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김철규 고려대 교수
주제 ① 한국 농식품체계의 역사적 형성과 특징

“‘도시락 꺼내봐.’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학생들 도시락을 뒤집게 하셨어요. 하도 위에만 보리를 얹고 아래는 쌀밥으로 채운 도시락을 싸오니까요.”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농식품체계의 역사적 형성과 특징’을 주제로 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혼분식장려운동을 화두로 꺼냈다. 이 운동은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주도한 식생활개선국민운동으로 1967년부터 1976년까지 시행됐다. 음식점은 밥에 보리쌀이나 면류를 25% 이상 혼합하여 판매해야 했다. 학교에서는 도시락을 검사해 학생들이 규정에 맞게 혼식을 하는지 확인했다.

‘당신이 먹는 것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먹거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야 한다.

▲ 김철규 고려대 교수가 우리 먹거리의 역사적 변천을 설명하고 있다. ⓒ 김영주

우리가 먹는 것은 어디서 왔을까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많은 라면을 먹은 국민은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은 1년에 평균 74.1개의 라면을 먹는다. 일주일에 1개 이상 먹는 셈이다. 김 교수는 그렇게 많은 라면을 소비하면서 봉지 뒷면을 자세히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라면 뒷면에 쓰여있는 소맥분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아이오와나 네브래스카 같은 미국 중서부 곡창지대에서 온 밀입니다. 아이오와의 소작농이 생산한 밀일까요? 아니죠. 우리가 라면을 소비하면서 동시에 ‘카길’과 같은 초국적 기업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겁니다.”

김 교수는 우리는 최종 상품으로 음식을 소비하지만 그 식품을 추적해 들어가면 많은 기업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는 다양한 형태의 이해관계와 농민의 문제가 얽혀있다. 비단 한국 농민들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제3세계 소농들이 어떤 상황인지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국적 기업들이 중간 이윤을 많이 가져갈수록 농민들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라고 말했을 때 그 거리는 물리적 거리를 말합니다. 밀을 수입하지 않고 우리 땅에서 생산한 밀을 먹으면 농민과 환경 모두에게 좋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생산지와 소비지, 최종 상품과 농민 간의 거리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강의의 전반적인 메시지입니다.”

식(食), 결코 개인적 행위가 아니다

“조선시대 설렁탕에는 소면이 없었을 거라는 사실이 연구 결과 거의 확정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밀이 귀했기 때문이죠. 밀로 만든 국수는 회갑이나 결혼식 같은 잔칫날 먹는 귀한 음식이었어요.”

조선시대만 해도 밀가루는 양반들이 먹는 별식에나 쓰였다. 한반도는 밀가루 재배에 용이한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빵은 너무 비싸 소수 상류층만 먹는 별미였다. 그러다가 60년대에 미국의 개량된 밀가루가 한반도로 밀려들어왔다. 빵 양산업체가 빠르게 성장했고, 수제비와 소면이 서민음식이 됐다.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장려운동 바람이 더해져 밀가루가 전성기를 맞았다.

김 교수는 설렁탕에 소면을 함께 넣어 먹는 문화도 1960년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60년대 정부에서는 흰 밀가루를 쓴 소면을 뽑아 탕이나 찌개에 넣도록 권장했다. 쌀로는 사람들의 배를 채우지 못하니 값싼 밀가루 면으로 양을 늘리려 했다.

▲ 쌀 소비가 줄고, 밀 소비가 늘고 있다. ⓒ 김철규

한국인 1인 연간 식품소비량 변화 표를 통해 쌀 소비가 80년대 이후 계속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67.2kg으로 연평균 2.2% 정도 감소하고 있다. 반면 보리는 70년까지 소비량이 증가하다가 75년에 급감하기 시작한다. 혼분식장려운동이 67년부터 시행돼 76년에 폐지됐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국가 정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소비하다가 정책이 철회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보리를 찾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2010년 다시 보리 소비가 반등하는데, 이는 ‘웰빙’이 유행하면서 비롯된 현상이다.

밀, 쌀, 보리의 소비 패턴 변화는 국가 정책이나 시장질서와 무관하지 않다. 먹거리는 다양한 사회관계, 정치시스템, 시장환경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순수하게 개인적 선호에 의한 음식 섭취는 없다고 단언했다. 하물며 선호도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세계화, 농촌을 집어삼키다

“여성들은 여공이나 식모, 버스차장으로 취직하면서, 남성들은 서울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면서 도시에 거주하게 됐어요.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 끈을 갖고 있었고 심정적으로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도시에서 잘 살고 있지만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는 얼마나 고생하실까 하고 감정적으로 동조했죠.”

김 교수는 도시와 농촌 간 연결고리가 희미해졌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인 대부분은 도시토박이가 아니라 농촌에서 상경한 사람들이었다. 1960년대 농촌 인구가 대도시로 이동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전국 140개 군 중 116개 군의 인구가 줄어든 반면, 시 인구는 315만 명 증가했다. 전국의 총인구 증가 수 208만 명보다 많은 수치다.

김 교수는 1990년대, 특히 97년 외환위기 이후 사람들 마음속에 있던 농촌에 대한 감정적 끈이 끊어졌다고 말했다. ‘각자도생’하는 상황에서 농민까지 챙길 겨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다.’ 1970년대까지 발전주의가 우리 안에 거의 내면화했다고 봐요. 그런데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회사가 문을 닫고 수많은 사회현상이 파생되죠. 그러면서 개인들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쁠 수 있구나, 이런 것을 실감하게 됐어요.”

이러한 신자유주의 가치관이 농업에도 적용됐다. 신자유주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경제는 자유로운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왜 우리가 농업을 보호해야 되느냐’며 의문을 가졌고, ‘농산물은 외국에서 사다 먹으면 된다’는 논리가 한국 사회의 중심 논리로 작용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김철규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 김영주

소비자가 농업을 바꾼다

농업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1990년대부터 정부는 농업에 ‘소품종·대량생산’이라는 생산방식을 도입했다. 한 농가에서 대규모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유리온실과 창고 등 시설에 투자했다. 1996년부터 농업회사법인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등 기업농을 육성했다. 그 결과, 한 지역에 특정 농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현상이 심화됐다. 홍성에서는 5년 만에 한우 사육두수가 1만 두나 증가했다. 김 교수는 전문화, 특성화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했다.

“소는 24시간 먹어요. 엄청나게 먹는 동물이 소입니다. 소를 한 곳에서 한꺼번에 키우면 소가 먹는 물, 소비하는 에너지 양, 소의 분비물이 생태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소는 생태계 파괴자’라는 표현을 씁니다.”

한 지역에서 대규모로 가축을 기르면 풀을 대량으로 기를 수 없어 곡물사료를 쓸 수밖에 없다. 곡물을 기르는 데 많은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고 생산된 곡물을 나르는 데도 탄산가스를 배출한다. 생태계에도 해가 된다. 가축 분뇨에서 나온 암모니아가 대기를 오염시켜 산성비의 원인이 된다. 이렇게 생산방식이 변화하는 데는 소비자의 선호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호주는 소를 방목해서 키우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우리에 가둬놓고 키우는 소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이 있어요. 한국과 일본입니다. 마블링 때문이죠. 11개월 된 송아지를 가둬놓고 콩이나 옥수수, 귀리를 섞어서 사료로 줘요.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비만소’죠.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그런 사육방식의 변화가 생겼어요.”

농업을 다른 나라와 경쟁해야 하는 산업으로 보는 신자유주의 바람은 우리네 식탁을 바꿔 놓고 있다. 작은 농지에서 더 많은 가축을 키우기 위한 ‘효율성’의 논리 아래 집단 사육 방식이 도입됐다. 힘줄이 없고 부드러운 고기를 먹기 위해 소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이러한 사육 방법은 건강하지 않은 소를 길러내게 된다. ‘무엇을 먹기를 원하느냐?’ 농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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