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광장에서 열린 성소수자들의 퀴어문화축제

"게이로 태어나서 너무 행복합니다."

무대에서 춤을 마친 남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남자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가발을 쓰고,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잠시 후 등장한 사회자 두 명도 '이상한' 모습이긴 마찬가지였다. 남자 사회자는 하늘거리는 검정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여자 사회자는 파랗게 염색한 짧은 머리를 왁스, 스프레이 등으로 바싹 세웠다. 성소수자를 일컫는 영어 단어인 ‘퀴어(queer)’는 기묘하다, 괴상하다는 뜻인데, 무대에 오른 이들은 이 개념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국내 성소수자들의 집회인 제 16회 퀴어문화축제가 28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이번 축제의 구호는 ‘사랑하라, 저항하라, 퀴어 레볼루션’이다. 오전 11시부터 100개 단체가 마련한 88개의 부스(천막) 행사가 시작됐고, 오후 2시 30분부터는 개막식과 공연이, 오후 5시부터는 을지로 등을 지나는 거리행진이 이어졌다. 퀴어문화축제 홍보팀은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 광장에서 성소수자 단체가 단독으로 행사를 여는 것은 이번이 최초”라며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지속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최 측 추산 3만여 명 참여...평범한 가족단위 참가자도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축제에는 약 3만 명이 참여했다. 반면 경찰은 참가자 수가 5천~7천 명 정도라고 추산했다. 미국대사관 등 13개 주한대사관이 행사장에 부스를 마련했으며, 구글과 러쉬 등 다국적기업, 진보정당, 인권단체, 대학내 성소수자 모임 등도 다양한 부스를 열었다. 이들은 엽서‧스티커‧팔찌‧배지‧음료 등을 팔았고, 캐리커처 그리기‧사진 찍기‧타로점 보기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한국레즈비언상담소 등 성소수자 관련 단체는 현장에서 후원신청을 받기도 했다. 

이날 광장에서는 여자와 여자가 손깍지를 끼고, 남자와 남자가 다정하게 팔짱을 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 부채를 하나씩 든 채 잔디밭에 앉아 공연을 즐겼다. 공연이 무르익을수록 광장은 사람들로 채워졌고, 이들이 흔드는 부채 덕에 무지개색 바다가 펼쳐졌다. 풍물패 ‘바람소리’의 공연을 시작으로 춤, 뮤지컬이 이어졌으며, 미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한국계 미국인 트랜스젠더 폴린 박, 일본 도쿄 도시마구 의원 이시카와 다이가의 지지 발언도 있었다. 

공연의 클라이막스는 행위예술가 ‘쿠시아’가 부른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가 장식했다. “네가 게이이든, 이성애자든, 아니면 양성애자든, 레즈비언이든, 트랜스젠더든 중요하지 않아”라는 가사가 행사의 의미를 설명하는 듯 했다. 

이날 축제에는 성소수자만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이성애자 커플과 가족 단위의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데려온 30대 주부 노선이(서울 마포구)씨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축제 전날인 27일에 미국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린 것이 이날 행사 분위기를 더 희망적으로 만들었다. 미국대사관은 서울광장에 마련한 부스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쉘 오바마 영부인의 실물크기 사진을 세워두고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대사관은 또 동성결혼을 공개찬성한 배우 앤 해서웨이와 반기문 유엔(UN)사무총장 등의 발언을 인쇄해 사진과 함께 전시하기도 했다. 이날 미국대사관 부스는 동성결혼 합헌결정을 축하하고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30대 여성은 “인간이 만든 법에 의해 삶이 많이 규정되는데, 법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이 인류문명에 있어서 진보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반여성혐오단체 페페페(FeFeFe)에서 활동 중인 차유진(40‧여)씨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도 언젠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성애 혐오’ 보수단체 방해에 맞서 결집력 더 커져 

10여 년 전부터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해 왔고, 국내 최대 게이커뮤니티인 ‘이반시티’에서 활동한다는 정성원(44)씨는 “그동안은 사대문 바깥인 신촌, 홍대에서 했는데 (이번에는) 장소가 크다 보니 참가 부스도 많아졌고 인원도 정말 많아졌다”고 말했다. 정씨는 “작년에 일부 혐오세력이 퀴어퍼레이드를 방해해서 올해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결집력이 높아진 탓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시청역 5번출구, 서울시청 입구, 대한문앞 등에서는 보수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 나라사랑·자녀사랑운동연대가 반대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찬송가를 틀고 북을 두드리는 공연을 하거나,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맞춰 발레 공연을 펼쳤다. 양측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은 서울광장을 약 1.5미터(m) 높이의 녹색 펜스로 둘러쌌고, 퀴어축제 주최 측은 동성혼 반대자의 출입을 제한하느라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차세기연) 운영위원 도플(28‧여·활동명)은 “차세기연은 단체가 만들어진 2007년부터 매해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다”며 “결혼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고, 성소수자들도 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성혼을 지지하는 개신교인 10여명은 ‘동성애‧동성혼 OUT’ 피켓을 든 반대자들에 맞서 “혐오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어요”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오후 5시부터 6시까지는 축제의 중심행사인 퍼레이드(행진)가 펼쳐졌다. 서울광장에서 을지로 2가, 퇴계로 2가, 명동역, 회현사거리를 지나 광장으로 돌아오는 행진 코스는 약 2.6킬로미터(km)로, 역대 최장 거리였다. 행진은 7대의 차 위에서 성소수자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참가자들이 차를 뒤따르는 형식이었다.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길바닥에 드러누워 차가 지나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경찰이 끌어내 행진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 28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6회 ‘퀴어문화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포토월에 응원 문구를 적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전 ‘퀴어문화축제’ 진행 요원이 서울광장에서 무지개 빛깔 연을 날리며 축제를 축하하고 있다. 일곱 색깔은 각각 섹슈얼리티, 삶, 치유, 태양, 자연, 예술, 조화를 의미한다. ⓒ 하상윤
▲ 28일 오전 ‘퀴어문화축제’ 개막을 앞두고 시청 건물 앞에서 경찰과 시민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날 약 5,100명의 경찰이 동원됐다. ⓒ 하상윤
▲ 28일 오전 ‘퀴어문화축제’ 진행요원이 서울광장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 하상윤
▲ 한 참가자가 주미대사관 부스 앞에서 성 소수자에게 적대적인 기독교인을 비판하는 판넬을 들고 있다. ⓒ 김재희
▲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무대행사를 관람하고 있다. 이날 경찰 추산 7천명의 시민이 행사에 참가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무대 행사를 보는 참가자들이 일어나 호응하고 있다. ⓒ 서혜미
▲ 28일 오후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대형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차량이 퇴계로를 지나는 가운데 참가자가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행진하는 가운데 기독교 신자가 바닥에 드러누워 퍼레이드 차량을 막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참가자가 패러디 장면을 담은 피켓을 들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는 기독교 신자들이 포효하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반대 하는 기독교 신자들이 행인들 사이에서 북을 치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반대 하는 기독교 신자들이 태극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북을 치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는 기독교 신자에게 축제 참가자가 항의하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에 참가한 최정해(69)씨가 한복을 차려입고 행사 도중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반대 하는 기독교 신자들이 춤을 추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반대자들을 향해 행사 포스터를 흔들어 보이고 있다. ⓒ 하상윤
▲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축제 반대 피켓을 든 기독교 신자들에게 한 행사 참가자가 비눗방울을 만들어 보내고 있다. ⓒ 하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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