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재앙은 막자] ④ 온배수로 황폐해지는 어촌

“여기가 산란지라 옛날에는 농어며 민어, 광어, 감성돔 안 나오는 게 없었어. 넘쳐났어. 그런데 원전 생기고 나서 계속 줄어. 아주 꾸준히 줄기만 해, 줄기만. 옛날에는 안마도 바깥쪽으로 나간다는 건 상상도 못했어. 그런데 어떡해, 고기가 안 나오는데. 밥벌이라도 하려면 나가야지 어쩌겠어.”

‘원자로 식힌 물’ 탓 해수욕장도 발길 끊겨

한빛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전남 영광군의 어부 임항표(65)는 매일 새벽 3시면 2톤(t)짜리 어선 ‘금동’을 타고 안마도 인근으로 나간다. 두 시간이나 배를 몬 뒤 전날 설치해 둔 그물을 걷어보지만 수확은 시원찮다. 발전소에서 원자로를 식히고 나온 뜨끈한 물이 인근 바다의 수온을 올려놓는 바람에 물고기들이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 한빛원전이 있는 전남 영광군 홍농읍의 계마항. © 구은모

지난 1986년부터 2002년까지 6기의 원자로를 순차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한빛원전은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전력생산량의 8.6%인 4438만1471메가와트시(MWh)를 생산한 국내 최대 규모 핵발전소다. 이곳에서 만든 전기가 수도권 등의 경제를 힘차게 돌리고 있지만, 막상 지역 주민들은 갈수록 생계가 막막해지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영광군 법성포에는 매일 아침 9시 수협 위탁판매장이 열린다. 어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임 씨도 이곳에 들러 물고기들을 내놓지만 한 달 수입은 2백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오전 느지막이 계마항에 ‘금동’을 세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어깨는 처져있었다. 홍농읍 계마리 서쪽 끝 언덕 위에 자리한 그의 집에서 2Km 거리에 한빛원전 1호기가 있다. 둥근 지붕 모양의 재색 건물이 보인다.

“처음에는 산 밀고 나무 베기에 그냥 뭐 짓나 했지. 그때는 원전이라는 게 뭔지도 몰라서 그냥 살았어. 지금은 언제 사고 날지 모르니까 항상 불안하지. 사고 나면 어디 도망갈 데도 없는 거야. 그냥 죽는 거야. 여기서 태어났는데 이제 어디 나가 살겠어. 원전이 생기고 득 본 게 하나도 없어. 다 나빠졌어. 요 앞 해수욕장도 예전에는 사람이 많았다고.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안와.”

▲ 임항표씨가 집 앞 마당에서 보이는 한빛원전을 가리키고 있다. © 구은모

원자력 발전은 우라늄 핵분열로 생긴 열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끓이고, 이때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터빈을 돌린 증기는 물로 응축시켜 재사용한다. 응축과정에는 다량의 냉각수가 필요한데 이때 이용되는 게 바닷물이다. 그래서 대부분 원전이 바다를 끼고 건설된다. 냉각수로 사용된 바닷물은 자연 해수보다 7~9도(℃) 정도 높아진 상태로 배출되는데, 이것이 온배수다.

한빛원전에서 가동되는 원자로가 늘어날수록 터빈의 열을 식히기 위해 쓰이는 바닷물의 양도 늘어났다. 초당 약 300~330t의 냉각수가 사용되고, 한해 사용량은 111억5800여t에 이른다. 원전에서 나오는 온배수가 늘수록 인근 바닷물은 점점 더 뜨끈해졌고, 어장과 해수욕장으로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상태가 돼 버렸다.

▲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 가마미해수욕장 인근의 한 컨테이너. 쇠락한 마을의 현실을 반영하듯 덩그러니 놓여 있다. © 구은모

지난해 어획량 2007년 대비 85% 감소

영광군 낙월면 송이도 동쪽으로 조그만 섬 일곱 개가 있다. 남쪽에 있는 것부터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해서 칠산도까지 있는 이들 섬의 주변 바다를 칠산바다라고 한다. 이 바다에서 조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배 위로 뛰어오르는 조기만으로 만선을 이뤘다’는 말이 전해 질정도였다. ‘영광 굴비’가 유명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법성포와 송이도 사이의 어장을 이르는 칠산어장은 고급어종이 많이 잡히는 ‘황금어장’으로 꼽혔다. 그러나 영광수협대책위원회의 김영오(61) 사무국장은 “원전이 들어선 후 칠산어장 인근이 꾸준히 황폐해지고 있다”고 탄식했다.

“과거에는 30분 이내 거리(칠산어장)에서 조업이 가능했습니다. 지금 조업하는 배들은 1시간, 많게는 3시간 이상도 나갑니다. 그래도 과거 어획량의 3분의 1도 안 됩니다. 칠산바다는 고급어종의 산란지여서 능성어, 참돔, 농어같이 고급어종이 잡혔었는데, 이젠 젓갈에 쓸 수 있는 잡어나 양태처럼 상품성 떨어지는 것만 잡힙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이 내놓은 ‘한빛원전 주변 일반환경 조사 및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한빛원전 취·배수구 등 5개 지점을 조사한 결과 2007년 대비 어획량이 8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종도 90종에서 76종으로 줄었다. 뿐만 아니라 원전에서 필요한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취수구 스크린에 충돌해 폐사하는 치어(어린 물고기)가 하루 평균 30만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폐사한 치어들은 인근 청소용역업체가 수거해 사료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 환경단체들은 온배수와 액체폐기물이 같은 취수구를 통해 배출되는 만큼 방사성물질과 화학물질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 구은모

영광 앞바다의 해양생태계 파괴와 어민 피해는 원전이 있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유독 두드러진다. 2006년 전 산업자원부 보고에 따르면 그해 7월까지 전국의 온배수 피해보상액 2177억 원 가운데 2088억 원이 한빛원전 피해보상액으로 쓰였다. 원전 반경 20km 안에 거주하는 맨손어업, 일반어업, 양식업 종사자들이 대상자였다.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의 한인성 박사는 서해의 지리적 특성이 피해확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광은 서해에 위치해 수심이 얕다보니 온배수가 데울 수 있는 바닷물의 용적이 커질 수 있습니다. 또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도 센데, 조류의 경우에는 시간에 따라 방향을 바꿔가면서 강한 흐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해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 해역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급어장 ‘영광’ 잃은 영광군민들 한수원과 갈등

이렇게 어민 피해가 뚜렷하게 나타나자 영광군은 원전가동에 필요한 해수 점용·사용 허가문제를 놓고 한수원과 갈등을 빚고 있다. 한수원은 법에 따라 매년 영광군의 허가를 얻어 바닷물을 사용해 왔다. 그러다 2011년 ‘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허가 기간이 최대 30년으로 늘어나자 법정 최대치인 30년의 사용 기간 연장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영광군은 ‘온배수를 줄일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며 4년만 허가했는데, 올해 재연장 시기가 돌아오자 한수원은 다시 원전 6기의 설계수명이 모두 끝나는 2042년 7월 말까지 바닷물 사용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 전남 영광군 홍농읍에 있는 한빛원자력발전소. © 구은모

바닷물을 쓰지 못하면 원전을 운영할 수 없으므로 한수원 측으로서는 정상적 절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어민피해 대책이 부족하다며 반발했다. 영광수협대책위원회 김용국(53) 전문위원은 “해수사용 연장 조건인 온배수 저감 대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우선 대책으로 내놓은 게 방류제입니다. 방류제는 배수구에서 직선으로 1136미터(m)입니다. 동양에서 가장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해수유동을 막는 효과가 있다 보니 퇴적이 엄청나게 돼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고기가 안 들어오고, 해양 수질·저질이 굉장히 안 좋아져서 해양생태계가 초토화됐습니다.”

지난 2002년 한빛원전 5·6호기 가동에 앞서 한수원은 온배수 저감 대책으로 방류제를 설치했다. 주민들은 이 방류제가 오히려 해류 흐름을 막아 부유물을 퇴적시키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 위원은 “한수원이 치어 방류와 어장청소도 하고 있지만 보여주기 식에 불과하다”며 “해양생태계를 개선하려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지난 2002년 한수원은 온배수 저감 대책으로 방류제를 설치했다. 방류제는 배수구에서 직선으로 1126미터(m)에 이른다. © 구은모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광군은 지난 5월 한빛원전의 해수사용을 다시 4년 연장했다. 영광군에서 농사를 짓는 주경채(51) 한빛원전범군민대책위원회(범대위) 집행위원장은 “지금껏 해수사용 허가과정에서 영광군은 매번 조건을 달았지만 한수원이 제대로 이행한 것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번에도 영광군은 해수사용 연장 허가 조건으로 ‘영광군이 주도하고 한수원이 참여하는 객관적 해양조사를 거쳐 온배수 대책을 추진할 것’, ‘지역협의체를 강화해서 해양감시센터 설립 등 정부대책을 요구할 것’ 등을 내세웠다. 영광지역 1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범대위는 한수원이 이 조건을 이행하도록 감시하고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원전의 ‘질서 있는 퇴장’ 요구

범대위는 한빛원전의 즉각적인 폐쇄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을 감안해서 가급적 최단 시간에, 가장 체계적으로, 누구나 공감하는 방식으로 ‘원전의 질서 있는 퇴장’을 이끌겠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 주경채 위원장은 가급적 최단 시간에, 가장 체계적으로, 누구나 공감하는 방식으로 '원전의 질서 있는 퇴장'을 이끌겠다고 이야기한다. © 구은모

주 위원장은 원전의 핵심문제가 방사능인 만큼 안전성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전 설계상으로는 방사능 누출 위험이 없다고 하지만, 부품결함이나 고장 등을 통해 새어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한빛원전 민간환경감시기구가 정기적으로 인근 바닷물과 수산물을 채취해 실시하는 방사능 검사를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이 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된 적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원전 취수구에서 온배수 외에 액체폐기물도 함께 배출하는데, 여기에는 원자로 내의 검사·보수공사 후에 기기를 세척한 폐액 등이 포함된다며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이런 액체폐기물은 여과·증발·농축 등의 처리 후에 방사능 농도를 낮춰 바다로 배출하는데, 온배수와 액체폐기물이 같은 취수구를 통해 배출되는 만큼 방사성물질과 화학물질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서해로 온다. 버림받고 썩어갈 것들 뻘밭에 밀려와 쓰러진다. 쓰러져 운다. 울며 썩어간다. 열류에 뜬 구정물의 바다 고기들 오지 않고 배들은 닻을 내린 지 벌써 오래인데....”

박남준 시인은 1995년에 발표한 시 <고향바다 칠산바다>에서 ‘열류에 뜬 구정물의 바다’가 되어가는 고향을 가슴 아파했다. 주 위원장도 광주에서 대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황금어장도, 기름진 땅도 아닌 잿빛 원자력발전소가 자신을 맞이하던 장면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더 이상 고향을 이 상태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 영광군에는 원전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있다. © 구은모

“여긴 농업환경도 어업환경도 좋아서 스스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전으로 인해 모든 게 왜곡돼버렸죠. 원전이 남긴 생채기가 너무 큽니다. 그런 상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사실 미래도 잘 보이지 않고 불투명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아요. 우리 고향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지역에 폭력을 가한 것이죠. 고향사람으로서 의무감을 느낍니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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