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충북 제천서 열린 영화 ‘귀향’ 제작후원 콘서트

일제 강점기에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참상을 다룬 극영화 ‘귀향’의 제작을 후원하는 콘서트(공연)가 지난달 30일 저녁 충북 제천시 화산동 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이 콘서트는 지난해 11월 서울을 시작으로 강원 원주, 충북 충주, 대전,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는데, 제천 공연은 아홉 번째다.

“단순히 영화가 아니라 역사적 실증으로 남기기 위해 100% 국민 모금으로 영화가 준비 중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참석하신 분들이 영화 귀향에 대해 알아가고, 그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통방송(TBS) 김현경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저녁 7시 30분 무렵 본격 시작된 콘서트의 첫 무대는 제천시 공무원 여섯 명으로 구성된 오주사밴드가 장식했다. 결성된 지 1년이 채 안 됐다는 이 밴드는 제천시 한방엑스포 등 지역 행사에서 활동해 왔지만 무대에 서는 게 아직은 어색한 듯했다. “무대가 익숙지 않으니 양해를 부탁한다”고 밴드 리더가 말하자 관객들은 “괜찮습니다”하고 큰 소리로 응원했다. 오주사밴드는 가수 산울림의 ‘나 어떡해’를 시작으로 ‘에코’, ‘날 울리지마’ 등을 연달아 부르더니 두 팔을 번쩍 들어 객석의 박수를 유도하는 등 활기 있게 무대를 이끌어 갔다.  

▲ 오주사 밴드는 "원래 다섯 명이 모여 오주사 밴드라 이름을 붙였는데, 한 명 더 늘어서 육주사 밴드로 바꾸게 생겼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들은 주말마다 제천 한방 엑스포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 김다솜

공무원밴드와 관록의 가수, 기타리스트 등 재능기부

1994년도 인기 TV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주제곡을 부른 가수 김민교(49)씨의 무대도 뜨거웠다. 오랜 무대 경험과 열정이 어우러진 공연에, 객석을 채운 200~300명가량의 시민들은 빈 생수병을 마주치며 박자를 맞추거나 일어서서 환호하는 등 열띤 반응을 보였다. 앵콜곡‘자꾸자꾸’를 부를 때는 김 씨가 객석으로 내려와 첫 번째 줄 의자에 올라선 채 손짓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장사익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김광석(61)씨도 개성 있는 기타 연주로 무대를 빛냈다. 특히 아리랑을 편곡한 기타연주는 익숙한 멜로디에 독특한 악기 음색, 지그시 눈을 감고 연주하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더해져 관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 김현경 교통방송 아나운서는 "기타리스트 김광석씨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할머님들의 뜻을 기리는 콘서트란 의미 때문에 자리해주셨다"며 김광석씨를 소개했다. ⓒ 김선기

“영화를 만드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기억해야할 것이라서 생각해낸 게 국민 성금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 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제작에 30억이 든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7억이 모였습니다. 엄청 대단한 겁니다. 지금까지 모인 돈으로 조금씩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레드로우와 밴드죠의 합동 공연에서 밴드죠의 리더 배철(43)씨가 이렇게 호소했다. 이들은 하모니카, 아프리카 타악기 젬베와 같이 다양한 악기 구성으로 신나는 공연을 펼쳤다. ‘노란 오도바이’, ‘잘가라 나의 20대여’, ‘바쁜 인생’ 등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면서 영화가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며 “오, 예”를 외치기도 했다. 관객들도 양 팔을 벌려 “오, 예”하고 화답했다. 레드로우의 고니씨는 “저희가 재능기부라 돈을 한 푼도 받지 못 한다”며 “기름값이라도 도와주실 분들은 입구에서 앨범 구매를 부탁드린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이끌기도 했다. 

위안부 실화 바탕, 제작비 30억 원 전액 국민모금 추진

위안부 피해자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의 기획총괄을 맡은 조정래(43) 감독은 “수년 전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을 위문하던 중 강일출(86) 할머니가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처음 접하고 이 문제를 영화로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당시 강 할머니가 그린 그림은 일본군이 위안소에서 질병에 걸린 소녀들을 산 채로 불태우는 장면이었다. 조 감독은 “귀향(歸鄕)에서 귀는 ‘돌아갈 귀(歸)’지만 영화에서는 ‘귀신 귀(鬼)’자를 썼다”며 “영화를 통해 소녀들의 넋이 고향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 감독은 2000년 단편 <종기>로 데뷔했고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의 감동실화를 다룬 <파울볼>(2015), 고등학교 합창부 해체 위기를 다룬 <두레 소리>(2012) 등을 제작했다.

▲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가 2001년 나눔의집 미술심리치료과정에서 그린 작품이 ‘태워지는 처녀들’이다. 할머니는 “일본군은 위안소에서 질병에 걸린 소녀들을 산 채로 불태웠다”고 증언했다. ⓒ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러나 귀향은 한일관계 등 정치, 외교적으로 민감한 소재의 영화이고 흥행이 불투명한 탓에 투자자 유치가 쉽지 않아 초반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그래서 조 감독과 제작사인 제이오엔터테인먼트는 국민성금과 기부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영화에서 위안부피해자 할머니 영옥 역을 맡은 배우 손숙(70)씨와 일본군 역을 맡은 재일교포 배우 등 출연진, 촬영진 대부분이 보수를 안 받는 재능기부로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귀향의 공식사이트(http://guihyang.com)에서 계좌이체 등을 통해 시민들의 성금으로 제작비를 모으고 있다.  

전국을 돌며 후원콘서트를 여는 것은 밴드죠의 리더 배철씨가 기획했다. 조 감독과 친구 사이인 배씨는 영화 제작 사실을 널리 알리고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의 후원을 이끌어 내려면 콘서트 방식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귀향을 후원하는 사람들’과, 제천청년회의소가 함께 주최한 제천콘서트에는 제천심포니오케스트라 등 지역의 문화예술인들도 재능기부로 동참했다.

30대 남자들까지 펑펑 울린 할머니의 증언

이날 공연에 앞서 주최 측은 영화의 제작의도를 설명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려주는 영상물을 상영했다. 영상에서 강일출 할머니는 “잘못하면 두드려 맞고 발길에 차이고 손으로 때리는데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곳곳에서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영상 보면서 참 많이 울었어요. 아직까지 고통받는 분들이 계신다는 게 마음을 먹먹하게 하네요. 그래도 뜻을 가진 시민들이 이렇게 후원해주면 언젠가는 영화가 개봉될 거고, 사람들한테도 알려질 거라고 기대해요.”

직장인 조석진(34·제천)씨는 “친구 3명과 함께 왔는데 남자 넷이 영상 보고 다 울었다”며 “그만큼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가 우리한테 슬픈 역사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 이모, 이모부와 공연장을 찾았다는 초등학생 안소윤(12)양은 “기타 치는 게 너무 멋있고 인상적이었다”며 “할머니들을 더 이상 슬프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함께 활동하는 민족예술총회원 10명과 공연을 봤다는 공예가 공명희(45·제천)씨는 “재능기부를 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고 함께해서 행복했다”며 “(다만) 영상은 슬픈데 공연은 신나서 울고 웃다 보니 어디에 호응할지 좀 어려웠다”고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 영화 '귀향'의 제천후원콘서트 포스터. ⓒ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귀향을 후원하고 싶은 사람은 공식 사이트에 공지된 은행계좌로 후원금을 보내거나, #1365-2015로 응원메시지를 보내면 1건당 3000원의 후원금 결제가 이뤄지는 문자메시지 방식을 이용할 수 있다. 후원자는 영화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고 영화 포스터 1매와 시사회 티켓 등을 받는다. 귀향은 올해 여름 개봉을 목표로 제작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투어콘서트는 이달 중 경북 포항, 충남 천안, 경남 거제 등에서도 열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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