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청주시 노인전문병원, 위탁경영자 못 구해 내달 폐업

세금을 들여 지은 청주시 노인전문병원이 위탁경영자도 구하지 못해 폐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폐업을 앞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환자 이탈도 가속화해 13일 하루에만 9명이 퇴원했다, 14일 현재 남은 환자수는 91명이다. 한때 160여 개 병상이 가득 차 입원 대기자가 있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환자들이 모두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 텅 빈 병실도 생겼다.

▲ 청주노인전문병원 3층 병실. 환자들이 퇴원해 군데군데 빈 병상이 보인다. ⓒ 서혜미

“5명이 한 방에 있는데 오늘(13일) 한 명이 나가고 내일모레 둘이 나가서 둘밖에 안 남는대요.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가요. 자꾸 나가라고 하니까 자식들도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문 닫는 날까지 있어 볼 생각이에요.”

2012년 방광암 수술 후 지금까지 병원에 있던 박희춘(75세) 씨는 “불안하다”고 말했다. 청주시 노인병원이 환자의 보호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을 폐업하니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며 퇴원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입구에도 6월 10일부터 전기와 상수도 공급이 끊어지니 병원을 옮기라는 공고문이 붙어 있다.

임금체납·부당해고·근무제변경으로 노사 갈등

청주노인병원은 2009년 157억원을 들여 지은 공공요양병원이다. 청주시는 2009년 효성병원, 2012년부터 CNC 재활병원과 위탁 계약을 맺어 병원 운영을 넘겼다. 두 병원은 청주노인병원 노조(공공운수노조연맹 의료연대본부 청주시노인전문병원분회)와 임금체납, 부당해고, 해고자복직 문제로 계속 마찰을 빚어왔다.

▲ 청주노인병원을 만드는 데는 국비 100억, 시비 57억 원이 들어갔다.  ⓒ 서혜미

노조는 지난해 3월부터 사측의 임금체납과 근무교대제 변경 때문에 파업에 나섰다. 파업이 200일가량 이어지자 그해 국정감사에 이승환 청주시장과 한수환 병원장이 증인으로 불려갔다. 청주시의 중재로 협상이 이뤄지는 듯했지만 한 병원장은 올해 초 노조원 11명을 해고했다. 충북지방노동위원회은 이 해고가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간병인들이 가장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근무교대제 변경이다. 교대제가 바뀌기 전에는 간병인 한 명이 한 병실을 담당했다. 지금은 간병인 한 명이 2~3개 병실을 돌봐야 한다.

간병인 방금순(52)씨는 바뀐 근무제도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한 병실에 한 사람씩 근접 간병을 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가까이서 부르면 가야 하고, 냄새만 나도 빨리 치워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안 돼요. 이 방에 할아버지가 오줌을 싸고 저 방에서 누가 떨어져도 볼 수가 없습니다.” 

노인병원노조 “노사문제로만 보는 청주시도 책임”

갈등이 지속되자 지난 3월 한수환 원장은 병원 운영을 포기했다. 그는 적자와 노조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더는 경영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간병인 석경순(55)씨는 한 원장이 수탁을 포기한 이후부터 “병원이 눈에 띄게 엉망이 됐다”고 주장했다.

"병원 위생은 지금 최악이라고 보면 됩니다. 병실은 원래 간병인들이 청소해서 괜찮은데, 복도나 창틀엔 먼지가 쌓여있어요. 수도꼭지가 고장 나도 고쳐주지 않고 병실 청소에 필요한 세제도 사주지 않아요. 문을 닫더라도 6월 9일까지는 매일 필요한 것들이잖아요." 

청주시는 문제 해결을 위해 4월부터 새 운영자를 공개 모집했다. 단독으로 응모한 신청자가 있었으나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1차 공모가 무산된 뒤 한수환 원장은 병원을 다음 달 10일에 폐업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청주시는 새로운 위탁운영자를 찾기 위해 이번 달 20일까지 2차 공개모집을 한다.

이번 공모에서 응모자가 없거나, 응모자에게 결격사유가 있어 공모가 무산되면 의료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청주시는 조례를 개정해 전국단위로 범위를 확대한 뒤 3차 공모를 하겠다고 하지만, 폐업과 3차 공모 사이에는 시차가 난다. 청주시 서원구보건소 관계자는 의료 공백이 생기더라도 임시 의료진을 파견하거나, 시가 직접 운영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 청주노인병원 노조는 7일부터 청주시청 앞 공원과 인도의 경계에 농성장을 차리고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서혜미

노동계는 청주시에서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원들은 7일부터 시청 앞에 농성장을 차리고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조은희 청주노인병원 노조 사무장은 “세금으로 지어진 병원이니 시에서 관리·감독을 할 책임이 있는데 시는 노사문제로만 바라본다”고 청주시를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충북지역본부는 “청주시가 관선이사를 파견해 병원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주시 “경영상 문제여서 관여할 수 없다”

한편 청주시는 청주노인병원에 직접 관여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승훈 청주시장은 4월 청주시의회 본회의에서 “경영과 관련된 사항은 전적으로 병원에 위탁이 돼 있다. 노사 문제는 경영상 문제이기 때문에 시의 관리의무에는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만약 시가 관여할 경우엔 경영상 자율성을 침해해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다”며 “새로운 운영자에게 위탁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대희 사무국장은 “청주시처럼 공공병원은 민간에 위탁하는 순간 민간병원이 돼버린다”며 “시에서는 문제가 생겨도 병원을 관리∙감독할 명분이 사라진다”고 민간 위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남인순 의원실(새정치연합)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공립요양병원은 75개로 1,200개가 넘는 요양병원 가운데 6%밖에 안 된다. 그마저도 6곳을 빼면 전부 민간에 위탁했다. 사실상 공공요양병원이라고 볼 수 있는 병원은 1%도 되지 않는 셈이다. 남 의원실은 “고령 사회이므로 돌봄 기능을 공적 부문 안에서 어느 정도 해결해야 한다”며 “최소한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요양병원이 10~30%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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