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칼럼]

▲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

지난 9일 유럽출장길에 프랑스 동부 국경도시 스트라스부르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거리 곳곳에서 경계 중인 무장경찰이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여파인가?' 잠시 불안이 스쳤지만, 곧 잊어버렸다. 나흘 후, 벨기에에서 긴급 뉴스로 파리테러 소식을 들었다. 프랑스 경찰이 테러정보를 입수했지만 못 막은 것이라고 했다. 귀국한 후, 벨기에 브뤼셀 외곽의 몰렌비크에서 대대적 검거작전이 있었다는 뉴스를 봤다.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유럽 은신처라는 그곳이 13일 저녁식사를 한 곳에서 불과 10분 거리였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이어 한국도 이슬람국가(IS)의 '보복명단'에 올랐고, 외교부가 해외교민과 여행자 단속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위험의 세계화 속에 홀로 안전한 섬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더 이상 실감 날 수 없었다.

파리테러 후 <BBC> 등 서구 방송들은 각계 전문가를 불러 사태의 배경을 분석하면서 '추가 테러를 막을 대책이 뭔가'를 집중적으로 묻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IS 본거지에 공습을 강화하고 지상군도 투입해 조직을 섬멸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강력하게 제시되고 있다. 반면 미군이 무분별한 드론(무인기) 공격으로 민간인까지 희생시켜 더 큰 보복을 부르고 있으므로 작전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럽 빈민가에 사는 이슬람계 청년들의 좌절을 해소할 사회통합정책, 중동의 빈곤 청소년에 대한 교육훈련 지원 등으로 잠재적 IS 전사를 줄이자는 주문도 있다. 그런데 나는 국제 사회와 우리가 추진할 대책에 중동발 테러의 뿌리인 '지옥의 연료'에서 벗어날 '에너지 전환'이 꼭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저서 <코드그린>에서 에너지 전문가인 로셸 레프코위츠의 표현을 빌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을 '지옥의 연료'라고 불렀다. 이들 화석연료가 이산화탄소 등을 배출하면서 기후변화를 일으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중동특파원을 오래 했던 프리드먼은 여기 덧붙여 산유국의 독재정권들이 석유자금을 '당근'으로 쓰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누르고, 산유국 부호들은 같은 종파의 테러단체에 자금을 대주어 분쟁을 확산시킨다고 고발했다. 무차별 테러와 인질 참수, 인신매매 등을 자행하는 IS의 주요 자금원이 암시장을 통한 석유판매와 이슬람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 부호 등의 기부라는 서구 정보기관 분석은 '지옥의 연료'라는 이름에 무게를 더한다. 미국이 석유 확보를 위해 중동의 독재정권들을 지원하고 이라크 등에서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결과적으로 IS 같은 테러집단을 키웠다는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지적도 뺄 수 없다.

▲ 중동발 테러의 뿌리에는 산유국 독재정권들의 민주주의와 인권 억압, 산유국 부호들의 테러자금 공급, 석유자원확보를 위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Pixabay

프리드먼은 미국인들이 큰 차를 굴리며 기름을 펑펑 쓰는 '석유중독'에서 벗어나 레프코위츠가 '천국의 연료'라고 말한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 등 청정에너지로 가지 않으면 미국과 우방들은 테러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청정에너지와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가 열어주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도약의 기회를 놓칠 것이며 기후변화 대처에도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주장은 우리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원유수입의 70~80%를 중동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역시 테러의 온상에 물을 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경제와 생태환경이 직면할 위기다. 에너지를 거의 전량 수입하면서도 산업용 전기를 원가보다 싸게 공급해온 탓에, 우리 기업들은 에너지효율이 매우 낮다. 같은 물건을 만들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에너지 소비량의 2배, 일본의 3배를 쓴다. 정부가 '녹색성장' 간판만 내걸고 화석연료 감축은 제대로 하지 않아 탄소 배출 총량이 세계에서 7번째다. 값싼 전기 공급을 명분으로 원전 건설에만 주력하는 바람에 국토 대비 원전 밀집도는 세계 최고, 신재생에너지 투자는 OECD 꼴찌 수준이다.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석유 못지않게 체르노빌·후쿠시마의 재앙을 부를 수 있고 사용후핵연료 처분방법도 못 찾은 원자력 역시 '지옥의 연료'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출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독일이었다. 태양광, 풍력 등에 적극 투자해 화석연료 소비를 줄였고, 후쿠시마 이후 '탈(脫) 원전'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원전 옹호론자들은 청정에너지가 비싸고 대량공급도 어려워 안정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일은 발전차액 보상제(FIT) 등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2000년 6%였던 청정 발전 비중을 28%로 높였고, 2050년 100% 도달을 기대하고 있다. 관련 산업에서 일자리도 수십만 개 만들었다. 프라이부르크역 등 공공건물과 농가의 지붕마다 자리한 태양광패널은 "천국의 연료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합창하는 듯 보였다. 에너지자립시대를 열어 줄 무한대의 햇빛, 바람, 지열을 놔두고 우리는 언제까지 지옥의 연료에 매달릴 것인가.


조선일보 The Column에 실린 글입니다. 

편집 :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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