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일자리 불안을 줄여야 하는 이유

▲ 배상철 기자

대학을 졸업한 후 2년 넘게 취업준비에 매달려온 친구가 꿈에 그리던 철도 관련 공기업에 합격했다. 취직을 축하하는 떠들썩한 술자리 내내 그는 말없이 웃음만 짓더니 한참만에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 계약직이야.” 짧은 한 마디에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제야 그의 입가에 드리웠던 씁쓸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좁은 입사의 문턱을 넘긴 했지만, 취업 준비생의 불안정한 처지가 단지 2년 미뤄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정규직보다 더 열심히 일해도 임금과 휴가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야하는 억울함, 식당과 통근버스 이용까지 차별 당하는 설움. 그동안 뉴스에서 접했던 우리 사회 비정규직의 삶이 그에게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생각하니 내 마음도 착잡해졌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며 합법화한 비정규직은 18년 동안 노동계 추정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 가까이 늘면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 하면 그만 두어야 하는 비정규직은 가까운 미래에 대한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채 불안에 떨어야 한다.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의 절반 남짓한 임금으로 빠듯한 생계를 꾸려가는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경제 전반의 구매력은 떨어졌다. 대기업들은 인건비를 절감해서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겠지만 내수 시장이 위축되는 바람에 새로운 기업이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은 메말라갔다. 결국 재벌 등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중소기업, 자영업자, 노동자 등 경제적 약자 모두가 고통 받는 경제양극화의 악순환이 심해졌다.

▲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를 구호로 한 시위는 양극화한 사회에서 좌절한 대중의 반발을 보여준다. ⓒ flickr

경제양극화는 정치사회적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미국에서 금융 중심지인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일어나고 유럽의 극우, 극좌 정당이 선거에서 득세하는 상황은 양극화한 사회에서 좌절한 대중의 반발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극심한 양극화가 만들어내는 좌절감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하다. 가난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정치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 등 단순하고 선동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정파에 쉽게 휩쓸린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사회가 뒤집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약자가 다른 약자를 공격하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최근 불꽃이 튀었던 연금 논쟁과 세대 갈등, 여성에 대한 공격, 이주민에 대한 배척 등도 이런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비정규직이 당장 생산비용을 줄여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내 인적자원의 축적을 막고 종업원의 충성도를 낮춰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연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 방안의 하나로 비정규직의 고용 제한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려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기간 연장으로 비정규직을 쓰기가 더 쉬워지면 ‘가난하고 불안정한 노동자’가 더욱 늘어나 정치, 경제, 사회적 폐해가 커지는 것은 물론 기업들의 경쟁력도 훼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고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는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더 쉽게 쓰도록 만드는 대신 정규직 전환을 지원하고 처우를 낫게 해서 ‘일자리 불안’을 줄이는 것이 경제적 번영과 정치사회적 안정으로 가는 길임을 우리 정부도 빨리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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