선거는 아니지만 이퀄타임 룰을 지킨다는 약속도 했다. 인터뷰 장소는 각자 집에서, 복장은 새해 인사를 감안해 자율적으로 하는 것으로 했다. 4당 총재 새해 인사 인터뷰라고 하니까 누구도 인터뷰를 거부하지 못했다. 민정당은 박준규 대표가 하기로 했다.

   
▲ 병상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 ⓒ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3김은 이렇게 달랐다 – 3김 취재 에피소드

먼저 들른 곳이 동교동 DJ 집이었다. 집 거실에서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난처한 입장에 빠져야 했다. 인터뷰이가 앉는 위치와 카메라 포지션을 DJ 측 인사가 미리 설정해 놓고 그대로 하라는 것이다. 제대로 정면 샷이 나오도록 하기 위한 조처였다. 화면 사이즈와 오디오 픽업 상태도 확인했고, 제작팀이 가져간 조명이 있는데도 별도 조명을 더 설치하기까지 했다. 준비가 끝나자 한복 차림으로 미리 방송용 화장을 한 DJ가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이희호 여사가 소파에 배를 내밀고 편하게 앉아있는 DJ의 자세를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도록 고쳐주었다. DJ는 원고 없이 정확히 7분을 연설하다시피 했다. 단 한번 촬영으로 상황 종료. 정확히 7분만 발언한 것은 인터뷰 내용 편집을 막기 위해서였다. DJ는 선거를 치르면서 측면 샷에 풀샷 아니면 롱샷의 어두운 화면, 편집으로 왜곡된 인터뷰 내용에다 그마저도 잡음이 섞여 선명하지 않은 녹음 등의 매체 조작을 많이 당했었다. 이에 대비해 마련한 디테일한 조치였다.

상도동 YS 집으로 갔다. 여기서도 난처한 처지에 빠져야 했다. 편한 카디건 차림으로 등장한 YS는 제작팀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제작팀은 DJ와 같은 샷과 조명 그리고 오디오 녹음 상태를 준비했다. 문제는 발언 시간이었다. 7분을 채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용도 요령부득(?)이었다. 한 차례 녹음이 끝나면 옆에 도열해 있던 보좌진들이 우르르 YS에게 달려가서 이런 부분이 빠졌고 저런 부분은 빼는 게 좋겠고 다른 부분은 더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시 녹화에 들어갔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퀄타임 룰을 지키겠다고 했으므로 7분은 채워야 했다. 열 번을 넘게 녹화했다. 그래도 YS의 발언은 7분을 채우지 못  했다. 지친 YS가 한마디 했다. “마~고만 하입시다”. 이퀄타임 룰은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청구동 JP 집으로 갔다. DJ와 YS 집에서도 그랬지만 JP 집에는 당 관계 인사들이나 손님들이 더 많았다. 녹화 준비도 하기 전에 JP가 내 손을 다정하게 잡으면서 말했다. “이 피디, 떡국이나 먹고 합시다”. 박영옥 여사가 직접 만두 떡국을 제작팀에게 차려 주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의자가 있는 식탁 테이블에서 떡국을 맛있게 먹었다. 그 사이에도 당 관계자들이 들락거리면서 무언가 귓속말을 하고 갔다. 어떤 당 관계자가 무릎걸음으로 JP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보고하는 걸 보고는 뜨악했다. 그러고 난 후 JP는 여유 있고 구수하게 새해 인사 인터뷰에 응했다. 보좌진의 조언은 없었다. 녹화도 한 번 만에 끝났다. 제작팀에게 특별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박준규 대표 인터뷰와 관련해서는 별 기억이 없다. 대표 체제로 당 운영을 대행하는 입장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미 있는 인터뷰 내용을 끌어내기가 어려웠다.

3김 패러다임이 남긴 현대사의 명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다는 3김 패러다임은 한국 현대사를 규정하고 견인하는 강력한 힘의 하나였다. 현대사는 그들의 말과 행동, 비전과 욕망 때문에 전개되어 왔고,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그들이 남겨놓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다. 그 패러다임이 점점 희미해지다가 이제 사라졌다. 패러다임이 사라지면 혼란과 절망이 뒤따른다.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혼란과 절망은 이를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없기 때문인가?

이종수 한양대 교수가 한국, 미국, 프랑스, 일본이 1999년에 방송한 역사 다큐멘터리 내러티브를 비교한 논문을 재미있게 읽었다. 1999년, 20세기를 마감하면서 네 나라는 자국의 20세기 100년을 정리하는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한 터였다. 한국 KBS의 <20세기 한국사-해방> 10부작, 미국 ABC의 <The Century: America’s Time>, 프랑스 TF1의 <우리의 20세기>, 일본 NHK의 <영상의 세기>가 그것이다. 한국 다큐멘터리는 필자가 제작하기도 한 프로그램이라 이렇게 분석된다는 것이 생뚱맞지만 즐겁기도 했다.

영웅, 민중, 제도 패러다임

이 교수는 각국 다큐멘터리의 기본대립구도가 한국은 ‘민중:권력’, 미국은 ‘영웅:혼돈의 세계’, 프랑스는 ‘사회적 이성:야만’, 일본은 ‘일본:서구’로 짝지어져 있다고 보았다. 각국 역사 내러티브의 중심세력은 한국이 직관적이고 정서적인 ‘민중공동체’, 미국은 ‘개인 영웅’, 프랑스는 ‘사회적 이성’, 일본은 ‘일본적 가치’가 된다. 역사적 주역을 중심으로 한 각국 20세기 역사의 기본골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한국은 직관적이고 순수한 ‘민중의 의지’로 정치적 민주화가 성취되었다는 서사구조를 취하고 있다. 미국은 개인적 영웅의 현대적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사회적 리더가 고난과 희생을 통해 미국 역사가 정화, 승화된다는 기독교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기본 정신을 구체적인 정책, 법제, 사회단체 구성 등으로 제도화시킨 사회적 이성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이나 민중을 강조하기보다 사회제도의 개선에 공헌한 정부각료, 지식인, 사회운동가가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일본은 ‘일본적인 것’의 세계화를 강조하고 있다. 20세기 근대화를 통해 극동의 작은 나라가 아시아와 세계사의 주역으로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는 서사구조다.

3김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3김이 남겨놓은 유산을 발전적으로 해소해야 할 때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프랑스 방식이 어떨까 생각한다. 3김을 축으로 형성된 가치와 욕망-역사청산, 민주화, 통일, 성장 등-을 구체적인 제도화를 통해 사회 전반에 착근시키고 지속시키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지식인과 정부관료, 사회운동가들이 구체적인 정책을 생산하여 법제화하고 사회운동으로 이를 견인하고 뒷받침하기도 하는 방식이 일상화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식인, 특히 언론인들이 이런 전환을 추동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논객닷컴에 실린 글입니다. 

편집 : 이지민 기자

이상요 교수 leesy54@kbs.co.kr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